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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몽드 Sep 24. 2019

낯설게 보기: Gochujang Chicken

[Mindful Cooking | 마음챙김 요리]

무한한 가능성 발견


'낯설게 보기'라는 말을 혹시 들어보셨나요? 학부 시절 전공 수업을 들으며 읽은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 익숙한 세계 낯설게 보기'라는 정수복 선생님의 책에서 처음 이 개념을 보았습니다. 낯설게 보기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우리 사회와 문화를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생각의 도구입니다. 쉽게 말해 외국인의 관점에서 한국을 보는 일입니다. 그 당시 이 주제로 재밌게 토론했었는데, 모든 게 그렇듯 서서히 기억에서 잊혀 갔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낯설게 보기'라는 개념이 떠오른 이유는, 이번에 요리하면서 글로만 이해해했던 낯설게 보기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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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 Appetit를 보다가 특이한 제목의 레시피를 발견했습니다. Slow-Roast Gochujang Chicken.

Gochujang? 고추장? 한글 단어를 소리 나는 대로 알파벳으로 바꾸고, 그걸 말하는 외국인을 보니 뭔가 낯설었습니다. 한국 음식이 비빔밥, 불고기, 김치처럼 완성된 음식으로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양념 자체로 소개되었다는 것에도 낯설었습니다. 그 순간 궁금증이 생기더군요.'얘네들한텐 고추장이 어떤 소스일까?', '고추장으로 뭘 어떻게 해 먹을 거지?' 그들의 눈에서 고추장을 바라보았습니다. 고추장이 아닌 'Gochujang'이었고 그들에게는 Gochujang의 맛은 'spicy, sweet, salty and funky'로 묘사되고, 구체적으로 설명이 필요한 새로운 식재료였습니다(고추장에 대해서 소개한 글: https://www.bonappetit.com/story/what-is-gochu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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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마음을 따라가서 고추장을 관찰하고 맛을 보았습니다. 집에 있는 시판 고추장을 한 입 먹어 보고 냄새와 맛, 모양, 텍스처를 다시 곰곰이 느껴보았습니다. 그리고 고추장을 처음 보는 미국 사람의 마음(실제로 이 레시피를 개발한 Molly  Baz는 Bon Appetit 요리사이며,  금발머리를 지닌 전형적인 서양인입니다.)으로 요리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합니다. 고추장에 올리브유와 마늘, 생강, 꿀을 넣어 소스를 만들고, 절반은 닭에 바르고 나머지는 곁들임 감자와 마늘에 양념해서 무쇠 팬에 담고 150℃ 오븐에서 2시간-2시간 30분 정도 오랫동안 굽습니다. 마지막으로 어슷썰기 한 대파와 라임으로 장식합니다. 

(오리지널 레시피: https://www.bonappetit.com/recipe/slow-roast-gochujang-chick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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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의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막상 요리를 하면서 어색했던 부분이 2가지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올리브유를 쓴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라임으로 장식한다는 점입니다. 고추장에 올리브유를 쓰면 맛이 이상해지지 않을까 라는 걱정을 했습니다. 익숙하지 않음에서 오는 거부반응이었죠. 라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장식으로 예쁘긴 한데 라임의 맛이 어울릴까 라고 고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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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과 염려를 잠시 떠나보내고, 주어진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했습니다. '맛없진 않겠지 뭐!'라는 가벼운 마음으로요. 2시간쯤 지나니 집안에 맛있는 냄새가 퍼졌고 거뭇거뭇하게 맛깔난 색깔이 났습니다. 꺼내보니 약간 수분이 부족한 것 같아 닭 육수를 조금 넣고 가스불에서 5분정도 지글지글 끓여 촉촉하면서 걸쭉한 소스를 만들었습니다. 10분 정도 레스팅을 한 후 드디어 맛을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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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다리살을 발라내고 감자와 마늘, 그리고 소스를 뿌리고 마지막에 라임즙을 한 바퀴 뿌려 먹었습니다. 고추장의 매콤 달콤함, 마늘과 생강의 향이 감칠맛을 돋웠습니다. 닭도 아주 부드럽고 촉촉했습니다. 이 요리를 새롭고 특별하게 만들어준 1등 공신은 바로 라임이었습니다. 향긋하고 이국적인 라임 향이 고추장의 묵직함과 닭기름과 올리브유가 섞여서 나오는 고소한 맛을 한층 살려주었습니다. 그저 익숙한 고추장 소스 닭요리(예. 닭볶음탕)가 아니라 새롭고 맛있는 요리를 먹었습니다. 친숙한 맛과 재료에서 기존에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움을 느꼈을때가 그냥 새로운 음식을 먹을 때 보다 더 강한 인상을 받게 되지요.  보통 맛있으면 식탁이 조용해지는데, 오랜만에 가족들끼리 조용하게 순식간에 다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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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 보는 것이 가능해지니, 고추장으로 할 수 있는 요리의 범주가 달라졌고 사고가 확장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집에 있는 고추장을 단순히 찌개에 넣고 제육볶음 양념에만 쓰는 것이 아니라 양식 느낌이 나도록 응용해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대상을 새로운 각도로, 낯설게 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다르게 보려고 해도 기존의 생각은 단단히 고정되어 있으니까요. 익숙함과 당연함에서 벗어나는 것은 노력을 넘어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낯설게 보기라는 작지만 용감한 행동은 새로움과 특별함을 경험하게 해 주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우리 한식에 고추장이라는 양념이 있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게 아니라 뿌듯하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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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요리를 하면서 유난히 마음 챙김의 지혜와 메시지가 더 다가왔습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 마음챙김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열린 마음은 자기 자신에 대해 호기심 있게, 따뜻하게 대할 때 가능해집니다. 나 자신을 호기심으로 임하는 마음과 고추장을 낯설게 보는 일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무한한 가능성을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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