20대는 원래 얻어먹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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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에 도착했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이기에 곧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책 구경도 식후경. 공주에서 유명하다는 메밀국숫 집으로 향했다. 선결제를 해야 하는 식당이어서 국수값을 지불하려고 카드를 꺼내니 윤이 재빠르게 내 손을 막았다. 그러곤 내 어깻죽지를 쓰다듬으며 카드를 내밀고 국수 2개를 주문했다.
"20대에는 원래 얻어먹는 거예요. 저도 젊을 때 많이 얻어먹었어요."
물 메밀국수와 비빔 메밀국수. 두 가지 맛의 음식을 조금씩 덜어서 함께 나누어먹었다. 갑자기 공주에 온 것도 어안이 벙벙한데 메밀국수를 먹고 있으니 더 현실감이 없었다. 불현듯 피식, 웃음도 났다. 국수가 어떤 맛이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기억나는 건 꽤 독특했던 메밀의 식감과 윤이 신기한 인연으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우리의 동행이 신비롭다는 감상을 늘어놓으며 덧붙인 이야기였던 것 같다. 아마 윤은 그런 경험들이 있기 때문에 나에게 선뜻 이런 제안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밥을 먹고 바로 방문한 곳은 '느리게 책방'이었다. 우리는 3곳의 책방을 둘러보기로 계획을 세웠고 첫 번째 행선지가 이곳이었다. 작은 규모의 책방이었고 곳곳에 자수로 만들어 붙여둔 글자들이 눈에 띄었다. 쉼, 위로, 공동체, 여가. 지금껏 봤던 책의 소개 팻말 중 가장 정성스러웠다.
책방에 헌 책을 위탁하여 팔면 동물보호단체에 기부를 하신다고 한다. 테이블에는 빈 소라 껍데기 세 개가 놓여있었고 짧은 문구가 함께였다. 소라를 귀에 대어 보세요! 바닷소리가 들릴지도 모릅니다~ 조심스레 귓가에 소라를 가져다대니 웅얼이는 파도의 말장난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이 책방의 책방지기 분은 아마 느림의 미학을 알고 계신 것 같다.
두 번째 책방은 '길담서원'이었다. 외관이 주택처럼 생겨 들어가는 곳을 헤맬 수도 있으니 찬찬히 살펴야 한다. 투박하게 의자 위에 놓인 팻말을 따라가면 벽에 새겨진 문장들을 만난다. 춤추는 별 하나를 낳기 위해서는 자기 안에 혼돈을 지녀야만 한다. 휴학을 하고 갈피를 잡지 못해 이리저리 흔들리던 순간들이 나의 별이 자리를 잡으려 헤매던 시간이었을까?
주택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책방이었고 내부는 꽤 협소했다. 방 하나는 책이 가득 꽂힌 서가 같았고 다른 방에는 그림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책을 둘러보다가 책상에 앉아 분주히 무언가를 준비하시는 책방지기 두 분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우리의 우연한 동행에 대해 설명드리니 아주 흥미롭게 들어주셨다. 말의 물꼬가 트여 한참을 서서 이야기하다가 책을 구경하고 함께 마당에 나가 책방에 대한 설명을 듣기도 하고 또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훗날의 나는 오늘의 이 동행을 어떻게 기억할까. 책을 구경하고 나오며 윤은 책방에도 책방지기 분들의 관심사와 취향이 오롯이 담겨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책방은 그들의 책장 한 켠을 떼어서 가져온 것 같다고. 듣고 보니 정말 맞는 말이다. 책방에 간다는 건 누군가의 서재에 초대받는 일일 수도 있겠다.
마지막 책방은 '블루 프린트 북'이었다. 1층에는 카페가 있고 2층에 책방을 운영하는 곳이었다. 거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휴학을 한 것과 비슷하게 윤 역시 취업 전 1년 간 쉼의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거창하게 한 것 없어도 그 시간이 매우 소중했다고 스스로를 알아가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말을 덧붙였다. 어디서든 무언가 나를 증명해 보이기 바빴는데 이 날만큼은 아직 부족하고, 배울 점이 많은 한 청년일 수 있었다. 그 사실이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다. 평소에 말을 하는 것을 참 좋아하지만 그보다는 더 들으려고 했다. 윤은 나에게 우리가 처음 만난 책방에서 선 책을 선물했다. 윤의 인생 책이어서 자주 사람들에게 선물한다는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이라는 이름의 책이었다. 거기에 서점 곳곳을 돌아다니며 산 굿즈들도 함께 손에 쥐어주었다.
"나도 그동안 살면서 받아왔던 거 돌려주는 거니까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마요. 나중에 지원님이 도움을 줄 수 있을 때, 다른 친구에게 베풀면 그게 갚는 거예요."
가벼운 마음으로 간 북 토크에서 이렇게 두 손과 마음 가득히 선물을 받고 돌아올 줄은 정말 몰랐다. 윤의 마지막 말이 마음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나도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나도 소중한 것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가장 혼란스러웠던 휴학 후 첫 한 달의 중턱에서 맞이한 잊을 수 없는 신비한 동행.
그렇게 우리는 '책방 친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