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 배수아

열대의 시간, 보이지 않는 부류의 목소리들

by 이혜지



1

불투명한 라디오 소리가 들린다. 어두컴컴한 바(bar)에서 눈을 감고 대화를 나눈다.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에는 두 개 이상의 감각이 공존하지 않는다. 활자는 청각적 감각에 특화되어 있다. 인물의 삶 또한 불투명하다. 전직 배우이자 오디오 극장의 사무원이자 사서이자 매표원인 ‘아야미’는 곧 폐관될 극장 사정에 전의를 잃고 미래의 구직 또한 망설인다. 극장장 또한 내세울 것이라곤 학창 시절 유학을 다녀온 것일 뿐 극장의 몰락을 막을 능력이 없다. 그의 여자 후배이자 아야미의 독일어 선생 ‘여니’도 이혼한 마당에 병까지 얻었다. 그런 불안한 청각의 세상에서 라디오마저 시원찮다면 어떻겠는가.




라디오는•••••• 스위치가 고장이 났거든요. 그래서 저절로 켜졌다가 저 혼자 저절로 꺼져버리곤 해요.

p. 30




2

부하라는 남자는 시인 여자의 뒤를 쫓는다. 시인 여자가 저녁마다 읽는 책은 『눈먼 부엉이』였다. “보이지 않는 무거운 쇠사슬이 보이지 않는 철장에 끌리며 음산하게 절렁거렸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게 되는 부하의 심장은 음산하게 절렁거렸다. 부하는 시인 여자에 집착한다. 정확히는 흠모하는 여자가 오래전에 각인된 그 ‘시인’이길 꿈꾼다. 부하가 밤마다 종종 통화하던 ‘프리랜서 여니’와 시인 여자와 오디오 극장 직원 아야미는 동일한 인물일까? 그들의 치마는 동시에 펄럭이며 초라하게 작은 발과 그 위의 싸구려 힘줄을 들추게 될까.




그는 꿈과 현실이 동떨어진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전혀 모순으로 느끼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면 왜 꿈은 꿈이라고, 현실은 현실이라고 구별해서 불려야 한단 말인가!)

p. 88




3

“당신이 여니가 아니라고요?”

여니의 부탁으로, 아야미는 시인으로 알려진 볼프와 만났다. 아쉽게도 볼프는 시인이 아닌 추리소설 작자였다. 그가 입국한 날에 국제공항이란 곳은 정전이었다. “어둑하고, 침침하고, 흐릿하고, 마치 보이지 않는 거머리 떼처럼, 숨을 막히게 했다.” 볼프의 소설 속 여주인공이 여니인지 누굴지는 모른다. 그는 여니라는 사람을 통해 글감을 얻고자 아시아에 도착했는데, 여니는 죽고 아야미란 사람만이 앞에 있다. 아야미는 늙은 시인의 뒤통수에 대고 말한다.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줘요,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줘요.




그럼요, 우리는 알려지지 않은 장소를 발견할 거예요••••••. 항상 그렇듯이.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에요. 지금은 여니가 부재중이랍니다.

p. 162




4

다시 아야미와 극장장의 서사로 돌아간다. 아야미는 독일에서 오는 그 시인을 만나러 공항에 가야 한다. 극장장이 그녀를 붙든다. 그는 머리를 그녀의 품에 기대어 울컥거리면서 오래오래 토한다. 극장장의 대못이 박힌 대가리는 주술을 부리며 말한다. 이제 나를 다른 세계로 데려가줘요. 그녀는 그의 꿈에 등장한 상상의 여자에 불과했다. 나를 꿈꾸는 자가 내가 알지 못하는 신이 아니라 그였다면 각자는 서로의 상상의 산물이 될까.





우리가 서로의 상상의 산물이라는 사실에 건배

p. 188





난해한 꿈이라면 그 안을 비집고 들어가는 것보다 길 위에 덩그러니 남는 편이 낫다. 배수아의 이야기가 그러하다. 시작과 끝이 불분명한 데다 내부의 서사들은 변주와 반복으로 끊임없이 곡예한다. 소설은 천진한 이해보다는 악동스러운 오해를 요한다. 오해를 거듭하다 보면 독자는 이해 못지않은 재창조에 통달하게 된다. 어둡고 축축하고 열대의 꿈처럼 비몽사몽인 밤중에 라디오의 음성이 지지직거린다. 보이지 않는 시간, 알지 못하는 사건이 라디오에 전송된다. 작가는 왜 어둡고 축축하고 열대의 꿈처럼 비몽사몽인 밤중에 굳이 알려지지 않는 쪽을 택했을까. 작가는 왜 꿈과 현실이라는 이분법으로는 포괄할 수 없는 저 바깥의 세상으로 인물들을 기어이 데려가며 주변을 유독 검푸르게 칠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