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마지막 역에 도착하는 일"

[읽고 쓰는 삶 238일 차] 김신지 <제철행복>

by 윤서린

만나고 싶은 사람은 기회가 되면 놓치지 않고 만나고 싶다. 독서글에서 몇 번 소개한 김신지 작가를 드디어 다음 주에 만난다.

퇴근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무려 1시간 40분, 환승 세 번을 해야 하는 험난한 여정임에도 나는 기꺼이 '저요 저요'하고 손을 들었다.


<제철행복>은 나에게 참 귀한 책이다.

긴 우울감에서 나를 건져 올려준 책. 이 책을 따라 24 절기, 1년을 살아가다 보니 나는 언제나 자연이 주는 선물을 받을 준비가 된 사람이 되었다.


365일 동안 매일 자연이 내 눈앞에 선물 보따리를 펼쳐 놓고 '오늘은 어떤 걸 고를래?' 묻는다.

때론 보물 찾기처럼 꽁꽁 숨겨 놓기도 하는데 길을 걸으며 구석구석 숨겨진 자연의 작은 선물을 발견하는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미소가 가득해진다.



김신지 <제철 행복>

[ 상강 : 기차를 타고 가을의 마지막 역에 도착하는 일]


상강 : '언 이슬', (서리 상, 내릴 강)

24 절기 중 18번째 절기, 가을의 마지막 절기.

양력 10월 23일 무렵부터~11월 6일 무렵


오늘 아침 최저 기온이 2도다.

왜 이렇게 확 추워졌지? 하며 생각해 보니 어느덧 가을의 마지막 절기를 지나고 겨울의 시작, 입동(11월 7일 무렵)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서리가 내리기 때문에 노지에 심은 고추, 늙은 호박, 콩을 수확하며 밀과 보리 씨를 뿌리고 양파와 마늘도 심는다.

농사의 변화는 가까이에서 접하기 힘들지만 길가에 가로수는 쉽게 우리에게 가을을 알려준다.



일조량이 줄어들고 밤기온이 떨어지면 나무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줄기와 잎 사이에 "떨켜층"을 만들어 잎으로 가는 수분과 영양분을 차단한다. 이때부터 잎의 엽록소는 파괴되고, 엽록소에 가려졌던 다른 색소들이 울긋불긋 드러나는데 그게 우리가 보는 단풍이다. (248면)


요즘 길을 걷다 보면 휴대폰을 들어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을 찍는 사람들을 종종 발견한다.

나 역시 조금 걷다 나무 한 번, 발 밑에 떨어진 낙엽 한 번, 그러다 결국 무릎을 접고 색이 고은 단풍 하나를 집어든다.

마음에 드는 아이는 가방에 들어있는 책 사이에 살포시 꽂아 말린다.

나의 이런 이 행위는 몇 년 후, 우연히 책 사이에서 말린 단풍잎이 발견하며 미소 짓는 미래의 어느 날을 상상하게 한다.


가을은 쇠락의 계절이 아니라 순환의 계절

(254면)




(...) 가을은 새잎이 싹트는 철이라고 할 수 있다. (...) 이미 봄이 시작되어 새로운 싹이 만들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 지금 해내지 못한 일은 4월에도 일어날 수 없다.

미래란 우리 앞에 놓인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싹눈 속에 자리하고 있다.

미래는 이미 우리 곁에 있다. 지금 우리 곁에 자리하지 않은 것들은 미래에도 우리와 함께 할 수 없다.

- 카렐 차페크, <정원가의 열두 달>, 185-186면


가을에 나뭇잎이 떨어진 앙상한 나무의 빈가지와 바람에 뒹구는 낙엽들을 보면 괜히 센티해진다.

일명 "가을 탄다"는 말.

조금은 쓸쓸해지고 괜히 인생의 마지막 쇠락을 보는 듯 짠해기도 한다.

하지만 '카렐 차페크'는 가을의 나무는 지금 누구보다 바쁘게 자신의 생을 살아가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모든 것이 끝나 멈춰버린 것 같지만 나무는 겨울을 준비하고 봄을 맞기 위해 여전히 분주하다.

다만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을 뿐.


가을이 되면 단풍놀이를 위해 명상을 찾아가고 단풍이 멋진 뷰가 있는 캠핑장과 카페가 북적인다.

단풍을 보겠다고 굳이 저렇게 소란스러울 일인가 싶지만 김신지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저마다 제철 숙제를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이다.


* 김신지 작가의 [상강 무렵의 제철숙제]

- 아래를 보며 걷는 단풍 산책하기, 가을의 색감을 모아서 찍어보기

- 한 번쯤 보러 가고 싶은 커다랗고 근사한 나무 찾아보기

- 막바지 단풍을 보러 남쪽으로 짧은 기차 여행 다녀오기

_ <제철행복> 256면


* 윤서린의 [상강 무렵의 제철 숙제]

- 예쁘게 벌레 먹은 단풍잎을 찾아 책갈피 만들기

- 바스락 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가을의 소리 저장해 두기

- 빨간 열매가 달린 나무 찾아보기


가을은 기차에서 보는 풍경처럼 순식간에 우리 곁을 지나쳐가지만 그렇기에 그 순간이 더 소중한 것이 아닐까 싶다.

절기상으로 상강은 가을의 마지막 역이다.

우리 모두 지친 삶에서 잠시 정차해서 깊어가는 가을 하늘, 빈가지의 나무, 곱게 물든 단풍, 바스락 거리는 낙엽, 빨간 열매를 보물찾기 하듯 찾아보자.


우리 모두 단풍이 예쁜 자기만의 장소를 발견해보자, 그리고 마음껏 눈과 마음, 사진에 담아보며 제철 숙제를 해보자. 혼자여도 좋고 조별과제처럼 우르르 여럿이 몰려다녀도 좋다.



가을에는 조금 소란해도, 극성스러워도 괜찮다.
그것은 가을에게 보내는 우리들의 응원가다.

- 윤서린, 2025. 10.27.


가을이 쓸쓸함이 아니라 그 누구보다 풍요롭다는 것을, 그 어느 때보다 부지런한 계절이라는 것을 느끼고 알아가는 하루가 되길 바란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27화알알샅샅이 '나다움'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