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께서 유럽여행을 가셨습니다. 그래서 열흘 동안 집이 비었습니다. 날도 선선해지니 불 앞에 서 있을만했고, 손가락 통증도 줄어들어 요리하기 좋은 컨디션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열심히 요리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전부 양식 요리만 먹었네요. 평소에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딱히 좋아하시지 않을 것 같아 시도하지 않았는데, 혼자 있으니 제 맘대로 하고 좋았습니다. 물론 흰 밥에 김을 싸 먹으며 간단히 해결한 식사도 몇 번 있었지만, 유튜브에서 인상 깊게 본 요리, bon appetit에서 추천한 레시피를 보며 요리하니 즐거웠습니다.
혼자 있으면서 자유로움과 외로움을 느꼈습니다. 새로운 레시피를 시도하고, 기존에 해 봤던 요리를 연습하고 반복했습니다. 맛있을 때는 뿌듯하고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저녁식사를 다 끝내고 설거지까지 끝마치며 부엌 불을 끄면, 집에 불이 켜진 곳은 제 방뿐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어둠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물론 귀여운 샤미와 함께 잠들지만, 저녁을 먹고 잠들기 전까지 시간이 쓸쓸하고 외로웠습니다. 혼자 있음을 잊어버리기 위해 뭘 할까 하다가 핸드폰과 카메라 속에 있던 음식 사진을 한 번 일러스트처럼 그려보고 싶어 졌습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사진을 보면서 속으로 '너무 맛있었지'라며 자축했지만, 사실 음식을 먹을 때 함께 했던 친구들이 있었기에 음식이 더 맛있었습니다. 복숭아 리코타 치즈 토스트나 사과 연어샐러드 토스트는 혼자 브런치로 먹었습니다. 당연히 맛있었지만, 꼭 다음에 다시 해서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함께 다시 먹고 싶습니다. 토스트의 사진에는 무언가 맛이 덜 채워진 것 같았습니다. 반면 연어 스테이크는 룸메이트 언니들을 초대해서 함께 먹었고, 오랜 시간 동안 공들여 만든 바비큐 폭립은 대학원 친구들과 함께 만들고 먹었습니다. 토마토 미트볼 파스타는 언니네 가서 함께 먹었고요. 까르보나라, 칠리 바질 새우볶음 덮밥, 돼지고기 토마토 스튜와 쿠스쿠스는 남자 친구와 함께 먹었습니다. 요리는 혼자 한 것이 많아도 먹을 때는 혼자가 아닌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그제야 맛이 완성되었습니다. 예전에 요리하는 이유 포스팅 글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을 때 행복하기 때문'이라는 메시지를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음식의 완성은 "함께" 먹는 데 있다는 것을요.
일러스트를 그리는데 나흘 정도 걸렸습니다. 조금 힘들었지만 그리면서 친구들과 맛있게 먹고 즐거웠던 순간이 떠올라 외롭지 않았습니다. 다 그리고 나니 꽤 뿌듯하네요. 부모님도 이제 여행에서 돌아오셨습니다. 돌아오신 날은 갓 지은 밥, 새우젓 두부찌개, 김치, 삼치구이가 있는 완전한 한식을 먹었습니다. 이제 지난 열흘 동안 만든 양식은 당분간 못 먹을 수도 있지만, 엄마 아빠와 함께 현미잡곡밥을 먹으며 저도 오랜만에 '집밥'을 먹으러 집에 돌아온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집이 크고 어둡게 느껴지지 않아서 좋습니다. 가족이 돌아왔고, 함께 또 맛있는 식사를 합니다. 다음에는 부모님을 위해 맛있는 양식 요리를 해 드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