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연애 프로그램에서 들었던 말이다. 우리는 회사, 가족, 친구관계 어디서나 늘 조연인데, 연애에서만큼은 서로가 서로에게 주인공이 된다고. 그런 연애를 끝내고 결혼을 한다는 것은 멜로영화 주인공을 하다가 아침 연속극의 아무개가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사실 아기가 없다면 그렇게까지 생활이 달라지진 않는다. 아기가 생기는 순간, 모두의 생활이 변한다.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슈퍼스타가 된다. 그 외 인물들은 가끔 화면에 비추기도 하지만, 거의 스텝이나 다름없다. 하루하루가 바빠 하루 종일 남편과 메시지를 한 번도 안 했다는 걸 모르고 넘어가기도 하고 아기 이유식을 주고 치우다가, 밥을 차리고 먹다가 남편과 서로 한숨을 푹푹 내쉬기도 한다. 하루가 끝나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가 오늘 처음 거울을 본다. 생기를 잃은 사람이 서있다. 누군가에게 멋진 주인공이 아니어도 내가 나를 잃어버릴까 봐 덜컥 겁이 난다. 부랴부랴 좋아하는 음악을 선곡하고 나름의 감성을 채우며 샤워를 한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 시시껄렁한 프로그램을 틀고 남편과 맥주를 벌컥, 마신다. 그래 이 맛이지!
‘데이트’를 하다가 이렇게 ‘생활’이 되었다. 우리는 서로의 ‘생활’이 되었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는 일이 점점 드물어지고, 같은 곳을 보게 된다. 티비든 아기든. 그래도 함께 웃는다. 마주 보고 웃는 일보다 같은 곳을 보고 함께 웃는다. 이것도 꽤 괜찮다. 아니, 사실 굉장한 게 아닌가? 있어야 할 사람이 제자리에 있는 것, 서로가 평범해지는 것. 그건 서로가 불안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래 이게 바로 안정감이었다. 공허가 체질인 줄 알았던 내가 안정감을 느끼다니. 더군다나 이 안정감을 어린 우리가 만들고 있다는 게 더 마음에 든다.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부모님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었다. 조금 늦었지만 어디가서 할 말이 생기신 것이다. 빨리 늙어 할머니가 돼서 일 좀 그만하고 싶다던 엄마는 어쨌든 진짜 할머니가 되었다. 칠십이 다 지나가는데도 여전히 일은 놓지 못하지만, 엄마는 자신의 인생 중에 지금이 가장 행복하단다. 그렇다면, 나는 나를 조금 잃어버려도 괜찮을 것 같다. 나를 줄여서 엄마, 딸, 며느리, 아내의 능력치를 조금씩 더 써도 좋을 것 같다. 두 사람이 만나서 두 가족이 한 가족이 되었다. 우리가 행복하면 두 가족이 행복하다. 우리는 기꺼이 오늘도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