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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킹 Jun 19. 2022

어떤 투자자와의 대화는 창업가를 밤잠 설치게 한다.

실패담이 될지, 성공담이 될지 모르는 기록


지난 4-5월, '살아남기 위해' 여러 가지 큰 도전과 작은 시도들을 해야 했다. 아직도 뾰족하게 '이 길로 가면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아!'라는 건 찾지 못했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두들기다 보면 언젠가 길이 열리지 않겠냐는 심정으로 계속 걸어가고 있다.


크고 작은 도전 중 하나는 각종 지원사업/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에 서류를 내고, 미팅을 하는 일들이었다. 도전한 지원사업의 숫자가 많았던 것은 아니지만 각각의 프로그램들이 성격이 확연히 달랐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점들이 있었다. 오늘은 몇 주가 지났지만 잊히지 않는 강렬한 한 미팅에 대해 기록해보고자 한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지원 프로그램이라 이름은 밝힐 수 없지만 그 과정을 되짚어본다. 이하 A 프로그램이라고 이야기하겠다. 


나는 스타트업 커뮤니티를 지난 5년 간 운영하면서 다양한 투자사 / 액셀러레이터들의 여러 종류의 지원 사업 /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을 보았다. A 프로그램 역시 아주 잘 알고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그리고 해당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팀 역시 나를 알고 있었기에 지원을 할 때 이 점이 유리하게 작용할지 불리할지 고민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기에 (^^;;) 철판 깔고 지원해보자 라는 생각으로 지원서를 제출했고, 다행히 1차 통과를 하게 되었다. 해당 프로그램은 총 3번의 미팅 후 선발 팀이 정해지는 프로세스였고, 우리 팀은 일단 1단계만 넘어도 감사하다!라는 생각이었기에 1차 미팅을 정말 잘하고 싶었다. 


1차 미팅은 전문 심사역과의 1:1 미팅이었다.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 팀을 이미 알고 있는 곳이었기에 미팅에 들어가는 것 역시 부담이 없진 않았다. 그래도 주어진 기회에 최대한 솔직하게, 앞으로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마음먹었고, 30분이라는 시간 안에 잘 전달하기 위해 발표 자료에는 꼭 필요한 내용만 남기려고 애썼다.


첫 번째 실책, 스토리가 빠졌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의 첫 번째 실책이 있었다. 핵심만 남기느라 '스토리'가 빠진 것이다. 시장 상황이나 커다란 흐름,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내용은 담겨 있었는데 내용이 전반적으로 붕 뜬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당연히 심사역은 이런 부분을 느꼈고, 우리만의 스토리를 담기를, 그리고 경쟁사들과의 차별점이 더 두드러지게 보이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주었다. 


미팅 분위기 자체는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다음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다행히 2차 통과를 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런데 두 번째 미팅은 바로 대표님과의 1:1 미팅이었다. 나는 마지막 최종 미팅 단계까지 가야 대표님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바로 대표님을 뵙게 되다니 좀 더 긴장되고 준비를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두 번째 미팅을 준비하면서는 첫 번째 미팅 때 들었던 피드백을 최대한 반영하여 발표 자료를 수정했다. 과감하게 아예 삭제한 장표도 많았고, 특히 '내가 창업을 한 이유'를 앞부분에 잘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대표님께는 나의 이야기 / 우리 팀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것은 또 처음이라, 내가 어떤 맥락에서 이 아이템으로 창업을 하게 되었는지, 그동안 어떤 노력을 했으며 지금은 어느 단계에 와있는지를 최대한 보여드리고자 했다. 


두 번째 실책, 서비스의 본질을 담아내지 못했다.


역시나 대표님은 굉장히 신중하게 나의 발표를 들어주셨다. 초반에는 별로 질문이 없었는데 중반부터 '앞으로 우리가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부터 대표님은 갸우뚱하셨다. 


현재까지 구현되어 있는 기능까지는 잘 납득이 되게 넘어간 것 같은데, 그래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우리의 본질인 '커뮤니티' 성격과 밀접한 계획들이 빠진 것이다. 나 또한 요즘 트렌드 중 하나인 NFT, Web 3.0 이런 개념에 심취해서 정작 본질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던 거다.



여기서 잠깐 우리의 서비스에 대해 소개를 하면 좀 더 이해가 쉬울 것 같다. 나는 2017년도부터 '스여일삶 - 스타트업 여성들의 일과 삶'이라는 이름으로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 스여일삶의 메인 채널은 페이스북 그룹이고, 크고 작은 카톡방과 매주 금요일 뉴스레터 등을 통해 멤버들과 소통하고 있었다. 


페이스북 그룹에는 약 6700명, 뉴스레터도 약 4700명 정도의 구독자들이 있는데 물론 작은 숫자는 아니지만 항상 이런 질문을 들어왔다. 


페이스북 망하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사실 2020년 정도까지는 별 위기감이 없었다. '페이스북'이라는 채널의 장점도 분명 있었고, 우리 커뮤니티의 특성상 페이스북 채널과 잘 맞는 점도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작년도부터 분산되어 있는 채널의 통합이 필요하다는 걸 나 또한 누구보다 절실하게 느꼈고, 다만 그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이 많았다. 나는 분명 커뮤니티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노하우를 갖고 있기는 하지만 개발자가 아니기에 어떤 툴과 방법으로 '우리만의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을지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CANnovate 3기를 통해 돌파구를 찾다 


그러다 작년 하반기에, 개발자 없이 커뮤니티를 빌드할 수 있는 CAN이라는 SaaS를 알게 되었고, 운 좋게도 기술 협약을 통해 CAN을 쓸 수 있는 CANnovate 3기에 선발되었다. 


