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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원 Aug 17. 2021

'결핍'이라는 자산

취약함은 우릴 더 아름답게 만든다.


어린 시절부터 나를 무너뜨리는, 나이가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자주 찾아오곤 했다. 그럴 때면 빛이 닿지 않는 동굴 속으로 들어가 홀로 원망과 좌절에 몰두했다. 시간이 흐르고, 서서히 동굴 밖으로 기어 나와 돌아온 일상에서도 나는 번번이 무력감을 마주했다. 무엇이든 처음부터 잘하는 것은 없었고, 다만 노력하고 시간이 쌓이다 보니 그제야 남들만큼 하거나 애매하게나마 잘하는 것들이 생겨났다. 천부적으로나 자라면서 만난 환경으로나 내게는 늘 부족한 것뿐이라는 생각은 툭하면 나를 동굴 속으로 내몰며 괴롭혔다.


그렇게 스스로를 작아지게 만들고 상처주던 자학의 시절을 지나, 어느새 어른의 나이라는 서른에 다다랐다. 연봉도, 인간 관계도, 일상생활도 이전과 별다른 변화가 없었지만, 놀랍게도 부족함을 대하는 태도만큼은 큰 변화가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나를 둘러싼 수많은 부족함이 어쩌면 내게만 주어진 '성장의 기회'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취약함 앞에서 무너지고 도망쳤지만 결국 어느샌가 제자리로 돌아와 격차와 공백을 메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곤 했다. 그 덕분인지 그 시절 써 내려간 나의 문장들과 깊이 파인 상처, 그리고 부단한 노력의 흔적 위에는 어느새 단단한 굳은살들이 배겨져 있었다. 나는 그 살들을 어루만지며, 그저 원망의 대상이었던 나의 취약함이 실은 내 성장의 동력이자 소중한 자산이 되어주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서른의 나는 여전히 불완전한 사람이다. 그러나 불완전하기에 나의 매일은 아름답게 채워지고 있다. 결핍의 자각은 나를 부단히 노력하게 만든다. 하루하루를 절대 허투루 쓰지 않게 하고, 스스로를 성장에 목마른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그 노력이 어쩔 수 없으면서도 유일한 재능이라 생각하니 나는 간절히 붙잡고 싶어진다. 부단한 노력을 통해 나라는 대지가 품은 결점을 극복하고, 그 위에 단단하지만 따뜻한 나의 공간을 짓는 꿈. 서른의 나는 그 꿈에 다가가기 위한 첫걸음을 설레는 마음으로 내딛고 있다.




문화부 기자를 꽤 오래 하면서 깨달은 것 중 하나는 예술가들은 스스로의 취약함에서 자신의 강점을 길어 올린다는 사실이었다. 비단 예술 종사자가 아니라도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기에 상처 받기 쉬운, 저만의 취약성을 안고 살아간다. 이를 원망거리로 삼는 경우도 있고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주어진 형편을 낙관적 방향으로 바라보는가 여부에 따라 그 인생이 처한 취약한 처지도 가치가 달라진다. 어느 건축가의 책에서 본 구절이 떠오른다. “세상에 흠 없는 땅은 없다. 하지만 대지가 품은 결점을 극복하면서 예기치 못한 흥미로운 공간이 만들어진다.”



- 고미석, 《동아일보》, 〈취약함은 나의 길〉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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