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쓰는 삶 239일 차] 김겨울 <책의 말들>
17세기 작곡가 장 필리프 라모의 [les tenderes plaintes]를 듣는다. "상냥한 호소 혹은 부드러운 탄식"이라는 제목의 곡인데 피아노의 선율이 아직 잠들어 있는 나를 톡톡! 건드려 깨운다. 한 곡 반복 재생을 해두고 책을 다시 읽는다.
깜깜한 거실, 책상 위 스탠드 불빛과 모니터 불빛 앞에서 평소 듣지 않는 클래식을 듣는 이유는 김겨울 작가 때문(덕분)이다.
<책의 말들>에서 들어가는 말에 김겨울 작가는 자신이 이 책을 쓸 때 이 곡을 듣고 또 들었다고 한다.
"책을 외면하는 이들과 애석해하는 나에 대하여" "부드럽고 상냥하게 탄식하는 법을 배워야"했기에. (14면)
김겨울 작가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하면 이렇다.
내가 가끔 보는 유튜브 <겨울상점>에서 책을 소개하는 유명한 북튜버, 책에 관한 영상을 찍고 소개하는 크리에이터다. 원래는 싱어송라이터, 라디오 DJ, 작가이기도 하다. 그녀가 얼마나 책에 진심인지 "독서문화상 문화체육부관광부장관 표창"도 받았다. 현재는 이과와 문과의 통합형 인재로 현재는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철학과를 다녔고 책을 소재로 영상을 만들며 문학을 사랑하는 나는 한때 이과에 몸을 담고 있었다. 과학을 좋아하고 법의학 공부를 하고 싶어 했으므로 당연한 수순이었다." -김겨울 [겨울의 언어] 92면
책에 진심이 그녀가 책에서 고른 '책에 대한 문장'으로 이루어진 책을 읽어본다.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공감하기 위하여]
부드럽게 살랑살랑 거리는 피아노 선율 뒤로 펼쳐진 첫 문장은 이렇다.
사자가 위장에 탈이 나면 풀을 먹듯이
병든 인간만이 책을 읽는다.
_ 강유원 [책과 세계]
작가는 분명히 '상냥한 호소'라고 했는데 속았다.
내가 잠시 그녀를 망각했다. 문학적이지만 냉철한 판단력과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100개의 문장 중에서 이 문장을 1번에 놓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_ <책의 말들> 17면
김겨울 작가는 강유원 작가의 문장을 인용하며 자신의 책 사랑을 고백한다.
기꺼이 '책의 세계의 작은 벽돌 하나'가 되기로 한 그녀는 책에 대한 간절한 사랑이 "개발의 논리로 훼손되지 않기를"(17면) 바란 다고 말한다.
두 번째 문장으로 넘어갔다가 흠칫 놀랐다.
내가 며칠 전 읽다가 덮어둔 책의 문장이 나와서다.
그 책은 아직 독서글에서 소개하지 못했다. 분량은 짧지만 깊이감이 있는 책이라서 다 읽은 후 독서노트를 쓸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나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_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이 문장은 나도 인상 깊어 밑줄을 그었는데 내가 책에서 문장을 대하는 방식과 닮아서였다.
한 문장을 오래오래 아끼면서 꼭꼭 씹는 걸 좋아한다. 물론 아직 소화시키지 못한 채 입안에서 까끌거리는 문장들도 많지만 언젠가는 죽처럼 꿀꺽 삼킬 수 있지 않을까.
어떤 문장은 조각조각
제자리를 찾고야 만다.
그것은 읽는 이의 마음에 파고들어
당당히 점유권을 주장한다
_ 김겨울 [책의 말들] 19면
작가는 미문을 잘 쓰는 것과 글을 잘 쓰는 것은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문장에는 분명한 힘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 문장을 뚝 잘라 낼 때 위험한 이유는 글에서 문장 하나하나가 모여 저자의 의도가 두껍게 전달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나도 독서기록을 쓰면서 같이 공유하고 싶은 좋은 문장들을 소개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이 파악되기 어려운 문장은 아무리 좋아도 그 하나만 떼어서 소개할 수가 없다.
그럴 때는 여러 줄의 문장을 일일이 타이핑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그 문장의 힘을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런 수고로움은 사실 아무것도 아니다.
요즘은 휴대폰으로 텍스트를 바로 복사해 붙여 넣을 수 있는 기능이 있지만 문장 부호, 한자, 영어 등이 섞여 있는 문장은 정확도가 떨어지기에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밑줄을 긋고 다시 한 글자 한 글자 타이핑을 하면서 마음속에도 또박또박 문장의 발자국을 찍는다.
내일이면 매일 아침 읽고 독서록을 쓴 지 240일 차, 드디어 <독서처방과 밑줄 프로젝트 8권>이 마무리된다.
엊그제 만난 글벗께서 '그동안 독서를 꾸준히 했으니 독서력이 많이 좋아졌겠네요?'라고 물었다.
나는 딱히 긍정의 답을 하지는 못하고 그냥 웃었다.
얼마 전 책장 정리를 하며 완독을 한 책이 몇 손가락 안 된다는 사실에 살짝 기죽어 있었기 때문이다.
긴 세월 집중력과 무기력으로 문장 자체를 읽어내지 못하던 시기를 지나 독서초보자인 '독린이'로 이제야 첫걸음을 뗀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변화도 있다. 장편소설을 읽을 집중력이 없으나 단편소설을 읽을 수 있게 됐다. 시, 에세이, 산문이 아닌 다른 분야의 책도 힐끔 거리게 됐고 무엇보다 하루 몇 장이라도 꾸준히 책을 읽는 사람이 됐다.
불안감이 많고 감정적으로 쉽게 휩쓸려가던 내게 책은 삶의 중심추가 되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오뚝이처럼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책에서 찾은 문장으로 나를 벌떡 일으켰다. 물론 흔들흔들 위태롭게 다시 넘어질 때도 있지만 이제는 예전처럼 불안하거나 많이 겁내지 않는다.
나는 언제든 책으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믿고 있다.
_ 윤서린 2025. 10. 28.
추신 : 3번째 문장이 궁금해서 책을 넘겨보고 소름이 돋았다. 김진영 작가 <아침의 피아노>의 문장이 나오는 것이다. 글벗을 만나러 가기 전 들린 서점에서 이 책을 펼쳐서 읽어보다 데려왔고 좋은 책을 발견했다고 보여주며 자랑했는데 이렇게 또 다른 책에서 바로 이어지게 만나다니. 이것은 운명...
좋은 책은 언제나 다른 작가들의 책 속에서 소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