'스여일삶'이라는 커뮤니티는 업계 내에서 그래도 어느 정도 알려져 있기도 했지만, 점점 올드해지고 있다는 뼈아픈 피드백도 있었기에 리브랜딩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그래서 CANnovate를 통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좀 더 편하게 쓸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올해 초부터 구상하여 '비버밸리'라는 커뮤니티를 만들게 되었다. 현재 비버밸리는 클로즈드 베타로 오픈해둔 상태이며, 공개적으로 비버밸리를 소개하는 글은 이 글이 처음이다. 


비버밸리라는 공간이 생기게 될 거라고 생각을 하니, 하고 싶은 일들이 더더욱 많아졌다. 그리고 그런 가능성들을 비버밸리 곳곳에 담아내고 싶었다. 그런 내 욕심들이 앞서 이야기한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발표 자료에 들어갔고, 그 내용을 들은 대표님께서 의아해하신 것이다. "그게 정말 비버밸리의 핵심 가치가 맞나요?"


서비스의 본질, 커뮤니티!


맞다, 결국 우리가 하는 일의 본질은 '커뮤니티'다. 그리고 그 커뮤니티를 키우기 위해 나는 지난 5년 간 몸빵으로 구르고 뒹굴면서 고군분투해왔다. 그렇게 정리된 나름의 전략이나 프로세스가 있음에도, 나는 그 내용을 비버밸리를 소개하는 자료에 충분히 담지 못했다. 


다시 말해 그날의 발표 자리에서 '비버밸리'라는 커뮤니티에 대해 나는 어떤 성장 전략을 가지고 있는지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 발표를 들은 대표님은 그 점을 지적하신 것이다. 


대표님은 정해진 미팅 시간을 약간 오버했지만 계속해서 함께 고민하고 질문을 던져주셨다. 그날 이후 며칠 동안은 대표님이 던져주신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정말 거짓말이 아니고 며칠 동안 꿈에서도 그 미팅 순간이 나올 정도로 깊이 고민했다.


그 이후 어떻게 '비버밸리' 안에서 커뮤니티의 본질과 기능을 잘 녹여낼 것인가 팀원들과 계속 고민을 했고, 새로운 실험들을 하게 되었다. 


일단 타겟은 더 좁고 뾰족하게 가기로 했고, 그래서 '라운지'는 스타트업 여성들을 위한 익명의 공간으로 운영해보기로 결정했다. 사실 '여성'이라는 키워드는 '스여일삶'을 운영할 때도 많은 사람들이 태클을 걸었던 부분이었다. 


"우리나라에 창업을 하거나 스타트업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몇 % 안 될 텐데, 그중 여성이라고? 너무 타겟이 작지 않니?"


이런 말을 정말 수십, 수백 번 들었다. 이런 질문에 방어하기 위해서는 아니었지만 '스여일삶' 같은 경우는 사실 '남성분들은 들어오시면 안 되욧!'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스타트업 여성들의 일과 삶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나, 현재 스타트업에서 일을 하지 않거나 창업자가 아니더라도 괜찮다, 함께 연대하고 이야기하자는 기조로 운영해왔다. 


그런데 비버밸리는 다른 접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론 '스여일삶'이라는 기존의 커뮤니티도 있고 여기서 도움도 많이 받을 순 있지만 많은 커뮤니티 / 서비스를 쓰는 사람들에게 '비버밸리만의 특성'이 어필되려면 뭔가 달라야만 하기 때문이다. 


0에서부터 커뮤니티를 빌딩 한다는 심정으로 


그래서 다시 0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커뮤니티를 빌딩 한다고 생각하며 비버밸리에 'Women only' 공간을 만들었다. 커뮤니티의 본질은 결국 '어떤 사람들이 모여있는가' 아이덴티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물론 언젠가 이 'Women only' 공간이 필요 없어질지도 모른다. 우리 팀 자체가 지향하는 방식은 더 많은 사람과의 연대와 지지, 공감이니까. 하지만 그런 시점이 오려면 몇 년 걸리지 않을까 싶으니 그때 가서 더 고민하는 걸로 하고 일단 지금은 최대한 뾰족하게, 그리고 그 사람들과 안전한 지대를 만드는 것에 집중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보다, 앞으로 해야 할 실험들이 더 많다 


지난 5년 간 커뮤니티를 운영해왔기에, 커뮤니티를 빌딩 하고, 이걸 사업화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나에게 필요한 것이 unlearning 이 아닐까? 관습에서 벗어나 '이건 이렇게 하면 돼/안돼'를 먼저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태도. 


완전히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는 생각으로 피드백은 객관적으로 듣고 끊임없이 실험하고 검증해나가는 과정. 그리고 많은 선배 창업가 / 투자자들이 말했듯이 이 실험과 검증은 모두 하나를 향해 있어야 한다. 유저. 우리 서비스로 따지면 '멤버'


그렇게 하루하루 걸어 나가다 보면 이 길의 끝이 보이겠지만, 그게 성공담이 될지, 실패담이 될지 모른다. 하다 못해 상반기에 지원했던 사업들 중 이미 서류 탈락하고 실패담으로 남은 에피소드들도 있다. 앞서 이야기한 A 프로그램도 어찌 될지 모르고.  


그렇지만 지금 나에게 중요한 건 끊임없이 시도하고 배우고 더 나아지는 것뿐이니 이 또한 기록으로 남겨보려고 한다.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하는 한 마리 새처럼 말이다.




비버밸리가 궁금하시다면..?! 

https://beavervalle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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