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삶 225일 차] 료 <료의 생각 없는 생각>
완전 속았다. 상대가 속인 게 아니고 내가 오해했다는 말이 맞다. 표지 그림과 이름만 보고 외국 작가인 줄 알았다. 책표지에 그려진 시니컬한 표정과 작가 이름도 "료"라니. 당연히 외국 작가인 줄.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전시가 열린다는 게시물에서 본 익숙한 그림체. 자유롭고 거친듯한 느낌이 아주 마음에 든다. 책 제목도 한 몫한다. 나의 연재북 <파니파니냥의 영감 없는 영감 상점>과 <료의 생각 없는 생각>을 괜히 연관 지어보며 웃음이 난다. 왠지 이분도 나처럼 생각이 너무 많나 싶은 것이.
마침 궁금해졌던 차에 동네 독립서점에 입고 소식을 들었다. 딱 한 권 들어왔길래 '저요 저요'하고 찜을 해뒀다가 어젯밤에 찾아왔다. 책 읽기에 앞서 표지에 적힌 간단한 이력을 본다. 런던베이글 뮤지엄 외 여러 카페 창업, 브랜드 총괄 디렉터라는 이력이 보인다. 이때까지도 한국 사람인 줄 몰랐다. 무릎아래까지 올라오는 롱부츠를 신고 실루엣만 보여서 진짜 표지 그림이랑 작가가 얼마나 닮았는지 궁금해 찾아봤다.
똑. 같. 다.
근데 한국 사람이다.
엄청 유명한 베이커리를 창업한 사람이다.
얼핏 줄 서서 먹는 베이글 베이커리 맛집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온 게시물이 본 기억이 난다.
죄다 메뉴이름이 영어로 쓰여있던.... 이국적인 느낌의 베이커리, 이곳이 그녀가 운영하는 곳이구나.
책을 읽기 전 그녀에 대한 사전지식이 필요할 것 같아 인스타그램에서 최근 몇 개의 게시물을 본다.
그녀가 올린 책장 사진을 둘러보며 관심이 싹튼다. 궁금하다 궁금해.
목소리, 말투, 표정, 몸짓이 궁금해진다. 책 이야기를 나누는 유튜브를 찾아가 잠깐 그녀의 이야기들 듣는다.
책 읽기 전 이 영상을 본 게 신의 한 수다. 영상을 보며 짧게 기록해 본다.
목적도 의미도 없이 날 것 그대로를 기록한 것을 책으로 만들게 됐다. 나답게 살자. 끊임없이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 글, 낙서, 일기. 자신을 단속하는 이야기. 어린 시절 백과사전, 의학사전을 보면서 혼자서 묻도 답하는 어린이였다. 이상한 어린이, 희한하고 특이하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그녀의 패션감각은 빈티지를 좋아하던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고 전쟁고아였던 아버지는 외국 수녀원에서 자라게 되면서 자신만의 영어필기체를 만들어 기록하는 걸 좋아하셨고 그걸 어려서부터 보고 자라서 영향을 받았다. (그녀의 글, 그림, 메뉴판에서 영어를 쓰는 이유가 어려서부터 보고자라 익숙해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누군가는 이걸로 욕하던데 그냥 그녀의 삶의 일부구나 싶다.)
그녀의 루틴, 실내에서 운동화 신기 (자세 유지, 스타일리의 완벽한 일관성 추구), 미각을 깨우는 아침 커피 두 잔. 라떼, 카푸치노 마시기.
패션업계에서 일하다가 런던 여행 중 방문한 자유로운 분위기의 카페에 마음을 빼앗긴 그녀는 40일 동안 그곳에 방문하며 삶에 있어서 자신에게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
집에서 커피와 빵을 만들며 가상의 메뉴판과 가격표를 찍는 놀이 같은 연습의 시간을 갖고 5년이 지나 창업했다. 현재 브랜치 가치를 인정받아 2천억 원에 매각된 상태.
자, 이제 그녀를 어느 정도 알았으니 그녀가 쓴 글과 사진, 그림을 볼 준비가 됐다.
[1 나를 뒤흔든 런던]
그녀의 책장에 "싯다르타"가 보여 반가웠는데 "데미안"의 첫 문장이 떠오르는 그녀의 문장이 책을 연다.
'나'로 태어나
내가 되는 일이
지금처럼 어렵지 않기를
어려서 집안이나 학교에서 늘 이해받지 못했으니 그녀가 자신답게 사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지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그녀가 얼마나 자신답게 살아가고 싶은지, 그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 매일 어떠한 생각과 노력을 하는지 짧은 글에 담긴 그녀의 생각들이 조용히 마음 안으로 걸어온다.
이 책은 브랜드로 성공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 아니다.
1부에서는 런던에 방문했던 시기에 쓴 글로 여러 해에 걸쳐 쓴 짧은 글과 사진들이 나온다.
특별할 것 없는 풍경 속에서도 그녀는 "자기답게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자신도 그렇게 살아가려는 자세를 "마음 장바구니"에 채운다.
이국적인 사진과 그녀의 작업물, 요리 사진은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흐뭇하다.
그녀의 외롭고 불안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다가 마음결이 나와 닿아있는 부분이 있어서 놀랐다.
그녀가 자신을 “비에 젖은 작은 새“라고 표현하는데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 얼마 전에 내가 쓴 [계절 산문]에 “아름 모를 작은 새가 젖은 날개를 펼친다”라는 가사가 있는데 그녀가 마치 그 작은 새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젖은 날개임에도 멋지게 자기다움을 행해 날아갔구나 싶었다. 멋진 사람이다.
어제 다이어리 정리를 했다. 그동안 흩어져있는 나의 작은 기록들을 제자리에 놓고 새롭게 기록을 하기 위한 시도였다. 그녀처럼 매 순간 떠오르는 것들을 짧게라도 기록하고 그것으로 '나'를 찾아가는 여정을 해보고 싶다.
더 늦기 전에 나다움의 봉인을 풀어주고 싶다.
그녀가 책머리에서 끝인사로 쓴 문장을 함께한다.
다른 누가 되지 않고, 내가 되는 모두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