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곳의 새벽을 기록합니다.
혼자서 새벽을 맞이한 지가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던가.
새벽 4시~5시에 일어나서 시작하는
하루는 달콤했고 한편으로 외로웠다.
그래서 그랬나.
평소보다 그저 좀 더 눈이 일찍 떠진 하루를
외로움으로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새벽 3시, 새벽의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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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서 달성공원 새벽시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도보로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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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에는 이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도 없을뿐더러 뚜벅이인 나에겐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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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 삼아 걸어가지 뭐 ' 라는 생각에 뒤따라
' 참, 냉장고에 야채가 다 떨어져 가는데
시장이니까 저렴하게 살 수 있겠지?"
라는 생각에 큰 장바구니를 어깨에 메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가는 내내 거리에는 나와 내 몸통 남짓한
장바구니, 그리고 짙은 새벽의 공기뿐
사람의 흔적은 찾아볼 수 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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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으려고 나섰던 길에
좀 더 외로워지려는 찰나
다닥다닥 붙어있는
각양각색 7개의 의자들을 만났다.
대구역 지하차도 밑,
속칭 대구역 굴다리 밑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벼룩시장이
낮 시간 동안 거의 항상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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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온 건지 출처를 알 수 없는
온갖 잡동사니들이 문자 그대로 '즐비'하다.
잡동사니들의 수에 비해
찾아오는 이들의 수는 턱없이 부족해서
굴다리 밑의 상점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아가고 있다.
이 의자들도 원래는 주인을 찾고 싶었던
수많은 잡동사니들 중 하나였을 터.
지금은 '잡동사니' 에서 상인들이 앉아서
이야기하며 쉬는 '쉼터'로 그 쓸모가 바뀌었다.
원래의 쓸모를 다 하진 못했지만
또 다른 쓸모를 다 하고 있는 7개의 의자들.
하지만 그마저도 새벽의 시간에서는
사람들을 하염없이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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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 않는 이들을
최대한 단정하고 이쁜 모습으로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는 의자들을 보며
어쩐지 과거의 나와 비슷한 것 같아
코 끝이 시큰거렸다.
대구역 굴다리를 지나
새벽시장을 향해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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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진 간판 하나 볼 수 없었던
짙은 새벽의 공간에서
유일하게 켜져 있는 간판 하나를 보고
반가운 마음이 불쑥 들었다.
새벽의 검푸른 색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샛노란 색깔의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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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가게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나이 지긋하신 사장님께서
가게 맞은편 자전거에 무언가를 싣고
어디론가 떠날 준비를 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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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이 시간에 큰 장바구니를 매고 지나가는
나를 신기한 듯 흘깃 쳐다보시더니
가벼운 따릉 소리와 함께 검푸른 골목으로
사장님은 익숙한 듯 사라지셨다.
자전거 위 물건들을 지탱하기 위해
위태롭게 엮여 있는 낡은 노끈들이
이 거리에서 가장 첫 번째로
간판을 킨 세월이 얼마나 긴 지
어렴풋이 말해주는 듯했다.
오전 4시 30분, 나름대로 긴 여정 끝에
드디어 달성공원 새벽시장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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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시장의 한창때보다는 많이 일렀는지
이제야 장사 준비를 시작하시는 분들이
태반이었고 아직 빈자리들도 많이 보였다.
일찍 도착한 터라 장이 자리 잡을 때까지
약 1시간 동안
새벽시장의 끝과 끝을 천천히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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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간 동안 내가 목격한 것은
조금씩 그리고 당연한 듯 채워지는
상인 분들의 제 자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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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제 자리라는 말이 꼭 맞았다.
장사를 시작하기 전
(시장을 하나의 큰 직장으로 본다면)
오래된 동료들과의
프림 향 짙은 싸구려 커피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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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걱거리는 가판대를 펴고
나는 감히 이름조차 외울 수 없는
수많은 종류의 물건들을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리며 진열하는
덤덤한 표정의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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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야간작업을 마치고
등받이 없는 불편한 의자에 쓰러지듯 앉아
막걸리 한 잔을 기울이는 손님과
그를 토닥이는 화상 자국 가득한 거친 손.
이 모든 게 너무나 당연한 듯이
그들 각자의 제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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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있어서 당연한 제 자리는 무엇인가?
또, 내 곁을 당연한 제 자리로 여기는 사람은
누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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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와 마음을
끊임없이 간지럽히던 장면들이었다.
이곳에서 제 자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비단 상인분들 만이 아니었다.
오전 5시 30분,
거의 모든 장자리가 준비되었을 즈음
눈 깜짝할 사이에 익숙한 걸음을 하는 이들로
거리가 가득 채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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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매운 사람들 또한
이 거리가 본인의 제 자리인 듯했다.
해도 아직 뜨지 않은,
차가운 시간이 느껴지는 이 거리를
아무렇지 않은 듯 노련하게 대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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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들과 대비되는
손짓부터 말투까지 이 거리에 서투른 나.
그 서투름이 티가 많이 난 건지
아니면 익숙지 않은 얼굴의
젊은 아가씨가 신기했던 건지
거리를 거니는 동안 흘깃거리는 시선들을
심심치 않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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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검지와 중지로 끌어내 건네며
"사장님, 여기 감자 하나만 주세요"
라고 했을 때
사장님의 경계와 호기심 어린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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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의 나는 그들만의 왕국에
몰래 들어온 생경한 이방인이었다.
몇 번이나 다시 와야
이곳을 나의 제 자리로 만들 수 있을까.
아니,
이곳에 내가 완전히 스며드는 것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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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또다시 오고 싶은 공간과 시간이었다.
나의 제 자리들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몇 번이고
평소보다 눈이 일찍 떠진 날,
또다시 이곳에 이방인으로서 방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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