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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Nov 26. 2021

가을밤 덕수궁에서 프랑스를 생각하다

 음악도 복원하는 문화 민주주의의 나라 프랑스 

나의 무료 공연 이벤트(?)의 역사는 '한화 교향악 축제'에서부터 시작한다. 무려 30주년이 넘은 예술의 전당 음악당 브랜드이자 2000년부터는 '한화' 교향악 축제라는 이름을 얻은 이 국내 최고의 음악축제에 참여하고 싶은 날짜와 이유를 블로그에 남겨서 선정이 되면 초대권을 받는 그런 이벤트였다. 공연에 가고 싶었던 나는 정성껏 이유를 작성했고 무려 2012년, 2013년 연속으로 선정되는 행운을 누렸다. 그때 피아니스트 김대진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듣고 푹 빠져버려서 나의 벨소리는 아직도 라흐마니노프... 


아무튼 전시회보다는 덜하지만 공연 덕후이기도 한 나는... 프랑스에서도 조수미, 조성진, 김선욱과 같은 한국을 대표하는 클래식 음악가의 공연뿐만 아니라 공연 당일에 가서야 유명세를 알았던 키신, 크리스마스에 꼭 보고 싶었던 백조의 호수, 하프시코드 고음악 공연 등의 다양한 공연을 관람했다. 언뜻 보기에는 열심히 보러 다닌 것 같긴 하지만 사실 파리에 있었던 시간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 파리에서 게을렀던 과거와 결별하는 마음으로 한국에 와서는 미친 듯이(?) 전시며 문화재며 공연을 다니고 있는데 얼마 전 갔다 온 '덕수궁 석조전 음악회'도 간만에 당첨된 무료 공연 이벤트였다. 


코로나로 인한 제한된 인원인 선착순 40명 예약이라 예약이 빡셀 거라 예상은 했지만 1분 만에 매진되는 진풍경을 이건희 컬렉션 예매 이후로 다시 겪게 되었다. 같이 예매를 시도했던 남편은 PASS 인증 업데이트 때문에 버벅대는 바람에 1분이 더 걸렸더니 이미 매진! 게다가 취소표를 예매할 수 있는 2차 티켓팅에도 무참히 실패했다. 실제로 공연 당일 사회자께서도 치열했던 티켓팅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광클에 성공한 선택받은 분들이라고! 심지어 코로나 때문에 올해는 6월, 11월 이렇게 두 번 열렸기 때문에 그날이 2021년의 마지막 공연이었다. 이런 행운이... 


덕수궁 석조전 음악회는 1918년 피아니스트 김영환이 고종의 생신 축하연에서 피아노 연주를 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석조전 중앙홀에서 열리는 클래식 공연이다. 프랑스 가기 전에는 석조전이 공사 중이라 들어가 보지 못했는데 이번에 처음 말끔하게 복원된 석조전에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프랑스 박물관 안에서도 공연을 많이 하는데 사진만 보면 마치 프랑스 박물관에서 열리는 클래식 공연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석조전과 그 내부는 대한제국의 대표적 서양식 건물의 위상을 뽐내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나의 기억은 자연스레 다시 파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오늘은 그중에서 (음악에 관한) 2가지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여기가 파리야 서울이야... 고종의 생신 축하연 기록을 바탕으로 재탄생한 석조전 음악회 내부 





#1. 음악도 복원하는 복원의 나라 프랑스 

프랑스에 가기 전부터 미술이나 건축, 패션, 영화 등의 예술을 공부하러 유학을 가는 학생들이 많은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의외였던 예술 분야가 바로 음악이었는데 음악 유학이라 하면 당연히 독일이나 이탈리아로 가는 것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에도 음악 유학생이 꽤 많았던 것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지금이야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그때는 서양 음악사에서 프랑스가 차지하는 부분을 잘 몰랐었다. 하지만 프랑스에는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CNSMDP)이라는 프랑스와 유럽을 대표하는 음악 교육 기관이 있었다. 이미 한국에서 치열한 입시지옥에서 살아남아 유수의 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은 프랑스에 와서 바로 이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에 들어가기 위해 또 다른 입시 전쟁을 치렀다.


생상스, 드뷔시, 라벨, 라모, 사티, 포레 등 서양 음악사에서 이름을 남긴 유명한 프랑스 음악가들이 있었고 게다가 색소폰을 발명한 사람이 프랑스 사람이었다는 것도 색소폰 유학생한테 들어 알게 되었다. (원래는 벨기에 사람이지만 프랑스로 이주...) 미술에 비해서 두드러지지는 않아도(아니면 내가 미술에 익숙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역사적으로 유럽 문화의 중심이었던 프랑스는 서양 음악사에서 분명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 DNA가 어디 간다고, 이 사람들 정말 음악(예술? 문화재?)에 진심이라고 느끼게 된 적이 있었는데... 노트르담 복원 공사에 대한 연구(복원 공사를 시작하기 전 사전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할 때였다. 노트르담의 사전 연구팀은 8개의 그룹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목재, 금속, 디지털, 구조, 석조, 유리, 감정, 그리고 음향. 이 마지막 두 분야가 참 흥미로웠다. 


