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에서 진리를 알아차리기

[읽고 쓰는 삶 222일 차] 레프 톨스토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by 윤서린

책기둥을 무너뜨리겠다고 호언장담했건만 아직 책장 정리는 시작도 못했다.

오히려 정리한답시고 구석에 있던 책을 꺼내서 책기둥을 더 올리고 있으니...


우려했듯이 빛바랜 책들이 간직한 추억 속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서성거린다.

어제 다시 들춰본 <약간의 거리를 둔다>와 나란히 몇 년간 잠들어있던 책.


익숙한 표지를 보고 안쪽을 들여다보니 사진과 문장을 배열한 형식으로 편집된 책이다.

책 안은 엽서처럼 예쁘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때도 아마 표지가 마음에 안 들었을 것이다.

책의 전체 콘셉트와 따로 노는 듯한 이 디자인은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일까?

디자이너의 심오한 뜻을 알 길이 없다.


나에게 물음표를 던진다.

그런데 왜 샀을까?

아마 제목 때문일 가능성이 제일 크고, 그다음은 사진이 예뻐서, 톨스토이 유명하니까 읽어봐야지.

이런 의식의 흐름이었을 것 같다.


휘리릭 넘겨보니 밑줄이 없다.

아마 이때까지 책에 밑줄 치는 것을 좀 두려워했던 것 같다.

비뚤어진 밑줄은 견딜 수 없던 시절이었지 싶다.

지금도 몇 장 읽었는데 차마 예뻐서 밑줄을 못 긋겠다.

사진과 문장에 내 밑줄을 덧대면 이 책의 디자인이 망가진다.

그냥 눈빛으로 레이저 밑줄을 그을 수밖에.


레프 톨스토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사색]


생각은 손님과 같다.
처음 방문에서는 큰 기대 없이
찾아왔을지라도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더 자주 찾아올 수 있다.

그러니 그대가 오늘 '그것'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면 내일 실행해라.


그렇다. 생각이라는 손님은 매일 매 순간 수시로 나를 방문한다.

끝없이 노크하고 한참을 머물렀다가 간다. 같은 이야기를 수십 번 들려주기도 전혀 듣도보도 못한 이야깃거리를 던져 놓고 순식간에 사라지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매번 그 생각이 남기고 간 흔적들을 제대 정리하지 못한다. 늘어놓고 쌓아두고 때론 밟는다.


분명 생각이 놓고 간 것들 사이에 내가 해야 할 일, 하고 싶었던 일에 대한 조각들이 떨어져있었을 텐데. 게으른 완벽주의자다운 핑계로 '때가 되면', '준비가 됐을 때'만 외치다가 시작도 못하고 흐지부지되는 일들 투성이다. 글쓰기도 그 일 부 중에 하나다. 잘 쓸 수 있을 때 뭔가 기획하고 제대로 해봐야지 마음먹지만 늘 그 생각에만 머물다가 아무것도 못한다. 안 그래도 어제 몇 달을 벼르던 8인 가족이야기를 다룰 연재북을 하나 새롭게 열었다. 다행인지 모르겠으나 게으른 완벽주인 동시에 즉흥적으로 저지르는 짓도 잘하기에 나름 "실행"한 것이다. 잘한 일 맞겠지? 그렇게 믿고 싶다.


유익하고, 선하고, 위대한 것은
참으로 단순하다


단순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내게 유익하고, 선하고, 위대한 것은 무엇일까?

수많은 것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제대로 된 사리분별로 내 삶을 일으키는 것은 무엇일까?

과연 내 삶에 불필요한 것들을 가지치기해서 남겨둘 것은 무엇일까?


때때로 신의 진리는
어린아이의 한마디 말속에서,
바보의 헛소리에서,
미치광이의 꿈에서 찾아볼 수 있다.


톨스토이는 위대하고 신성하게 여겨지는 책에서도 유치하고 엉터리인 사상을 만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또한 주변의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진리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저 흘러가는 말속에서 내 의식을 전환시켜 주거나 깨닫게 해주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그것을 잘 받아들일 마음의 안테나를 켜고 있다면.


나 또한 아이의 말에서 깨달음을 얻은 적이 있다.

올해 3월 중순, 때늦은 폭설이 내렸고 나는 예쁘다는 생각 몇 초, 기후문제의 심각성 몇 초, 집 앞 제설 작업 때문에 귀찮아질 걱정에 꽤 오래 사로잡혀있었다. 그런데 12살 막내가 창문 밖으로 내리는 눈이 쌓인 뒷산의 풍경을 보며 말했다. "와... 3월에 눈이 내리다니 정말 귀하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너무 놀랐다. "귀찮다"와 "귀하다"의 극명한 차이. 아이가 말한 "귀하다"는 단어는 내 뇌리에 강하게 박혔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흔들리며 새롭게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부정적인 상황에서 긍정적인 면을 바라볼 줄 아는 태도. 나는 아이에게서 작게 빛나는 희망을 보았다.


오늘 하루 만나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삶의 진리를 품은 평범하지만 빛나는 문장들을 수집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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