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확용:소소하지만 확실한 용기
독백을 제외한 모든 대화는 소재(대상)와 한 명 이상의 대화 상대가 있기 마련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당사자 없는 곳에서 하는 말-뒷담화-을 대부분 경계하고 부정적으로 본다. 심지어 어떤 처세 관련 책은 이를 역이용하여 당사자 없는 곳에서는 일부러라도 칭찬을 하라고까지 조언하니 뒷담화의 강력한 전파력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어린이들도 또래 친구들과 놀다 보면 취향과 생각의 차이로 의견 충돌이 생기곤 하는데, 배울만큼 배웠고 알만큼 안다는 자신감과 자존감으로 똘똘 뭉친 성인들 간의 대화에서 이러한 의견 충돌은 숨 쉬는 횟수만큼 자주 일어난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어떤 대기업 오너는 어떤 사람을 평가하기 위해서, "왜요?" 혹은 "그래서요?"라는 질문을 연속적으로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생각과 실력의 깊은 심연까지 확인할 수 있다는 알듯 모를 듯한 노하우를 전파하기도 하는데, 짧은 대화보다는 긴 대화를 통해서 상대방의 면면에 대해 파악할 수 있다는 것에는 어느 정도 동의한다.
예전에 지금보다 실제로 아는 것 없고 자신감이 없을 때 나도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가시 돋친 고슴도치나 잔뜩 독이 오른 맹수 같은 마음으로 종종 대화에 임하곤 했던 것 같다. 이런 마음가짐에서는 쉽게 상대방의 말을 인정하고 순응하기가 매우 어렵다. 정말 마음속으로 동의가 되고 공감이 되어도 '사족'을 달게 마련이다. 그 사족이 말뜻처럼-뱀의 다리- 상대방에게 전달이나 울림이 없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게 왠지, 습관처럼 나오곤 했었다. 마치 본능적인 방어기제와 같이.
하지만 그런 말들은 대부분 공허해서 나의 주장을 펼치고 상대방의 생각을 바꾸고 공감을 얻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마치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그런 허한 나의 실체와 자신 없음을 나만 모르고 다른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는 걸 모르기 쉽다.
그래서 '그렇군요'라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큰 자신감과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영혼 없거나 비꼬는 의도는 제외하고 말이다. '그렇군요'라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방의 나의 생각이나 지식과 다른 말을 인정할 수 있는 만큼 내 지식과 사고의 공간이 확보돼 있단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 타인의 생각을 얼마든지 받아들여주고 이를 나의 생각과 언어로 소화할 수 있다는 능력과 거기서 나오는 자신감의 증거일 게다.
그래서 난 오늘도 더 많은 경우에 '그렇군요'라는 말을 할 수 있는 나의 지식과 지혜가 늘어나길 기대하며 독서와 사색 그리고 대화에 더욱 커질 나의 여유로움과 용기를 상상하며 집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