음향은 말 그대로 화재가 나기 전 노트르담 성당에서 울리던 소리를 복원하는 연구 분야이다. 실체가 있는 석재, 목재, 유리 등과는 달리 음향은 무형의 것이고 모양, 속성, 볼륨 등에 의해 생성된다. 따라서 볼륨 및 음향 재료 시뮬레이션 및 무형 문화유산 복원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 오르간, 성가대 등의 음악을 수용할 수 있는 음향에 최대한 가까운 음향을 찾는 목표로 노트르담을 연구하고 있다. 이 그룹에는 파리 국립 고등 음악원과 소르본 대학의 음악학 연구소, 요크 성당의 음향을 복원한 요크대학교 연구팀, 그리고 세계에서 유일한 사운드스케이프 고고학자 등이 함께 하고 있다. 사운드 스케이프 고고학이란, 고고학자처럼 과거의 유적을 발굴하고 포착하여 생생하게 재현하며 '소리'의 유적을 발굴하는 일을 말한다. 예를 들면 대장장이와 망치와 같은 전통적 소리나 18세기 샤틀레 지역을 5D로 재건하는 프로젝트 등... 이건 나도 지금 찾다 보니 처음 알게 된 분야이다. 정말 별 걸 다 복원하는 프랑스, 역시나 문화재에 진심인 프랑스.






#2. '문화가 있는 날'의 원조 프랑스

덕수궁에 들어가기 몇 십분 전. 갑자기 덕수궁 입장료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사실 덕수궁 입장료는 1,000원밖에 안 하지만 석조전 음악회는 전석 무료 공연인데 입장료를 받는 게 말이 되는가, 입장할 때 예약 문자를 보여주면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 건가, 아니면 1,000원밖에 안 하니까 그냥 내고 들어갈까? 따로 안내가 나와있지 않아 별별 생각을 다하고 있었는데, 이런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이라 덕수궁 자체가 무료입장이라는 게 아닌가. 덕수궁 무료입장으로 전석 무료 관람의 취지를 살릴 수도 있고(입장료 금액은 차치하고서라도) "국민이 일상에서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문화혜택을 제공한다"는 문화가 있는 날의 목표와 누구나 쉽게 클래식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특별 문화행사인 석조전 음악회가 딱 들어맞는 너무나 귀여운(?) 포지셔닝이라고 생각했다.


'문화가 있는 날'이 프랑스를 벤치마킹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프랑스에도 '문화가 있는 날'이 존재한다. 우선 매월 첫 번째 일요일마다 국/공립 박물관/미술관을 무료로 개방을 한다. 세계 박물관의 날인 5월 18일과 가장 가까운 토요일에는 사립 박물관/미술관도 참여하는 '유럽 박물관의 밤'이 열려, 밤부터 무료로 방문할 수 있다. 또한 내가 가장 사랑하는 9월 셋째 주 '유럽 문화유산의 날'에도 평소 개방하지 않는 여러 시설들이 무료로 개방된다. 그 밖에도 뉘 블랑쉬를 비롯한 크고 작은 행사 때도 무료로 박물관/미술관을 방문할 수 있다. 이러한 특별한 날에는 석조전 음악회처럼 박물관 내에서 다양한 공연이 열리곤 한다. 


이런 무료 개방의 역사에는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날짜들이 있다. 1984년 9월 23일에는 당시 문화부 장관인 자크 랑(Jack Lang)의 주도로 '역사적 기념물 개방일(Jornée portes ouvertes dans les monuments historiques)'이 제정되었다. 역사적 기념물 개방일의 성공에 힘입어 (여전히 자크 랑이) 이 날을 유럽 차원으로 확장할 것을 제안했다. 그에 따라 1985년 10월 3일 '문화유산의 날(Journée du Patrimoine)'이 탄생했다. 이것이 지금 알고 있는 '유럽 문화유산의 날'의 시작이다. 



문화 정치는 프랑스의 발명품이다.
 

장 미셸 지앙의 < 문화는 정치다 Politique culturelle : la fin d'un mythe >라는 책의 강렬한 도입부가 말하는 것처럼 누구나 문화예술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는 문화 민주주의는 프랑스 문화정책의 핵심이자 프랑스의 아이덴티티이다. 약 20년 전에 도입된 박물관/미술관 및 기념물 무료입장은 문화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프랑스 정부의 결단으로 앞서 말한  '유럽 문화유산의 날', '유럽 박물관의 밤' 등등 다양한 이름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그 혜택을 오늘날 우리도 누리고 있다. 







예술가적 기질(?)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예술가의 (창작) 재능은 없어 늘 창작하는 직업에 열등감을 가졌던 나는 파리에서 오케스트라 공연을 볼 때마다 늘 무대 위 단원들의 삶의 만족도가 궁금했다. 예술의 도시에서 매일 자기가 좋아하는 예술을 하고 있는 그들은 행복할까? 프랑스에서 만났던 음대 후배들이 음악은 취미로 할 때 아름답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한 것처럼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그게 '일'이고 '직업'이 되면 그건 또 다른 문제인데.. 아마 그렇게 가고 싶었던 파리에서 게으르게 살고 있던 나의 현실과 더 비교되어 연주자들이 마냥 행복해 보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글이라는 창작의 도구를 찾은 나는 더 이상 열등감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다. 대신 이렇게 일상 속에서 문화를 향유하며 나의 도구로 나의 일을 하고 있다. 덕분에 오래간만에 오롯이 음악만 즐길 수 있었던 덕수궁의 (추운) 가을밤이었다. 


물론 여전히 연주는 하고 싶지만!




키신 님 공연 후 감상.. 2년이 지난 지금의 나, 더 잘하고 있지?





P.S. 

여전히 연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 음악인의 사진s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치던 저 귀여운 어린이는 어디 가고... 아 세월이여;;




피아노 배울 때 바이올린도 배웠던 기억은 있지만 치는 법은 기억이 안 나서 파리에서 새로 배운 적이 있다. 꼭 바이올린을 다시 하고 싶어서 서울 풍물시장에서 무려 3만원을 주고 구매하였는데 저렇게 장식용으로 전락해버렸다. 선생님한테 테이프 절대 안 붙인다고 우기다가 붙였는데 그 뒤로 수업을 안 가서 테이프만 덩그러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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