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문제없어, 그때도 지금도

by 순진한 앨리스

정확히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초등학교 고학년쯤, 운동회가 열리던 어느 가을날이었다. 종목 중 하나는 ‘행운의 편지’. 출발선에서 달려가다 중간 지점에 놓인 편지를 집어 들고, 그 안에 적힌 지령을 수행한 뒤 결승선을 통과하는 방식이었다.

어떤 아이는 엄마나 아빠를 찾아 함께 뛰었고, 어떤 아이는 그냥 결승선으로 달려갔다. 내가 받은 지령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뛰기’. 그때 내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황규영의 ‘나는 문제없어’였다. 그래서 나는 운동장 한가운데, 조회대 위에 올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 노래를 불렀다.

다른 아이들이 빠르게 지령을 수행하고 결승선을 통과하는 동안, 나는 불안해하며 그 아이들을 바라보며 후렴구까지 정직하게 부르고 있었다. 보다 못한 동네 아저씨가 “그만 부르고 들어가. 괜찮아”라고 해주었고, 나는 결국 꼴찌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오랜 시간 동안 그날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한심하게 느껴졌다. 왜 짧은 동요 한 소절만 부르고 돌아오지 않았을까. 왜 굳이 끝까지, 그것도 떨면서 못 부르는 노래를 불렀을까. 눈치 없고 상황 파악 못 하는 아이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부끄러움 속에는 묘한 자부심이 있었다. 그날의 나는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비록 꼴찌였을지언정,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달리는 그 순간만큼은 나 자신을 속이지 않았다. 남 앞에 말도 잘 못 하던 소심한 아이가 모두 앞에서 용기를 내어 노래를 불렀던 그 모습은, 어쩌면 지금의 나보다 더 용감했는지도 모른다.


살다 보면 ‘정직함’이 오히려 손해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눈치 빠른 사람,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움직이는 사람이 더 인정받고 앞서 나간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마음속 어딘가가 비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 아이처럼,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달리는 마음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때의 나는, 어쩌면 세상의 속도와 기준에 맞추지 못했을지 몰라도, 자기만의 리듬을 지키고 있었다. 그 리듬은 느렸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그 아이를 다시 떠올리며 삶의 속도를 조절하고 싶어진다. 남들보다 늦게 도착해도 괜찮다고,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가는 길이 더 의미 있다고 믿고 싶다.


‘나는 문제없어’라는 노래는 그때도, 지금도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그날의 운동회는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나의 성격과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작은 단면이었다. 나는 여전히 완벽하지 않지만, 그때처럼 진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진심이야말로, 내가 문제없는 이유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너는 한심하지 않았어. 용감했어. 너는 네 방식대로 끝까지 최선을 다했어. 비록 끝까지 다 부르지 못했지만 그건 누구보다 멋진 일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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