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

by 박아담

나는 한 동네에서 30년이 넘도록 살았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태어나 결혼을 할 때까지 산 것이다. 그렇게 한 곳에서 오래 살다 보니 아파트에 살아도 누구네 집이 몇 평이고, 가족이 어떻게 되고, 별의 별일을 그냥 알게 된다. 오며 가며 만나게 되는 아주머니, 아저씨들. 슈퍼 아저씨, 미용실 원장님, 중국집 아저씨, 치킨 집 아줌마. 상가 분들은 유독 한자리에서 오래 장사를 하셨다. 그러니 내가 누구 딸인지 이 동네 사람들은 모두가 아는 거다. 그럼에도 우리 엄마는 동네에서 누굴 만나기만 하면 옆에 있는 내 손을 꼭 잡고 우리 딸이에요, 우리 딸! 하면서 자랑을 한다. 도대체 뭐가 자랑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그러면 나는 최대한 상냥하게 웃으며 인사한다. 이건 엄마와 나의 암묵적인 룰이다. 직전까지 엄마한테 세상 짜증을 내고 있다가도 엄마가 지나가는 누군가와 눈을 맞추기라도 하면 돈도 나오지 않는데 자본주의 미소로 환하게 인사한다. 언제부터 이렇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됐다. 아마 본능적으로 이게 ‘효도’라고 알았던 것 같다. 엄마에게 큰돈을 벌어다 줄 수는 없어도, 짜증을 안 낼 수는 없어도, 엄마가 아는 동네 사람들에게 가장 상냥한 딸이 되는 것. 그게 우리 엄마의 힘이고 자랑이라는 것. 그건 그냥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이제 결혼해서 가끔씩 동네에 가게 되면 엄마는 나를 미용실도 데려가고 부동산도 데려간다. 내가 귀찮다고 해도 엄마는 “아잇 인사만 하는 거야!” 그러면서 끌고 간다. 거의 ‘우리 딸 순회인사’랄까. 정말 귀찮기도 하지만, 내가 동네에 다녀갈 때마다 엄마는 누구네 아줌마가 상냥한 딸 있어서 좋겠다고 했다면서 행복해한다. 그걸로 됐다 싶다. 임신하고서는 더 많은 순회인사를 돌아다녔다. 이제 몇 주가 됐네, 몇 개월이 됐네, 딸이라네, 만삭이네. 온 동네 사람들이 우리 엄마의 손녀까지 벌써 알았다.

출산 예정일 당일, 임신기간 내내 한 번도 병원에 온 적 없던 엄마가 웬일로 마지막이니까 자신이 오겠다고 했다. 엄마는 꽤나 긴장이 됐는지 설레었는지 약속시간을 정확히 맞춰 나타났다. 결국 유도 분만 날짜를 잡게 되었다. 유도 분만이 더 오래 걸리고 힘들다던데, 걱정되긴 했지만 걱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병원을 나와서 모처럼 엄마와 데이트를 했다. 점심도 먹고 커피도 마셨다. 병원을 다녀온 후로부터 아랫배가 싸르르- 통증이 있었지만 진통까진 아닌 것 같았다. 엄마는 온 동네 사람들과 알아서 그만큼이나 바빠 결혼 전에는 나와 그 흔한 카페도 제대로 가본 적이 없다. 문득 커피를 마시다가 머리도 제대로 못 하고 나온 엄마를 보면서 우리 엄마가 더 늙어버리면 어쩌지,라는 생각에 지금 모습을 남기고 싶어 핸드폰을 들었다. 그러자 엄마는 “아이 찍지 마 엄마 이상해!” 그러더니 같이 찍자니까 또 세상 화사하게 웃는다. 나는 우리 엄마가 너무너무 사랑스럽다. 물론 끔찍할 때도 있지만. 엄마는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내가 너네 오빠를 4시간 만에 낳았잖아, 너는 침대에 눕자마자 나왔다니까! 정말 숱하게 들었던 말인데, 그 말이 얼마나 대단한 얘기인 지 이제야 와닿는다. 4시간? 정말 딱 엄마만큼만 아기를 낳았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엄마는 야야 네가 내 딸인데, 엄마 닮지! 하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자길 닮아서 애도 잘 낳을 거라며 용기를 주는 건지 잘난 척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엄마는 무슨 훈장을 받은 얘기인 것처럼 본인의 출산 에피소드를 계속 말했다. 마지막은 외숙모가 고모처럼만 애 낳으면 6명도 낳겠다고 했다면서 어깨를 으스대면서 끝이 났다. 아무튼 그렇게 엄마랑 꽤 오랜 시간 밖에서 노닥거리다가 피로가 몰려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랫배 통증이 꽤나 지속적으로 아팠다. 혹시? 설마? 집에 도착해 통증 주기를 체크해 보니 5분 간격, 3분 간격까지 나오는 것이었다. 진통이다! 캐리어에 주섬주섬 짐을 싸고 남편에게 연락했다. 오늘이다. 오늘이 온 것이다. 두려움이 엄습했지만 곧 아기를 만날 수 있다는 설렘으로 마음을 다잡았다. 6시가 되기도 전에 남편이 왔고 15분 만에 병원에 도착했다. 그렇게 꼭 4시간 만에 아기의 울음이 병실 밖으로 터져 나왔다. 나는 울 기력도 소리 낼 기력도 없이 축 처져 있었다. 옆에는 남편이 아기를 안고 코끝이 새빨개져있었다. 나는 남편을 보자마자, “우리 둘째는 없어….”라고 말했고, 남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고생했다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 꼭 엄마만큼 아기를 낳았다. 이 정도면 순산이다 싶었다. 강렬하기도 하면서 멍하기도 한 시간이 흘렀다. 남편은 한참 동안 아기에게 코를 빠트리고 있었다. 나는 대뜸 “내가 오빠 딸 낳아줬다? 그니까 잘해….”라고 힘없이 말했다. 그러자 남편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딸이지- 우리 딸." 그래 맞아, 우리 딸이지 우리 딸…. 그 순간, 엄마에게 나 같은 존재가…, 존재만으로 자랑인…, 그런 게 내게도 생겼다는 게 실감이 났다. 우리 엄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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