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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들 Nov 14. 2018

서른여덟번째 요가이야기

숩타 코나아사나



시간의 무늬



언니는 선과 선을 엮어 면을, 그 안에 무늬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언니에게 타피스트리를 배우던 날이었다. 하나의 면, 하나의 무늬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세로의 선과 가로의 선이 차곡차곡 쌓여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로의 선만 계속되거나 가로의 선만 계속되는 일만으로는 실이 풀어져버리게 마련이다. 그렇게 선이 가로와 세로로 거듭 덥혀서 만들어진 면에는 나무가 하나 생겨나고, 그 나무 옆에 다른 나무가 하나 생겨나고, 어느덧 언니의 작업물 속에서 모두 모여 숲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숨을 깊게 쉰다. 숨으로 세로의 선을 채우고, 가로의 선으로 멀어진다. 세로의 선으로 뻗어나가고, 가로의 선으로 다가온다.

오래전 나는 세로로 시간을 중첩하여 아주 높아지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왜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일까 이제와 돌아보면 도무지 그 마음을 알 수가 없지만 그 때에는 그 생각 덕분에 하루하루 앞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세로의 시간 안에서 마음은 언제나 불안했다. 단단하게 뭉쳐질 수 없었고, 위로만 훌쩍 솟아버린 세로의 마음은 언제든 무릎에 힘이 빠지는 순간이 오면 모두 해체되어 버릴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어서 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느 봄날에 세로의 시간이 부서졌다. 그래서 조각조각이 되어버린 세로의 시간을 끌어안고 가로의 방향으로 멀리가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을 멈추고 갈 수 있는 최대한 먼 곳까지 걸어나가보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은 삶의 쉼표 이거나 한 단락을 마치고 찍은 마침표일 것이라고 여기며 무심코 떠났다. 긴 여행이 끝나갈 무렵에 알게 되었다. 멈췄던 것도 아니었고, 마침표를 찍었던 것도 아니라는 것을. 세로의 시간 위에 가로의 시간이 덮입혀졌고, 그렇게 만든 무늬들을 두 손에 안아보니 일상의 멈춤이라고 여긴 여행은 그저 새로운 단락하나를 새롭게 써내려갔던 것이었다.

삶의 속도가 느려지고 더이상 세로로도 높아지지 못하고 가로로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만 같은 날에는 멈춰버린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멈춰버린 것만 같은 그 순간, 딱 그 순간에만 발견할 수 있는 내면의 기록이 있다. 숨이 드나들며 만드는 가로와 세로의 무늬와 마음이 오락가락하며 남긴 세로와 가로의 흔적을 만난다.

숨을 다시 한 번 깊게 쉰다. 세로로 새겨지는 호흡과, 가로로 날아가는 호흡을 마주한다. 세로로 쌓아올리는 호흡과, 가로로 펼쳐지는 호흡을 어루만진다.

카르나피다아사나에서 숨을 살펴보다가 가장 적절하다 여기지는 호흡에 다리를 먼 곳으로 뻗어본다. 자연스럽게 숩타 코나아사나로 연결된다. 코로 들어온 숨은 세로로 몸을 세우고, 가로로 몸을 펼칠수 있게 도와주는데 그러는 동안 시간에 부드러운 무늬가 새겨진다. 이렇게 동작안에서 머무르는 모습을 누군가 슬쩍 바라본다면 아마 멈춰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고요하게 머무르는 동안 내면에서 일어나는 세로의 시간과 가로의 시간의 반복을 눈치챌 수 있는 것은 숨을 관찰하고 있는 나, 나를 그만큼 더 잘 알게 되어 아름답고 선선한 무늬를 새기고 있는 나이다.

살아있으니까, 멈춘 것처럼 보이는 그 순간에도 우리들은 계속 어딘가로 흘러가고 있다. 온기가 있고 아름다운 무늬를 만들기 위해서는 세로의 시간과 가로의 시간이 모두 필요하고 세로의 마음과 가로의 마음 역시 모두 필요하다. 세로로 혹은 가로로 멀어졌다가 가까워지며 무늬를 만들고 있다.




글/ 예슬 (brunch.co.kr/@yogajourney)
그림/ 민지 (brunch.co.kr/@am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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