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삶 223일 차] 홍준성 <우리는 철학에 대해 어느정도..>
나태함은 시시콜콜 나를 노리고 있는 것 같다.
시어머님 생신상을 차린다고 새벽 5시부터 준비를 시작했다.
아침, 점심을 차려 식구들을 챙기고 나니 아무것도 하기가 싫었다.
요즘 다시 수면 사이클이 엉키면서 오늘도 새벽 1시 반에 깼다.
택배 박스에서 스마트폰 촬영 거치대를 꺼내 조립한다.
책상에서 사부작 거리는 나를 기록하고 싶은 마음에 장만한 것이다.
독서, 그림, 기록, 노래 만들기 등... 그런 놀이를 할 때 기록하는 또 다른 나만의 놀이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이다.
나는 왜 나를 기록하고 싶을까? 무엇을 남기고 싶은 걸까? 누군가에게 증명하고 싶은 것인가? 인정받고 싶은가? 잘 모르겠다. 그렇게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냥 나는 내가 끄적였던 흔적들을 다시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뭔가 과거 속의 나를 다시 만나 신나게 노는 느낌이다. 어려서부터 혼자 놀아서 그런지 혼자 놀아도 재미있다. 이렇게 독서기록을 계속 남기는 것도. 독서기록에 앞서 한참 수다를 떠는 것도 훗날 나에게 보내는 일기이자 편지라고 생각하면 영 헛짓은 아닐 것이다.
잠이 부족하니 확실히 기분이 가라앉는다. 독서글도 미루다가 밤 10시에 겨우 쓰려고 앉았다.
하필 이런 날 철학책을 읽어서 뭘 써야 할지 막막하다.
생각을 비우고 싶은데 어쩌다 보니 철학책을 읽어서 독서글을 쓰기가 더 힘들다.
철학이 뭐길래.
나는 그게 왜 궁금할까.
삶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
나의 소명이 무엇인지. 진리가 무엇인지.
무엇이 최선인지. 내 안의 선과 악이 충돌할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 왜 나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자주 휘청거리는지.
사람들의 행동을 이해하고 싶고. 어떻게 관계를 유지하는 게 현명한지 알고 싶다.
진짜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방향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알고 싶다.
이 모든 것의 답을.
그런데 이 책은 처음부터 철학은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선전포고를 하고 시작한다.
낭패다. 그냥 읽지 말까?
골치 아픈 철학을 왜 궁금해해서 무슨 소리인지 도통 감이 안 오는 이야기를 읽고 있을까.
이런 질문들도 철학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종의 "철학함"일까?
철학을 배우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 임마누엘 칸트
철학을 배우겠다는 건
바로 이 사유의 심연 속으로
잠수하겠다는 뜻이다
작가는 우리가 "짊어진 정신적 산소통"에 여유가 없음을 말한다. 철학을 궁금해하고 배운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펼쳤다면 "통제력을 잃고 어디론가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크므로 아직 늦어 않았으니 얼른 일상으로 돌아가길 바란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작가의 경고에도 철학이라는 문 앞을 서성거리로 했다.
철학을 배우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 철학자는 다른 철학자의 이른바 폐허 위에 자신의 고유한 업적을 쌓는다. 그러나 결코 모든 부분에서 항구적이라고 하루 있는 업적은 없었다. 따라서 우리는 철학이 아직 주어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도 철학을 배울 수 없다. - 임마투엘 칸드
아직 철학이 무엇인지 밝혀지지 않았다는 건
언제든지 다시 도전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앎은 부재하지만,
그 철학을 추구하는 철학함은 유효하기 때문이죠
철학함을 배우기를 원하는 사람은
철학의 모든 체계를
다만 이성의 사용에 관한 역사로
그리고 자신의 철학적 지능을
연습하는 대상으로 여겨야 한다.
- 칸트
사실 나는 철학이 무엇인지 그 개념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인간과 삶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끊임없이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요즘같이 효율성만 따지는 세태 속에서 무용해 보일지 모르는 사유, 고민, 통찰이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한 빛을 낼 수 있을지 모른다.
얼마 전 나민애 교수가 추천한 <만화로 보는 3분 철학>이라는 책을 구입해서 몇 장 읽어보았다.
나도 읽고 아이들도 읽어보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만화라서 거부감 없이 넘어가는 부분도 있고 설명을 쉽게 풀어 이야기해주는 것도 좋았다. 그렇지만 방대하고 어려운 철학을 축약해 놓으니 기본 개념이 없는 나는 단박에 이해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차근이 조금씩 "철학함"을 내 삶의 방향으로 잡고 걸어 나가며 철학적 지능을 연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실낱같은 작은 진리 하나를 건져 올릴 날도 있지 않을까.
"철학함"으로서 그동안 내가 바라보던 세상이 아닌 다른 시선과 방향으로 새로운 풍경도 바라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