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시절, 우리 동네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쑥차’가 왔다. 동네 사람들은 그 차가
오면 쑥을 팔곤 했다. 나도 친구와 함께 용돈을 벌기 위해 쑥을 캐러 다니곤 했다.
학교가 끝나면 비료포대 하나와 커다란 낫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쑥을 캤다. 햇
살이 따가운 봄날, 냇가 둑을 따라 걷다가 연둣빛 쑥이 얼굴을 내민 걸 보면 괜히 보물
이라도 찾은 듯 기뻤다. 친구와 누가 더 많이 캤는지 내기하듯 경쟁도 했고, 서로의 푸
대를 몰래 들어보며 “너 이거 흙이 더 많다”라며 웃기도 했다. 며칠을 돌아다녀 겨우 비
료포대 하나를 채우고 나면, 쑥차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동네에는 ‘효자’라 불리던 아줌마가 있었다. 그 아줌마는 우리 동네에서 쑥을 제일 많이
캤다. 항상 큰 포대 두 자루를 가득 채우곤 했는데, 조금 큰 덩치에 흰 고무신을 신고, 햇
볕에 그을린 얼굴로 능숙하게 쑥을 캐는 모습은 어린 내 눈에 참 멋져 보였고 부러웠다.
나는 반면에 작은 비료포대 하나를 겨우 채웠다. 그걸 팔면 2,500원 정도 받았던 것 같
다. 그 당시에는 그 돈은 큰돈이었다. 손에 쥔 2,500원은 따뜻했고, 그걸로 사 먹은 초
코파이 한 봉지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간식이었다. 그날만큼은 내가 어른이 된 것 같
앗다. 내 힘으로 번 돈이었기 때문이다.
쑥을 캐던 손은 작았지만, 그 손으로 번 돈은 참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