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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Sep 05. 2018

스물여덟번째 요가이야기

우르드바다누라아사나



마음이 미끄러지던 시절이 주는 선물


분명 여기가 목적지로 향하는 길인 것 같아서 한참을 살펴보고 믿고 성실하게 걷는데도 마음이 멀기만 하다면 그냥 잠깐 멈출 일이다. 멈추고는 고개를 들어 먼 곳을 보며 숨을 한 번 고른다. 다른 길이 보일지도 모르고 높아진 하늘과 조금 가까워지면 어렵게 여겨지는 지금 그 길밖에는 길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잠시 멈춰보면 더 가야할지 다른 길로 방향을 틀어야 할 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가끔은 멈춰서서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위로나 답이 늘 앞에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지나온 길에서, 어느덧 잊혀진 줄로만 알았던 시절에서 나아갈 마음을 세우게 되기도 한다. 오늘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는 일이었다. 내 삶의 뒷편에서 나를 앞으로 밀어내어 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 때 참 그 순간 끝나는 것 같았는데 용케도 여기가지 왔네, 함께 이야기하는 일이었다. 나의 못난 모습을 나와 함께 보았고 그 모습을 응원해주었던 사람들, 가족들, 시무룩한 내 곁에서 말없이 자리를 지켜주었던 마음들을 만난다. 내가 여기에서 나를 밀어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얻는 것은 그런 시간동안 나에게 등을 보이지 않았던 고마운 이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산은 나를 거절할 수가 없어. 발이 미끄러지는 것은 그냥 내가 미끄러진 것이고, 산이 나를 밀어낸 것은 아니야. 함께 걷던 동료들은 어느 순간 나보다 빠른 걸음으로 보이지도 않는 먼 곳에 가 있을 수 있고, 내가 계속 멈추지 않으면 거기에 있는 그들을 만나게 되기도 하지.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주변을 계속해서 지나갔어. 그런데 말이야, 누구도 대신 걸음을 놓아줄 수는 없더라.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더 먼 곳을 보는 일은 다름아닌 내가, 내 두 발로, 내 힘으로 걸어야만 하는 것이었어." 오랜만에 만난 어머니는 여전히 한쪽 무릎이 아프지만 백발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후지산을 등반하고 왔다면서 환하게 웃으셨다. "다녀오고 나니 내 안에 무언가가 생긴 것 같아. 내년에도 갈거야. 갈 수 있다면 자꾸만 갈거야."라고 이야기하시는데 정말 무언가, 생겨난 것 같은 표정이셨다.

우르드바다누라아사나를 할 때면 하체의 힘을 잘 채워두고, 꼬리뼈를 살짝 말아올려 허리에 공간을 만들고 아랫배를 부드럽게 열어둔다. 손바닥에서 올라오는 힘은 견고하게 채우고 겨드랑이 안쪽을 기분좋게 열어두면 어느새 가슴이 부드러워진다. 앞면이 부드럽게 열리는 순간 숨은 정체없이 나를 관통해 지나간다. 잘 들어오고, 잘 내보낼 수 있게 된다. 그것은 그렇게 흘러가는 것인 줄만 알았다. 손목이 불편했던 어느 날 숨이 턱턱 막히는데 나는 더 무얼 하면 좋은 것일까? 질문을 해도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정수리를 내려놓으면서 비파리타 단다아사나로 내려와 숨을 쉬다가 문득 '아, 몸의 뒷면!' 하는 생각이 다가왔다. 앞에서의 열림이 덜컹거리는 날에는 이제 등을 좁히고 하체의 뒷면에도 힘을 더 강하게 채운다. 등을 좁히며 만든 힘으로 '미세요.'라는 글씨를 보고는 문을 밀어내듯 가슴쪽을 향해 밀어내면 정말 문이 열리듯 가슴이 부드럽게 열리는 것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요즘의 부드러운 열림은 어느 날의 불편했던 몸과 숨이 막혔던 기억, 뒷면에 자리하고 있는 힘을 다시 한 번 꺼내든 그 날에서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자꾸만 발이 미끄러지던 산길에서 멈출 수가 없었다고 이야기하셨다. 누가 대신 저 앞에 데려가 줄 수 없음이 분명한 그 길에서는 도무지 멈출 수가 없었다고 이야기하셨다. 그리고 그 시간이 지나간 다음에는 가슴을 활짝 열어두고 숨을 크게 쉬고 더 앞으로 걸어나올 수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하셨다. 수도 없이 미끄러졌던 마음들과 먼 곳에서 답을 찾아 헤매며 거리를 쏘다니던 시간들을 눈을 감고 불러온다. 찾아다니던 답도 내 마음의 독기를 빼줄 위로도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여기 내 등에, 내 삶의 뒷편에, 내 눈에 보이지 않아 때로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뒷모습에서 모두 가만히 숨죽이며 내가 멈추고 돌아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멈추고, 숨을 돌리고, 눈을 감는다.
보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막 보이는 것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이제서야 내가 보게된 것이다.
여전히 그런 것이 많다.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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