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 촛불시위, 그리고, 수학
[알리는 말]
이 글은 같은 제목의 지난번 글에 이어서 적는 글입니다. 처음 읽으시는 분들은 지난번 글을 참고해주세요.
우선 다음의 수(數)가 들어간 질문들을 보자. 한번 답변 해보시라. 단, 답변은 "예" 혹은 "아니오"만 가능하다.
[질문 1] 99점인 나의 시험성적,
당신의 시험 성적은 잘한 건가?
[질문 2] 모 정당이 내놓은 정책, 99% 국민들에게 혜택
당신이라면, 이 정책을 찬성할 것인가?
[질문 3] 대기업A는 100명 중 99 명이 합격 한다고 한다.
당신이라면, 이러한 경쟁률을 가진 기업에 지원을 할것인가?
[질문 4] 나온지 한달된 휴대폰 신제품 중 2만5천대의 불량이라고 한다.
당신이라면, 이 신제품을 구입할 것인가?
[질문 5] 서울에 발병한 조류독감으로 십만명 사망이 사망했다고 한다.
당신은 서울 출장이 잡혀 있다. 이렇게 조류독감이 창궐한 지역으로 출장을 갈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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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하게 생각을 해보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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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채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위의 질문들은 모두 99%(혹은 1%)에 대한 질문들이다.
. 99점인 나의 성적(99% 성취도, 1% 미성취),
. 99% 만족도의 정책 (99% 만족도, 1% 불만족),
. 100대1인 취업 경쟁률 (99% 성공확률, 실패확률 1%),
. 2만5천대의 불량(한달 판매량 250만대 기준 1% 불량제품, 99% 정상제품),
. 십만명의 조류독감 사망자(1천만인구 기준 1% 사망, 99% 생존)
여러분의 대답은 어떤가? 물론, 위의 답변에 정답은 없다. 중요한것은 숫자가 객관적이라면, 여러분들의 대답은 모두 동일(즉, 모두 "예" 이거나, 모두 "아니오"이거나)하여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답변이 전부 동일하지는 않을 것이다.
위의 질문들에 대해서 일정하게 대답을 하지 못한 이유와 수가 객관적일수 없는 이유와 동일하다 할수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숫자는 동일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
이라 하겠다. 즉, 숫자 자체과 객관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 해당 하는 숫자를 인지하는 방법이 사람에 따라 달라지고,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위말하는 이러한 "상황"들은 실제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얼마든지 감정적으로 극대화 시킬수가 있다. 이러한 이유로 무엇인가를 대변하는 수는 객관적일 수가 없다.
이러한 인지적 편향(Congnitive Bias)은 단순히 숫자에 대해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작년 10월즈음에 유행했던 드라마 송곳을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거기서 구고신이 이야기했던 명언,"서는 곳이 바뀌면 풍경이 바뀐다"라는 말은 단순히 고위 관리자의 태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서는 곳이 달라진다는 의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지의 범위가 달라진다는 의미이고, 이러한 범위가 달라지되면, 같은 사실(혹은 같은 숫자)이더라도, 받아들이는 정도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렇다면, 왜 사람들은 상황에 따라 수를 인식하는 정도가 달라질까? 혹은, 왜 서는 곳에 따라 풍경이 달라질수 밖에 없는가? 라는 질문이 생길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편향된 생각(혹은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인지를 하기 때문
이고, 이러한 인지에 대한 문제는 심리학의 대표적인 분야(인지 심리학)중에 하나이다. 그리고, 이러한 개개인의 인지문제는 사회의 경제활동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러한 인지적 편향으로 인한 경제적인 영향력을 분석하는 학문이 바로 행동경제학이다. 행동경제학이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할지 모르겠지만. "괴짜경제학(Freakonomics)"이라든가 "넛지(Nudge)"라는 책 제목들을 한번즈음 들어본적이 있으리라. 그리고, 내가 최근에 읽었던 책, Thinking, Fast and Slow는 왜 인간이 편향된 생각을 하게 되는지, 어떠한 요인으로 편향된 인지를 하게 되는지에 대한 내용을 광범위 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내용은 다루지 않겠다 (혹 필요하다면, 나중에 다루겠다).
