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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Jan 18. 2022

6_ 노후 한 달 생활비 95만 원

목차__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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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조용한 집구석 평온한 듯 보였던 광경을 걷어내고 두 눈깔 똑바로 뜬 채로 부모님의 하루를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해가 저물고 달이 뜨도록 웃음소리 1번은커녕 두 분에 대화는 5분도채 넘기지 못했다. 그나마 어머니는 간간이 친구들과 통화를 하시는데 아버지는 전화하는 사람도 주고받는 문자도 드물었다. 우리 집은 조용한 게 아니라 적막한 거였다.


어머니는 건강이 상할까 겨우 몸을 일으켜 동네 한 바퀴 휘돌다가 오시고, 아버지는 대형마트 구경이나 슥 다녀오시는 게 외출에 전부였다. 그 외에는 일도 없고 약속도 없어서 하루종일 방에 드러누워 TV나 휴대폰 화면만 바라보셨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놀러 나가는 일도 드물었다.


두 분 다 친구들 만나러 나가셨던 게 언제더라…?

여행은 다니셨던가? 아니, 여행은커녕 바닷가 근처에 살고 계신 할머니 댁에도 1년에 1번 갈까 말까 하는 판이다. 그럼 외식은? 영화는?? 공연은…???


하긴, 나들이는커녕 경조사를 다니시는 모습을 본 지도 오래다.

타인에 기쁜 일과 슬픈 일에 참여해 사람 노릇을 하며 살아야 사는 맛이 나는데 부모님은 자꾸 그런 것에서 멀어지신다. 밖에 나가면 돈을 쓰게 되니 애초부터 그럴 만한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는 것이다.


한 달 생활비 95만 원.

그것이 원흉이다. 여기서 최소 식비 45만 원을 빼고 남은 돈은 50만 원. 그 50만 원으로 환갑이 넘은 두 사람이 살려니까 여생이 자꾸 그렇게 된다.


산책 중 더위에 지쳐 물을 가져왔냐 물으시는 어머니께 여섯 걸음마다 있는 카페를 바라보며  “아메리카노 한 잔 사 마실까요?” 여쭈면 “물 안 가져왔어? 그럼 됐어. 그냥 참지 뭐. 곧 집에 가는데.” 기분 안 좋다는 티 팍팍 내시며 결국 그 1,500원을 아끼신다. 어머니도 그렇고, 아버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카페에는 1년에 2~3번이나 갈까 싶다.


옷은 거의 사지 않는다.

한 번 사면 5년 이상 닳도록 입고 옷이 낡아 차림이 영 구질구질해 보일 때쯤 새로 하나 산다. 어머니와 나는 세일 문구만 봤다 하면 냅다 뛰어가 겨울용 외투를 5만 원에 내복 세트는 1만 원에 산다. 그나마 아버지는 용돈으로 10만 원짜리 옷도 사시지만 어머니는 도저히 비싼 건 엄두를 내지 못하신다. 감사하게도 주변에서 안 입는 옷을 주시는 경우가 꽤 있어서 그걸로 버티는 편이다.


낡은 가방을 메고 옆구리 터진 신발을 신고 걸으면 왠지 기분도 너덜너덜하다. 그깟 가방, 신발 하나쯤 새로 사서 오래 입고 궁상 안 떨면 되지 싶다가도 한없이 초라한 부모님의 연금이 떠올라 쉬이 그 돈 십만 원을 쓰지 못한다. 그걸 제일 잘 아는 어머니의 지갑은 식재료 외에는 거의 열리지를 않는다.


이런 사정을 알기 전에는 남한테 얻어 입은 옷만 입으시다 가끔 1만 원짜리 세일 상품을 사 오시는 어머니를 보면 궁상이라고 투덜거렸다. 그깟 3~5만 원 좀 더 쓴다고 당장 내일 굶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까지 해야겠냐면서.


하지만 막상 그 궁상끼어들고 보니 그 조금을 더 썼다가는 당장 내일부터 오늘보다 더 쪼들리며 살 판이다. 그깟 치킨 좀 자주 시켜먹었다가는 금방 동이 나는 게 그놈에 50만 원이라. 지갑에 든 신용카드를 만지작 거린다. 하지만 이내 카드에서 손을 뗀다. 신용카드를 썼다가는 다음 달 늘어난 카드값으로 인해 생활비는 더~ 옥죄이게 될 테니까. 어머니는 그 사실을 정확히 알고 계셨고 지옥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해 생활비를 아껴 쓰셨다. 그깟 커피 한 잔, 그깟 옷 한 벌, 친구 만나 외식 한 번을 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레 여행도, 경조사도 멀리하게 되셨다.


젊은 사람에게도 이렇게 살라고 하면 “요즘이 어떤 세상인데 그렇게는 못 살아~!!!를 외치며 질색팔색을 하는데, 60대라고 그게 괜찮을 리 없다. 나이가 들수록 취미생활, 대인관계가 잘 되어있는 것이 행복에 중요한 조건이라고 하는데… 돈 때문에 그런 것들이 계속 멀어지는 중이다. 다들 여행 갈 때도 일하러 가고, 아파도 쉬지 못하고 일하러 가야 하는 살을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하셔야 한다. 그걸 보는 나는 속이 상한다.


그래도 요즘은 비상금 좀 마련되고 했으니 친구들 만나 돈 쓸 때는 쓰면서 즐겁게 지내셔도 되는데. 아직도 어머니는 그걸 어려워하신다. 그건 아마 아버지가 일하지 않으시면 위태로워진다는 변함없는 사실, 그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 정도의 검소한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젊어서부터 지금까지 성실히 일하셨는데 아직도 제자리걸음 같아 속이 상한다. 분명 그동안의 노력 덕분에 5년 전보다 훨씬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 갈길이 먼 거 같아 마음 한켠히 지독하게 쓰리다. 친구를 만나고, 운동화를 사고, 화장품을 사고, 삶이 너무 우울해서 뭐 좀 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다 돈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언제 끊길지 모르는 수입 때문에 잠시도 허투루 쓸 수 없는 60대 부부의 한 달 생활비 95만 원은 분명 조금 비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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