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구름 Aug 04. 2022

93_ 자식한테 자산 공개는 안 하는 것이

목차__ 下

.

.

글을 쓰다 보면 염려가 된다.

딸인 내가 부모님의 재정상태를 훤히 들여다보고 관리한다는(어머니의 승인이 필수이긴 하지만) 말에 누군가 당연하다는 듯이 부모님의 자산을 마음대로 들여다보주무르려고 하면 어쩌나 싶어서.


솔직히 난 부모가 자식에게 자산이나 재무상태를 모두 공개하는 건 반대하는 편이다.

나의 경우는 지병으로 집에서 요양만 하는 내게 평소 좋아하던 돈 관리라도 시켜 생기를 불어넣어 줘야겠다는 어머니의 결정이 있었기에 이게 가능했던 거였다. 분명 남들과는 다른 사정이 있었다. 하지만 만약, 내가 다른 또래처럼 건강하고 직장에 다녔더라면 어머니는 내게 통장을 공개하지 않으셨을 거다. 자고로 건강한 젊은이는 제멋대로니까.


사람이라는 게, 그중 자식이라는 게 처음에는 “부모님 노후 자산에 손대면 내가 진짜 인간쓰레기다! 인간쓰레기!!” 하지만 막상 부모의 자산이 얼마인지 알고 나면 본인의 돈 계산에 부모님의 돈을 끼워 넣게 된다. 부모에게 돈은 바라면서 효도는 1도 하지 않거나 돈만 바라며 효도하는 이들에 이야기는 너무 흔하게 보이고 들린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부모의 돈과 전혀 상관없이 효도를 하거나 하지 않는 자식들도 있다는 걸 이따금 보고 들었다. 아주 드물게. 실제로 본 적은 아직까지 한 번도 없다만…. 근데 그런 이들은 부모 자산에 대해 자세히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게 중요하지 않으니까.


보통 부모 자산에 관심이 많은 건 그 돈에 관심 있는 이들이다. 고개를 돌리기만 하면 흔해 터지게 보는 사람들. 그들은 부모에게서 현금을 얻든, 양육 부담을 덜든, 본인들에 소비 수준을 높게 유지하기 위해 부모님에게 식재료나 생필품 조달을 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그 돈을 취하려 한다.


부모에게서 바라는 게 돈이니 부모는 뒷전이 된다. 부모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어머니를 아주 값싼 요양원에 보내 놓고 어머니에게 나오는 연금을 챙기는 자식, 나랏돈 빼먹어야 한다며 부모 자산 다 자기 앞으로 돌려놓고 부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만든 후 돌보지 않는 자식, 아버지가 받는 임대소득이 얼마인지 알고 돈 필요할 때마다 손 벌리는 자식, 치매 걸린 노모에 자산이 많은 걸 알고 독박 효도를 사칭해 자산을 본인에게 돌려놓고 형제들은 일절 배제하는 자식, 부모가 돈이 없으니까 연락을 끊는 자식, 돈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자식 등 방식은 다양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불효에 관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자식은 다 못돼서 그렇다는 말을 하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사람이라는 존재가 간사하고 나약하다 보니 부모의 자산을 보면 딴생각하는 자식이 있다는 거,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부모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다.


부모 돈은 마이너스 통장이나 신용카드 소액 대출처럼 이자가 붙지도 신용등급이 걸려 있지도 않다. 거기다 여차하면 안 갚아도 그만이다. 그러니 자식은 급할 때 손을 뻗치지 않을 수가 없다. ‘잠깐 돈 빌려 쓰고 나중에 갚으면 되지… 그냥 달라는 것도 아닌데 뭐!’하면서 부모 찬스를 쓴다.


그리고는 이게 큰 불효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중에 갚을 거니까. 돈으로든 효도로든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할 거니까 부모가 손해 보는 건 아니라고 계산한다. 그러다 나중에 돈도 못 갚고 효도도 안 할 때는 그냥 ‘죄송하지만 어쩌겠어. 난 자식이니까 부모님이 이해해주시겠지!’라며 마무리 지으면 그만이다.


내 자식이 부모의 돈을 탐내지 않는 자식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자식을 가진 부모가 누군지 모른다. 그리고 당사자들 또한 자기 자식이 그런 자식인지 아닌지 모른다. 그저 난 ‘내 새끼가 정말 그러겠어?’ 하던 어른들이 늙어서 자식에게 외면당하고 벙찌는 걸 꽤 자주 볼뿐이다.


자식을 너무 믿어서 자산 공개를 할 생각이면 그전에 슬며시 재산 처분 얘기부터 꺼내보자. 그리고 재산을 처분한 뒤 노쇠한 나를 보살펴줄 수 있는지도 은근하게 물어보자. 그럼 어느 정도 자식들에 속내가 보일 것이다. 부모를 부모로 보는지, 아니면 돈 주머니로 보는지. ‘내 자식이 진짜 나한테 그럴까?’ 의문을 갖는 것보다 차라리 사람이니까 누구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게 낫다.


단, 부모가 금전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이때는 자식이라도 힘을 합쳐서 문제를 수습해야 하므로 재무상태를 공유하는 게 다. 상태가 어떤지 정확히 알아야 사태 수습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


하지만 이것도 무조건 권하기에는 상당히 조심스럽다.

심히 부모를 돕던 자식이 후에 부모 돈을 자기 것마냥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사정이 힘들더라도 재무상태는 공개 안 하고 자식에게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다. 참 어렵고 민감한 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자산이 많든 적든 도움이 필요할 땐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만 자녀들에게 말하는 것이 그나마 가장 나은 방법인 듯싶다.


불로소득이 얼마 들어온다든지, 집이 몇 채 있어서 걱정 없다든지 이런 건 말하지 않고 “생활비는 너희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용돈만 줘도 괜찮다” 정도로 말이다. 보험에 대해서 궁금한 게 있다면, 보험 가입 내역을 전부 보이기보다는 궁금한 부분에 대해서만 어떤 식으로 하면 좋을지 의논하는 게 좋고.


1년에 두어 번 안부 문자를 하던 자식들이 부모 재산 문제에는 열 일 제쳐두고 득달같이 달려온다고 한다. 부모가 가지고 있는 땅값이 오르거나~ 집 한 채를 팔려고 하면 그때부터 뻔질나게 다녀가고 전화를 한단다. 두 번 다시 볼 일 없을 줄 알았던 애교도 부리고 비위도 맞춰가면서. 그런데 그것도 좀 하다가 곧 빨리 돈 안 준다고 승질을 내며 폭언을 하다 결국 제 맘대로 되지 않으면 다시는 안 볼 것처럼 나가서는 그 후로 연락 한번 없다고 한다. 돈 좀 있는 한 노인의 사정을 들으면서 참 씁쓸했다.


부디 ‘내 자식이 설마 그러겠어?’라며 낙관만 하지 말고 현실을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자녀에게 노후를 도둑맞는 슬픈 일만은 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안 그런 자식도 있긴 있는데, 그런 자식이 쪼까 드물어서 하는 소리다.




매거진의 이전글 92_ 자식이 부모를 모시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