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

내가 오래도록 바라보고 그리워하게 될 것

by 김소형
사실은 흰 접시에 대해 말하고 싶었는데
흰 접시의 테두리만 만지작거린다

너는 참 하얗구나
너는 참 둥글구나
내게 없는 부분만 크게 보면서

흰 접시 위에 자꾸만 무언가를 올린다
완두콩의 연두
딸기의 붉음
갓 구운 빵의 완벽과 무구를

그렇게 흰 접시를 잊는다 도망친다
흰 접시는 흰 접시일 뿐인데
깨질 것이 두러워 찬장 깊숙이 감추어 놓고

흰 접시를 돋보이게 할 테이블보를 고르다가도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언제든 깨버리면 그만이라는 듯이 말한다

듣고 있었을 텐데

그럴 때 이미 깨져버린 것
깨진거나 다름없는 것


좋아하면서도 가까이하기 어려웠던

것들의 이유를

위의 <시>에서 말해주는 것 같아

변하지 않고

'그 무엇'이라 언제나 정의내릴 수 있는

본질을

얼마나 찾아 헤맸는지

내가 오래도록

바라보고 그리워하게 될 것은

연두, 붉음, 완벽과 무구를 덜어낸

그냥 흰 접시일 뿐

마음 속 깊은 곳

어린 시인의 말처럼

쓰러진 물컵 속에 물 외엔

아무것도 없고

슬픔이나 절망 같은 건

더더욱 없다고


​​​

'시를 환상 속에 두지 마세요'

그 어떤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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