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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라노 May 01. 2018

저출산

하긴 이 어려운 결심이 쉽겠어?

재작년에 임신을 하고, 작년에 아이를 낳기까지의 압박은 상당한 것이었다. 결혼 전에는 늦지 않게 결혼을 하라는 압박을 받았고, 결혼을 하고 나니 늦지 않게 아이를 낳으라는 말을 들었다. 심지어는 지금 낳아도 늦었다는 말까지. 낳으면 길러줄 것도 아니면서, 분유 한 통, 기저귀 한 팩 사다줄 것도 아닌 사람들까지 왜 내 삶에 고나리질을 하는 것인지 납득이 안갔었다. 하지만 그 압박과 아이를 갖는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을 모두 눌러버렸던 감정이 있었으니 그것은 두려움이었다. 


먼저 경력을 비롯한 나의 자아를 잃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회사생활 또는 사업을 출산, 육아와 병행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없었다. 내 몸으로 낳은 아이인데 다른 사람은 도와주겠다고 했다가도 나몰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집안일은 재주도 없고, 흥미도 없는, 집안에 오래 앉아있으면 우울해지는 내가 전업주부의 인생을 살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누구에게는 그게 보람차고, 기분 좋은 일이겠으나 나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알뜰하게 남편 월급 모아서 살 자신도, 깔끔하게 집 청소, 아기 빨래 해놓고 보글보글 된장찌개 끓여놓고 신랑을 기다릴 자신도 없었다. 그렇다고 최소한의 것만 대충하고 마음편할 수 있는 성격의 사람도, 나는 아니었다. (실제로 육아휴직 3.5개월 동안, 대상포진 걸리고 경미한 우울증이 있었는데, 집안도 깔끔하게 해두지 못했다. 하하)  


또 하나는 아이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내가 이 아이가 원하는 정서적, 경제적 욕구를 채워줄 수 있을까? 이 험난한 헬조선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도록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을까?나라는 사람의 인성도, 내가 들고 있는 것도 너무도 부족하게 느껴졌다. 내 마음 속에는 항상 '언젠가는 낳을 거라면 한살이라도 빨리 낳아야 하지 않겠어? 절대 안낳을 것이라고 결정 어차피 못할텐데 그냥 낳아'라는 마음과 '너무 걱정된단 말야. 경단녀가 멀리 있는 것 같아? 개업은 또 쉬울것 같아? 그리고 아이 낳아서 잘 기를 자신 없으면 낳는게 무슨 소용이야. 그건 태어날 아이한테 할 도리가 아니여.'라는 마음이 계속 전쟁 중이었다. 


이 전쟁을 종식시켜 준 것은 나에게 고나리질을 했던 현명한 어른들도, 경제적 여건도, 사회적 환경의 변화(랄게 있겠지?)도 아니었다. 그거슨 신랑이었다. '괜찮아, 내가 있잖아.'라고 해주는. 신혼 초기에 임신한 줄 알고 부산을 떨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반짝반짝한 눈을 해서는, '진짜? 진짜?' 하며 임신 테스터기를 열몇개를 사온 신랑을 보면서 좀 부족해도, 좀 모자라도 이 것이 행복이겠다 생각하게 되는 시점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아이가 찾아와줬다. 살은 좀 많이 찌고, 태동 때문에 잠을 못자는 날들은 많았지만, 평탄한(?) 임신기간을 보내고, 14시간의 진통 끝에 응급제왕을 하고 만난 온 몸에 몽고반점이 가득한, 머리숱 많은 남자아이는 작고, 예쁘고, 성스러웠다. 이제 돌을 맞이 하는 아이는 표정 하나로, 손짓 하나로 나에게 많은 것을 알려줬다. 나는 내 스스로가 모성애가 없는 매정한 엄마이면 어쩌나 고민을 많이 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귀엽고 작고 꼬물거리는 생명체를 보는데, 사랑하지 않을래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잠을 제대로 못자서 내 스스로 신경질적이고 짜증 많은 사람이 되면 어쩌나 고민했다. 그런데 그냥 자연스럽게 할 줄 알게 되었다. 무언가를 사랑하고 지키는 것은 사람을 강하게 만들어줬다. 내가 우리 친정 부모님께 이런 존재였던가. 나도 한때는 그냥 마냥 사랑스러운 존재였나, 이런 낯간지러운 생각도 들었다. 


그냥 문을 하나 여는 것과 같았다. 문을 열기 전에는 너무 무섭고, 걱정되서 문고리만 잡고 있었는데, 열고보니 그냥 마냥 좋았다. 물론 열기 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다행히, 감사하게도 시부모님께서 육아를 많이 도와주시고 신랑도 육아를 많이 해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워킹맘은 시간거지이고, 브런치 글을 하나 쓰려고 해도 새벽에 쓰거나 휴일에 놀러가는 걸 포기하는 대신 시간을 짜내서 쓸 수 밖에 없다. 그것도 아기님이 협조해서 잘 주무셔 줄 때만 가능한 일이다(바로 지금 같은 행운의 순간에!). 욕심 많고 재주 많은 요즘의 2030 여성들이 감당하기 쉬운 일상은 단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인생에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이 아이를 낳은 일인 것 같다. 많은 숙제를 받았고, 때론 모래주머니를 차고 사회생활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끼지만, 내 자신이 성숙하고, 나 스스로를 좀 더 사랑할 수 있게 된 계기였다. 비혼을 선택하거나 DINK를 선택하거나, 그건 모두 존중 받아야 할 개인의 선택이다. 여건에 따라 아이를 낳는 것이 여의치 않은 경우도 많을 것이다. 그냥 나는 아이를 낳아서 참 좋았더라는 이야기. 그래서 저출산이라는 사회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사회적 여건이 좀 더 좋아지면 좋겠다. 그래서 사람들이 삶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아이를 만나는 기쁨에 좀 더 무게를 둘 수 있도록. 


(나이브한 글쓰기라도 그냥 써보기로 결심한 퐁이누나)



우리 가족: 신랑, 나, 큰아들님 (by 신랑) 

*멘토링 노트 표지로 신랑이 그려준 사진을 일부 발췌했다. 하하. (다음 책 낼때 채택할게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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