또한가지 생길수 있는 질문은 아마도, 과연 이러한 인지적 편향이 나쁜 것인가? 일 것이다. 위에 언급한 책들에서도 다루고 있지만, 우리는 의사결정을 하는데 있어서
이러한 인지적 편향의 영향을 받으면서 살고 있다.
본인이 설령,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를 한다고 자부하고 있더라도, 혹은, 나름의 지식을 쌓은 식자층이라고 하더라도, 위의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은 크게 이러한,
인지적 편향을 인식하는 자와 인식하지 못하는 자
로 나뉘며, 이러한 편향을 인식한 자들은 가운데서는, 이러한 편향을
이용하려는 자와 이용당하지 않으려는 자
로 나뉜다고 보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인지적 편향을) 이용하려는 자들의 대표 주자는 정치인(이라고 쓰고 "정치선동가"라 읽는다)일 것이다. 또 다른 대표 주자는 기레기라 칭하는 언론들 이다. 하지만, 그들 뿐만이 아니다. 정보를 독식하고 있는 부동산 중계인이나, 자동차 딜러, 자칭 전문가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펀드매니저, 미래를 내다볼 줄 안다는 예언가, 하다 못해, 자기네 가게 물건이 싸다고 호객행위를 하는 점원 언니까지... 알게 모르게 당신의 인지적 편향을 이용하려는 자들로 둘러쌓여 있다. 그것 말고 예제는 얼마든지 있다.
9,900원 짜리 물건,
내일이면 끝난다는 홈쇼핑 세일,
무이자 1개월,
50% 폭탄세일,
조류독감에 따른 치킨 판매 저조
고객을 위하는 회사,
국민을 위하는 정치꾼, ....
그리고, 이러한 술수(?)에 이용 당하지 않기를 자처 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은 그 똑똑한 소비자, 똑똑한 국민에 속한다 하며 자신을 칭찬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신이 만약, 스스로가 다른 이들 보다 인지적 편향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있다고 장담한다면, 당신은 인지적 편향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자일 뿐이다. 인지적 편향을 인식한다는 것은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들이 이러한 인지적 편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모든 인간들은 이러한 인지적 편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숫자를 받아들일때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상황에 따라 인지하는 정도가 달라질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인지적 편향을 없애는 것은 불가능 하다. 다만, 줄이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인지적 편향을 부분적으로 나마, 줄일수 있는 (사고적) 방법이 바로 수학이다. 물론,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설령 숫자는 진실하다고 하더라도 수를 받아 들이는 이의 인지적 편향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정도가 여전히 달라질 여지가 있다. 그런 측면으로 봤을 때,
숫자(혹은 數)는 객관적일수가 없다.
엄밀하게 이야기하자면, 숫자는 사실(혹은 진실)이라 할지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대로(혹은 객관적으로) 받아들일수 없다는거다. 절.대.로.! 이러한 인지적 편향을 줄일 수 있는게 바로 느린생각(Slow Thinking)이다. 이러한 느린생각에 대한 이야기, 어떻게 하면 이러한 편향을 줄일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을 읽어보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책에는 없는, 그렇지만 중요한 이야기는 바로, 이러한 인지적 편향을 가장 극대화 시키는 방법이 바로 "감정팔이"라는 점이다. 최씨 이야기로 정국이 어수선하기 전, 9월에 치약성분에 가습기 살균제 성분 때문에 해당 제품을 회수한 적이 있었다. 물론, 이후에 대한민국 정국이 하도 극변해서 묻히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기업에게 막대한 손해를 입힌 이러한 결정이 가능한데는, (나름 똑똑하다는) 국내 소비자들의 (공포에 대한) 인지적 편향이 한 몫을 했다는걸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어쨋든, 지금은 사라진 문제이니 더 언급하지는 않겠다 (그래도, 궁금하신 분들은 링크를 참조 하시라).
