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어쩌면 우리는

by 공인식

돌아가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이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설계되기도 했겠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제 몸을 기어코 다시

미로 속으로 돌려놓듯이.


나는 출구가 어디인지 안다.
당뇨를 앓고 있는 내 아버지도 안다.
병상에 누워 있는 저어기 누군가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우리 모두 출구를 안다.
햇살 좋은 날 가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 보고 싶어서,
해가 심술궂은 날엔 바람과 그늘에게 저녁 메뉴를 물어보면서,
그렇게 아주 느리게 출구로 걸어가는 법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