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퍼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읽고 쓰는 삶 240일 차]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by 윤서린


어제 독서글에서 언급했던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아침의 피아노>를 펼친다.

이 책은 그가 쓴 병중의 기록이고 "임종 3일 전 섬망이 오기 직전까지 메모장에 쓰인 글"이다.

이 안내글을 읽는 순간 나는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누군가의 생의 마지막을 들여다보게 됐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의 문장 하나하나가, 비어있는 여백들이 힘겹게 내뱉는 그의 호흡처럼 느껴졌다.

그가 죽음으로 향해 걸어가면서도 이 글을 남긴 이유, 다음 문장을 통해 짐작해 본다.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그건 타자를 위한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병중의 기록들도 마찬가지다. 이 기록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도 남겨질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_본문 중에서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

_ 11면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의 몇 문장만 읽어보아도 그가 타자를 지키려고 이 글을 썼다는 말이 수긍된다.

그는 죽음 앞에서 생을 이야기한다.

살아있음이 찬란한 순간임을 잊지 말라고. 다가오는 죽음을 겁내지 말라고.



"마음이 무겁고 흔들릴 시간이 없다.

남겨진 사랑들이 너무 많이 쌓여 있다.

그걸 다 쓰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_ 12면

"슬퍼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슬픔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

_ 14면


이 문장이 나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충만한 삶을 살았다면, 충분히 사랑하며 살았다면 죽음은 결코 슬퍼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는 것을.

만약 지금 그렇지 못한 삶이라면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렇게 살아가라고 내게 말해주는 것 같다.


"내가 존경했던 이들의 생몰 기록을 들추어 본다.

그들이 거의 모두 지금 나만큼 살고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내 생각이 맞았다. 나는 살 만큼 생을 누린 것이다."

_ 17면


그는 60대 후반에 이 문장을 쓰며 어떤 마음이었을까.

너무 이르게 다가온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한 철학자의 사유.

미련 없이 자신의 끝을 맞이하는 그의 자세에 나는 그가 살아왔을 생을 미루어 짐작해 본다.


"살아있는 동안은 삶이다.

내게는 이 삶에 성실할 책무가 있다.


그걸 자주 잊는다."

_ 24면


류샤오보가 남겼다는 말 : "나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다"

또 그가 부인 류사에게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말 : "잘 살아가세요"


괄호 속 한자어를 읽으니 이 말은 더 자세히 이런 뜻이다.

"늘 기쁨을 잃지 말고 살아가세요"

_ 42면


김진영 작가는 철학자로서 살아오며 '정신은 깊고 고요한 것'이라 여기며 살았지만 뒤늦게 깨달았다고 말한다.

목청 높은 트럭 야채 장수의 "생의 명랑성"에서 그는 "정신은 우렁찬 것이기도 하다"는 생각과 함께 그 목청의 정신을 배울 때라 말한다.


또한 자신이 수업하며 인용했던 카프카의 희망변증론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희망은 세상 어디에나 있지. 그런데 그 희망들은 우리의 것이 아니야.' _ 카프카

이 문장에서 그는 희망의 부재와 부당한 현실의 관계에 대해서만 따지고 물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앞 문장 '희망은 세상 어디에나 있지'라는 이 문장이 비밀스러운 화두처럼 여겨진다고 말한다.

작가는 이 문장을 통해 '세상 곳곳에 편재하는 희망들'을 떠올리며 말한다.


"세상이 다시 다정해진다"

_ 38면


"돌보지 않았던 몸이 깊은 병을 얻은 지금, 평생을 돌아보면 만들고 쌓아온 것들이 모두 정신적인 것들뿐이다. 그것이 이제 시험대에 올랐다. 그것들이 무너지는 나의 육신을 지켜내고 병 앞에서 나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까. 이제 나의 정신적인 것은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자기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_ 29면


한 번만 더 기회가 주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 46면


작가는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이려다가도 세상의 풍경을 바라보면 다시 간절한 마음이 된다.

바람에 날리는 나뭇잎, 정류장에 들어오고 나가는 버스들, 걸어다는 사람들의 어깨에 흩어지는 빛, 물건 값으로 실강이하는 아주머니와 유쾌한 농담을 하는 목청 높은 야채장수를 통해 느껴지는 생의 생명력, 명랑성, 희망, 사랑....


그의 글을 따라 읽어가다가 책에 소개된 그의 이력을 다시 읽었다.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다.

나는 철학자 김진영을 그의 책 <아침의 피아노>에서 처음 만날 줄 알았지만 사실은 그보다 전에 그의 존재와 마주친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의 이력에 소개된 '역서- <애도 일기>'.

그렇다. 2025. 10. 18일 독서글에서 소개한 롤랑 바르트 <애도 일기>를 바로 김진영 작가가 번역한 것이다.

그 시기가 2012년이다. 김진영 작가는 롤랑 바르트가 어머니를 잃고 그 상실감을 글로 남긴 이 작품을 번역하며 많은 감정이 들었을 것이다. 지금 보니 <애도 일기> 마지막에 김진영 작가의 글이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알았을 것이다. 남겨진 사람들의 상실, 슬픔, 사랑을.


그래서였을까. 나는 감히 상상한다.

그가 번역한 <애도 일기>가 <아침 피아노>의 씨앗이었다고.

처음에 소개한 본문의 문장을 다시 한번 더 소개한다.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그건 타자를 위한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병중의 기록들도 마찬가지다. 이 기록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도 남겨질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

_본문 중에서


철학자 김진영의 <아침 피아노>는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과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휘청거리는 우리들을 위해 그가 남긴 마지막 선물이다.


우리 앞에 생의 마지막이 다가왔을 때 ‘슬퍼할 필요도 이유도 없는’ 충만함과 사랑이 가득하길.

그런 마음을 모아 오늘을 더 아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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