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마지막 해바라기

by 순진한 앨리스

다음날 경찰은 철진의 행적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미 몇 차례 신분을 바꾸며 도시를 옮겨 다니고 있었지만,
진남의 진술은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리원은 그림 앞에 앉아 해지를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
“이제… 시작됐어. 너의 억울함을 풀기 위한 길.”
그림 속 해지는 뒤돌아 있었지만 조금 슬픔 속에, 조금의 안도감이 섞여 있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았다.
며칠 후, 리원은 경찰서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철진이 체포됐었고 진남이의 진술이 결정적이었다는 소식이었다.
리원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그 소식을 듣고 진남은 편의점 문을 일찍 닫았다. 그는 계산대에 앉아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밖은 평소처럼 분주했지만, 진남의 마음은 고요했다.
아니, 고요함을 가장한 공허함이었다. ‘끝났다고 해서… 끝난 게 아니야.’
그는 해지를 처음 만났던 놀이터를 떠 올렸다.
노란 곱슬머리, 해바라기 핀, 그리고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라며 건넸던 사탕.
진남은 사탕통을 꺼내 그 안에 남은 초콜릿 하나를 꺼냈다.
그건 해지를 위해 늘 준비해 두던 것이었다.
그는 조용히 사탕을 바라보다가 편의점 앞 벤치에 앉아 그 사탕을 벤치 위에 올려두었다.
‘이제는… 네가 편히 쉬었으면 좋겠어.’

그날 밤, 리원은 다시 그림 앞에 앉았다.
그런데 그림 속 해지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해바라기 무늬 원피스는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그림의 색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배경의 놀이터는 흐릿해졌고, 해지의 윤곽도 부드럽게 번지고 있었다.
리원은 조용히 속삭였다.
“해지야… 그 사람, 이제 잡혔어. 너를 괴롭히던 그림자는 사라졌어.”
그림 속 해지는 오늘은 처음으로 조금 미소를 짓고 있는 듯했다.
그 미소는 아주 작았지만, 리원은 그 안에서 안도와 평화를 느낄 수 있었다.
그날 이후, 그림은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배경이 흐려졌고, 다음엔 해지의 발끝이, 그리고 손끝이, 조용히 캔버스 속으로 녹아들었다.
마지막 날, 리원이 그림 앞에 앉았을 때 그곳엔 해바라기 한 송이만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잘 가, 해지야. 이제는… 편히 쉬어.”
그 순간, 창밖에서 바람이 불었다.
해바라기 그림이 살짝 흔들렸고, 그 안엔 더 이상 슬픔이 없었다

진남은 경찰서에서 진술을 마친 후 며칠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하지만 리원이 찾아와 그에게 작은 해바라기 화분을 건넸다.
“해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당신뿐만이 아니에요. 그 아이는 당신을 믿었고,
당신은 결국 그 믿음을 지켰어요.”
진남은 말없이 화분을 받아 들었다.
그는 그날 이후, 편의점 창가에 해바라기 화분을 두었다.
매일 아침, 그는 물을 주며 조용히 속삭였다.
“해지야… 오늘도 잘 지내고 있지?”
그녀는 해지의 그림을 떠올렸다. 그 아이가 남긴 마지막 흔적.

슬픔과 억울함이 담긴 눈빛.

성원시 ○○동의 작은 놀이터.
이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만 가득한 평범한 공간이지만, 그곳엔 한 아이의 이야기가 조용히 남아 있다. 해지.
노란 곱슬머리, 해바라기 핀, 그리고 “기분이 좋아질 거예요”라며 건넸던 초콜릿 사탕.
그녀는 짧은 생을 살았지만,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였고, 누군가의 삶을 바꾸었다.
진남은 여전히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다. 창가엔 해바라기 화분이 놓여 있고, 아이들이 혼자 들어올 때면 그는 조용히 사탕 하나를 건넨다.
그건 해지를 위한, 그리고 해지처럼 혼자였던 아이들을 위한 작은 속죄이자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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