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삶 227일 차] 레프 톨스토이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마음이 바쁘다. 예전과 다르다면 끝없이 밀려드는 손님들에게 미처 준비되지 않는 음식을 대접하려 쩔쩔매는 악몽을 꾸지 않고 일어났다는 것. 그렇다. 추석에 이어 시어머님 생신을 지나 오늘은 시아버님 생신이다.
20년간 동네잔치처럼 치렀던 시부모님의 생신이 몇 년 전부터 조촐한 가족 식사로 바뀌었다. 마음의 부담도 덜어지고 무엇보다 꿈이 기억나기 전에 일찍 기상하는 버릇을 들이기에 뭔가 꿈을 꾼 것 같은데 기분은 나쁘지 않다. 어차피 해야 되는 일이라면 그냥 한다는 마음으로 새벽에 미역국 한솥을 끓여놓고 자서 그나마 마음이 편하다.
얼른 새벽독서와 독서노트를 쓰고 생신 음식을 만들어 출근 전 아래층에 내려가야 한다.
이렇게 뭔가 바쁜 날에는 스토리가 있는 책대신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책을 꺼낸다.
투털거리지 않게 나를 단속한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면서 중요한 지식은 '어떻게 살 것이냐'를 아는 것이다.
즉, 어떻게 해야 악을 적게 행하고 선을 많이 행하며 살 수 있는가를 아는 것이다.
선을 행하며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악을 적게 행하는 게 더 앞선다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생각보다 악한 마음이 불쑥 나올 때가 있어 스스로 놀라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을 다잡고 내 삶의 방향을 정비하는 일, '어떻게 살 것이냐'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이유다.
과거의 성현들이 전하는 가르침을 십분 활용하는 것도 지혜다. 하지만 자신의 이성으로 그 가르침을 검토한 후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세계와 신에 대한 관계를 수립할 수 있다.
최근에 모두가 옳다고 말하는 것에 한 번쯤 의문을 갖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이성으로 스스로 판단해서 받아들이는 것과 모두가 그렇다고 하니 휩쓸리듯 무지성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은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렇지 못한 것은 얽매이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닐까.
예술이란 예술가가 의식적으로 어떤 외부적 기호를 통해 자신이 겪은 감정이나 체험 혹은 상상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그들에게 그 감정을 이입시켜 그것을 체험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인간의 작업이다.
인스타그램에서 지켜보는 두 명의 화가가 있다. 한 사람은 이제 대학을 졸업한 젊은 화가로 개성이 매우 뛰어나고 표현도 거침없다. 그녀의 그림은 야생적이다. 매우 인상 깊다. 그녀의 그림 속 동물들을 보면 그녀가 투영된 듯하다. 한 사람은 나이가 꽤 많은 할머니 화가다. 그분은 달력 뒷면에 그림을 그리신다. 치매예방 차원에서 끄적이던 그림이 어느새 그분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아이같이 순수한 그림체로 그려진 꽃과 동물들은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분만의 그림체가 되었다. 나는 유명한 예술가들의 그림과 이 두 분의 그림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만의 감정, 체험, 해석을 보는 이들에게 잘 전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예술이라기에는 거창하지만 나를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로 그림이 존재한다.
나도 언젠가는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어떻게 살 것이냐'는 물음에서 '어떻게 살고 싶다'는 것으로 귀결되는 오늘의 두서없는 독서노트.
다시 쓰고 싶지만 이만 책 속의 문장 속에서 걸어 나와 부엌으로 가야 한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대신 잡채를 볶아야 한다.
내 삶에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기"를 마음에 담고 "어차피 할 거 좋은 마음으로 하기"는 머릿속에 넣는다. 아침에 벌써 두 가지 일을 하다니. 꽤 괜찮은 하루의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칭찬하며 하루를 시작해 본다. 상황은 바뀌지 않지만 태도는 내가 선택할 수 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