요즘, 최씨와 박근혜대통령 때문에 촛불시위가 한창이다. 정치를 아는 국민임을 자처하는 30/40대들은 아이들을 데리고 시위를 하고, 연예인들은 이러한 극단적인 정치 행위를 마치 문화행사인 것처럼 공연을 하고, 소위 말하는 야당 정치꾼들은 이러한 국민적 감정에 편승하여 국회 밖에서 대통령 하야를 외치고 있다. 법치적 민주주의의 기본은 정치적인 시위를 문화행사로 전락시키는 것이 아니라, 법으로 정해진 (다른)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먼저이다. 국민들에게는 "국민투표"라는 권한이 있고, 국회위원들에게는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권한이 있다.
지금의 한국은 이런 문화 행사에 매주 몇 십만명 이상 참석하면서 이를 평화적 민주주의라고 자랑하고 있다. 이 글을 읽는 이들중에는 촛불집회를 어떻게 그런식으로 매도 하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 오늘의 마지막 질문을 드리겠다:
모 대기업이 모든 연령대가 좋아하는 인기 가수들을 초대, 길거리 무료 공연을 위해 광화문 일대를 막는다. 그것도 매주... 언제 끝날지도 몰라 쭈욱.....
[질문] 어려분이라면, 매주 진행 되는 이 공연을 찬성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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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촛불집회는 찬성하고, 대기업의 무료공연은 반대"라고 답했다면, 당신은 지극히 정상적(?)으로 인지적 편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다른 부류의 소수의 누군가는 당신에게 감정팔이를 하면서 이윤을 얻고자 한다고 보면 맞지 않을까 싶다. 과연 여러분들은 어디에 속하는가?
인지적편향을 인식하는자인가? 아닌가?
인지적 편향을 이용하려는 자인가? 이용 당하지 않으려는 자인가?
위의 상황(대기업의 길거리 공연)과 촛불집회가 다른 점은 아마도, 다수로 칭해지는 집단의 수(혹은 비율)일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는 이러한 소수자들도 마음놓고 발언을 할수 있고, 다수는 본의 아니게 피해를 받는 소수자들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 소수자가 설령 1명 뿐이고, 다수에 반하는 발언을 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절대 다수의 기운에 눌려 소수자들이 발언조차 할수 없는, 행여 다수에 반하는 발언이라도 하면 이기주의자로 낙인 시켜버리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다수라는 이름의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대규모의 시위(Protest)가 되도록이면 지양되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고, 통상적으로 말하는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제 야당에서 국민들의 감정팔이를 접고, 대통령 탄핵 소추안을 발의 했다고 한다. 조금 늦은 것같긴 하지만, 그나마 야당이 정신을 차린것 같아 다행이다. 그리고, 야당 모의원이 걱정했던 것처럼 탄핵이 부결이 될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것인가? (법치적 자유)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라도 그 결과에 승복할 줄 알고,
민주주의 시스템을 믿고 기다릴 줄 아는 것
일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 또한, 어떻게 시위를 평화적으로 하느냐가 아니라, 기다릴수 있는 믿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하는것이, 촛불집회라는 이름의 문화(?)행사를 평화롭게 참석했다고 인증샷 찍는 것보다 훠어어어얼~~씬 중요하다.
지난 11월엔 전세계인들이 우려했던 것(?)처럼,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당선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이면서, 선진국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 그러한 믿음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의 정치적인 성향의 표출을 드럼프 당선 직 후 오바마 대통령의 발표로 대신할까 한다 (아쉽게도 자막은 없다).
https://www.youtube.com/watch?v=Wr2USTE3L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