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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형 Aug 26. 2024

취향의 변화를 겪는 사람들

좋다 싫다를 넘어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을 취향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각자의 취향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어떠한 이유 덕분에 생긴 취향일 수도, 직접 겪은 일에 의해 생긴 취향일 수도, 그냥 이유 없이 마냥 좋아져서 생긴 취향일 수도 있을 것이다. 10대 20대를 지나 30대에 서 있는 나는 취향의 변화를 겪어 왔다. 늘 변하지 않는 기본 베이스는 깔아둔 채 때에 따라, 기분에 따라, 환경에 따라 변해왔다.


최근 나의 성향이 의심되어 재검사한 mbti 검사에서는 나를 ESFJ가 아닌 ISFJ 인간 유형으로 재분류했다. n년째 ESFJ로 살아왔는데 앞 글자 하나 바뀌었다고 사람 마음이 이렇게 들쑥날쑥하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서 거의 부정적 소극적으로 답하게 된 나. 친구에게 말했더니 “그건 E와 I를 떠나서, 그냥 나이 먹으면서 사람이 싫어진 거 아냐?”라고 하더라.. 물론 E와 I는 단순 ‘외향적인 사람 VS 내향적인 사람’으로 가르는 게 아닌, 에너지의 방향이 어디로 향하냐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떠오른 대답들은 이러했다. Q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는 것에 대해 부담을 느끼나요, 아니면 설레나요? A 부담스럽고 귀찮아요. 예전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흥미롭다고 느껴졌는데, 이제는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면모들이 새롭고 흥미롭달까요. 그렇게 느껴진 이후로는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더 가깝게 지내고 싶은 마음입니다. Q 대화할 때 주로 듣는 편인가요, 아니면 이야기하는 편인가요? A 원래는 이야기하는 편이었고 대화를 주도하는 편에 가까웠는데, 이제는 먼저 화두를 던지는 것도 어렵고 내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마음이 편해요. Q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에너지를 느끼나요, 아니면 오히려 에너지가 소모되나요? A 소수와 있을 때는 에너지를 받는 것 같은데, 다수와 있을 때는 에너지가 소모되는 것 같아요. 회사에서 더 그렇다고 느껴요. 쉬는 시간에 다수가 앉아서 수다 떨고 간식 먹는 시간이 오히려 저한테는 일 같다고 느껴져요. 내가 가진 에너지는 3-4명에게까지만 발휘되나 봅니다. Q 글로 표현하는 게 편한가요, 말로 표현하는 게 편한가요? A 글로 표현하는 게 편해요. 누군가는 알아먹기 힘들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제 기준에서는요. 아무튼! 이제는 ESFJ 말고 ISFJ라고 기억해주세요.



친구 중에 '화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여자'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가 있는데(내가 지음), 그 친구는 작년까지만 해도 화려하고 남들이 보기에 누가 봐도 삐까뻔쩍 해 보이는 것이 취향인 여자 사람이었다. 단 한 번도 원색 컬러의 매니큐어를 바른 걸 본 적이 없고 비즈가 붙어있거나, 특이해 보이는 패턴이 들어가 있었다. 네일뿐만 아니라 옷 스타일도 그랬다. 어느 날 '일부긴 한데 내 옷장이야'하고 보여줬던 사진을 보고 놀랐던 적이 있다. 머릿속으로는 상상해 봤고 구매 버튼도 여러 번 눌러보았지만 도저히 엄두가 나질 않아 늘 구매 실패로 돌아가곤 했던 옷들.. 내 옷장은 희멀겋고 심심한 옷들이 대부분인데.. 친구의 옷장 속 옷들은 하나하나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언젠가 같이 쇼핑몰 구경을 한 적이 있는데, 그녀와 어울릴 것 같은 가방을 가리키며 "네가 좋아할 스타일인데?"라고 하니 "나 요즘 취향 좀 바뀌었잖아. 내 스타일 아니야"라고 하더라. "어떻게 바뀌었는데?"라고 물으니 "요즘은 좀 깔끔한 게 내 취향이야"라고 했다. 그러곤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니 하얀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모습이 눈에 띄었다. 몇 주 뒤 만난 친구는 베이지 색상의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나는 여성들의 구직활동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중 취업 준비를 하며 지친 마음을 힐링 시켜주는 프로그램도 있다. 이번에 진행되었던 힐링 프로그램은 <나만의 모루인형 만들기>였는데, 연령대는 2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했다. 시작 전부터 화면에 띄워놓은 인형 샘플을 보며 연달아 '귀엽다' '어떡해 너무 귀여워'를 외치는 사람들.. 현장 반응에서도 느낄 수 있었지만 만족도 결과는 지금까지 진행했던 힐링 프로그램 중 가장 높았다. "너무 재미있고 마음이 몽글몽글 했어요!" "여기저기 웃음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동심으로 돌아가 활기차게 작업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등의 후기가 올라왔다. 젊은 사람들만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었다. 나이를 먹으면서 다른 것들에 자연스레 밀려나버린 혹은 꽁꽁 숨겨왔던 취향을 마음껏 드러내도 되는 시간이 돼주었다.


담당 선생님들과 "귀여우면 다예요"하고 프로그램을 계획했는데 ‘우리의 작전이 통한 것인가? 역시 귀여우면 다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료가 남아서 나도 만들게 되었는데, 자주 들고 다니는 가방에 걸어놓은 상태다. 요즘 학생들이며 서른살 된 내 친구들도 가방 옆에 귀여운 인형 하나쯤 달고 다니던데, 사실 나도 귀여운 것을 보면 사족을 못쓰는 편이다. 하지만 꼭 친구들에게 가방에 달린 게 뭐냐며 면박 아닌 면박을 주곤 한다. 그렇다. 지금까지 난 숨기고 있었다! 귀여운 걸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누군가 알게끔 드러내고 싶지는 않아서 버스를 타거나 누군가를 만날 일이 생기면 슬며시 가방 안으로 넣게 된다. 생각보다(?) 아기자기한 것들을 좋아해서 품고 다니고 싶지만 막상 내 물건들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그러고 보면 취향은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추구하는 지에 대한 소중한 단서를 제공한다. 과거에 좋아했던 음악, 영화, 책, 음식 등이 지금은 어떻게 느껴지는 지. 최근 새롭게 관심을 갖게 된 분야나 취미가 있는 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의 가치관이나 생각이 달라진 부분이 있는 지. 새로운 경험이나 사람과의 만남이 나의 취향에 영향을 준 적이 있는 지 한번 쯤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세상이 변하고 우리가 경험하는 것들이 변하면서 취향이 변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의식하지 않다 문득 떠올리면 혼란스럽고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니까.. 나를 더 잘 이해하고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면 어쩌면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르겠다.


가끔 화려한 것에 눈길이 가고, 도전하는 일에 대한 고민이 점점 길어지고, 귀여운 것을 품고 싶은 마음을 숨기고, 새로운 만남과 환경보다 자꾸만 익숙한 관계와 공간 속에 나를 가두려는 모습들을 받아들이면서, 5년 뒤 10년 뒤 찾아올 변화들을 반갑게 맞이 할 준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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