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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형 Nov 01. 2022

너무 시끄러운 고독

책에 대한 오마주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삼십오 년째 책과 폐지를 압축하느라 삼십오 년간 활자에 찌든 나는, 그동안 내 손으로 족히 3톤은 압축했을 백과사전들과 흡사한 모습이 되어버렸다. 나는 맑은 샘물과 고인 물이 가득한 항아리여서 조금만 몸을 기울여도 근사한 생각의 물줄기가 흘러나온다.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나는 이제 어느 것이 내 생각이고 어느 것이 책에서 읽은 건지도 명확히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지난 삼십오 년간 나는 그렇게 주변 세계에 적응해왔다. 사실 내 독서는 딱히 읽는 행위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사상이 내 안에 알코올처럼 녹아들 때까지. 문장은 천천히 스며들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실뿐 아니라 혈관 깊숙이 모세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온다. 그런 식으로 나는 단 한 달 만에 2톤의 책을 압축한다. p.9

여기까지가 책의 간단한 줄거리이자, 주 내용이다.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작가의 대표작이라 할만한 소설로, 자기 자신이 ‘내가 쓴 책들 가운데 가장 사랑하는 책이며, 내가 세상에 온 것은 <너무 시끄러운 고독>을 쓰기 위해서였다’고 말할 정도로 중요한 저작이다. 무엇보다 책을 고독의 피신처로 삼는 주인공 한탸의 독백을 통한, 책에 바치는 오마주이다.​


책의 가치를 깨달은 사람에게는 책, 그 자체가 하나의 보물이다. 그런 사람들은 책장이 꽉 차면 책장을 또 사서 꽂고, 이사를 갈 때도 버리지 못하고 이고 지고 다닌다.

사람들은 왜 책을 읽는 것일까? 나는 왜 책을 읽을까? 둘 곳도 없는 책을 사고 또 사서 왜 쌓아두는 것일까. 읽는 책들의 대부분이 인생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실용서 같은 것들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가령 ‘이게 사랑입니다. 이게 도덕이고 양심입니다.’처럼 한 줄로 정의 내리는 책 보다 ‘이게 사랑 아닐까. 이게 도덕이고 양심이지 않을까.’ 생각하게 해주는 책을 더 좋아한다. 그 안에서 나만의 해답을 찾아가길 바라고, 내가 인생에 두는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금 깨닫기를 바란다.

책 하나로 인생이 뭐 그리 대단하게 바뀌겠냐마는, 분명 작은 변화 하나쯤 이뤄내줄 것이라 생각한다.



​​

<너무 시끄러운 고독> 이 역설적인 제목보다 이 책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찬란한 슬픔의 봄’처럼 그 속에는 진실이 담겨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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