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글을 언제부터 인식했던가. 책상 서랍을 열면 7살 된 기념으로 유치원 친구들에게 받은 축하 편지 뭉텅이가 놓여 있다. 그중에는 서툰 글씨로 “나랑 결혼해 줄래?”라고 적힌 것부터 억지로라도 "축하한다"는 웃픈 편지까지 다양하다. 어릴 적 나는 책장이 놓인 방구석에서 부모님의 자작시가 적힌 수첩을 발견했다. 그중에서 마음에 든 한 편의 시를 골라 새하얀 도화지에 적고 주변에 해바라기를 그려 남몰래 초등학교 숙제로 제출했다. 바로 어린 나의 세상에 문학으로서의 글이 들어온 순간이었다.
나와 글의 첫 만남은 내가 그것을 예술로 인식하게 되고서 시작되었다. 내가 시보다 신문을 먼저 펼쳐봤더라면, 그래서 잿빛 지면에 어지럽게 인쇄된 세상의 용어들을 먼저 접했더라면, 나에게 글이란 기본적으로 기자의 과업에 가까웠을 것이다. 작가 은유의 《글쓰기의 최전선》을 매개로 삼아 나의 삶을 역행해본다. 산들바람 같은 시 한 편을 정성스레 필사한 그날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에게 글이란 작가의 표현대로 ‘구멍 난 가슴을 어떤 방식으로 언어화’했다는 말인가?
내가 쓰는 글은 대개 진솔하나 영감의 지원을 받았다. 은유 또한 지적하듯이, 나는 나의 언어를 건설하기 위해 애썼다. 평범한 글감을 아름답게 비추는 데에는 문학이라는 용어가 요긴하게 쓰였다. 나에게 문학한다는 건 해야 하는 이야기가 많은 사정을 뜻했다. 활자에 담아두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감정의 물줄기가 울컥울컥 쏟아져 버릴 것이기에 필연적으로 흘려보낼 수밖에 없는 그런 상태 말이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언어로 글을 윤색하며 글의 변천을 끝까지 책임지는 데 정성을 쏟았다. 그저 “적합한 단어를 찾기 위해 공을 들이는” 과정이 좋았다.
‘영원’이 헝클어진 머리칼을 풀어헤치는 것이라면 결혼은 나와 함께 춤을 추는 당신 앞에서 꼬아 엉킨 첫 번째 머리 가닥을 푸는 일이다. 그리고 사랑이란, 매일 밤 풀린 머리카락을 세는 연인에게 횟수를 매겨 주고, 그것이 여든 번째든, 백여든 번째든 꼬인 가닥이 남아 있지 않을 때까지 뜬눈으로 완전한 기다림을 속삭이는 일이다.
작가의 시선은 독자인 나에게 전송될 때 확장되었다. ‘영원’을 통해 결혼을, 결혼에서 사랑으로 사유의 폭이 증폭됨을 위의 글—존 버거의 《결혼식 가는 길》에 대한 나의 답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는 글쓰기의 옷을 입고 예술을 자문하고 있었다. 1차적인 텍스트를 통해 얻어진 통찰이 나만의 미적 감수성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내가 《글쓰기의 최전선》105쪽의 ‘귀엣말’이라는 단어를 보고 흠씬 감탄한 것도 글의 행간 속에서 꿈틀대는 예술의 아지랑이를 낚아챈 것과 다름없다. 언젠가 이 단어를 나의 글에 녹여 쓰리라 다짐할 때, 문자를 초월하는 아름다운 연대가 펼쳐지지 않겠는가?
은유는 책의 도입부에 글을 쓴다는 것은 고통이 견딜 만한 고통이 될 때까지 붙들고 늘어지는 일임을 말한다. 덧붙여, 나는 글이 써진다는 것은 고통이 견딜 만한 고통일 때에만 허락되는 축복이라는 것을 알고야 말았다. 폭풍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면 글을 다스리는 신체의 기능은 저하된다. 좀처럼 글을 쓰고 있지 못하던 시기에는 은유 말마따나 글쓰기를 향한 ‘열심’이 어떤 가치를 낳는지 정립하지 못해 이리저리 방황하게 되었다. 존재의 빈곤 속에서 오는 허무와 불안은 세상의 존재들을 실컷 외면하도록 부추겼다. 부득이하나 필연적인 외면. 그것은 존재의 내면을 깊게 비추는 계기가 되었다.
작년 4월, 큰일을 겪고 절망적인 마음을 어찌어찌 달래 보려 빈 문서를 열었다. 수필은 브런치북으로 매주 1회씩 연재했으며 그렇게 약 12주 동안 꺼내 보고 싶지 않은 나의 상처와 대면해 나갔다. 놀랍게도 “상처는 덮어두기가 아니라 드러내기를 통해 회복”되었다. 키보드에 손을 얹고 가슴을 드릴로 파내는 작업은 구멍 난 시간에 보편적인 서사를 제공했고 타자의 환대를 경험하게 했다. 글을 발행한 후, 일인극인 줄로만 알았던 과거의 장막이 걷혔다. 익명의 객석에 걸터앉은 독자들은 지나간 시간을 담보하는 은인이자 위안이 되었다. 내가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솔직하는데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이고, 활자는 내 진솔함보다 더 관대했기 때문이다.
글은 삶의 언어였다. 직면한 상황에 따라, 변덕스러운 날씨에 따라 번역의 말씨가 세밀하게 조정되는 별스러운 언어. 나는 예술과 삶이라는 선분 위에서 위태롭게 때로는 명랑하게 외줄을 타고 있었다. 기다란 줄에서 반동이 느껴질 때면 아슬아슬하게 매달리며 글에게 구조신호를 요청하기도 하고, 매끄러운 곡선 구간에서는 나풀거리며 곡예하기도 했다. 그 모든 발자취는 글자가 되어 커다란 삶의 도안이 되었다.
은유는 사건이 쓸어간 자리를 관찰하고 통과한 신체가 변화를 겪는다고 말한다. 일상의 부스러기가 “별처럼 은은히 차오른 글은 구체적인 ‘한 사람’을 선명하게 보여준다”라고 덧붙이면서. 삶을 거쳐간 글들이 지난한 삶을 변호한다면 글은 삶의 아득한 고향이 된다. 작가와 독자는 마음 한편에 글을 품고 만인의 이주민으로 살아가는 존재다. 아름다울수록 침묵하되, 아름답지 않아도 침묵하지 않은 땅을 꾹꾹 디디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