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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Nov 23. 2021

3년 전 그리고 오늘의 <라틴어 수업>

나는 왜 나이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는가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신기했던 점은 낯선 이들과의 소모임 활성화(?)였다. 특히 코로나 여파로 소규모 취미 모임이 굉장히 활성화가 되었는데, 모르는 사람들과 자발적으로 모이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적지 않은 참가비를 내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모임과 토론, 발표를 싫어해서 아무리 듣고 싶은 수업이어도 수강신청할 때 가장 먼저 조모임, 토론, 발표부터 거르던 나의 성향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모임에 돈을 내고 참가한다는 사실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나도 이제 한국물이 다시 들었는지 (아직 참가해보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그런 취미 모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참가에 앞서 남편과 모의 독서 모임이라는 걸 해보았다. 10분 정도 한 장(챕터 또는 페이지) 등 원하는 부분의 원하는 분량을 읽은 뒤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내가 고른 책은 '라틴어 수업'이었다. 라틴어 수업은 한국인 최고, 동아시아 최초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가 된 한동일 변호사의 베스트셀러이다. 베스트셀러였던 덕에 전자 도서관에 구비되어 있었고 프랑스에서 읽어볼 수 있었다. 원래 나는 한 번 읽는 책은 (절대) 다시 안 읽는 스타일이라 대부분 도서관에서 빌려 보고 공부 등에 필요한 책만 구입하는데, 한동일 변호사의 책을 글쓰기 롤모델로 삼고 싶어 책을 구입하여 다시 읽어본 것이었다.


'라틴어 수업'은 2010년 2학기에서 2016년 1학기까지 서강대에서 강의한 라틴어 수업을 정리한 책이다. 나도 학교 다닐 때 라틴어 수업을 들어보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대신 마지막 학기였던 2010년 1학기에 이탈리아어 수업을 청강하였다. 어차피 2010년 여름에 졸업했기 때문에 2010년 2학기에 시작했던 이 수업을 들을 수 없었겠지만 지나고 보니 듣지 못해 아쉬운 수업들이 참 많았다.





10분 동안 1장(챕터)을 읽었다. 1장은 <내 안의 위대한 유치함, Magna puerilita quae est in me>이라는 제목이다. 책을 읽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인스타에 올리기도 했는데, 당연히 3년 전 읽은 '라틴어 수업'의 감상문도 남겼었다.


라틴어 (수강이 아니라) '청강'하겠다고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어언 10년. 그래도 다빈치도 36세에 시작했다니 나도 아직 늦지 않았나? 물론 모국어로 안 되는 건 외국어로도 안된다지만 그걸 가능케 해주는 게 내 안의 유치함이라는데... 



이러한 감상문이 나온 까닭은 다음과 같은 내용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탈리아어로 번역되지 않은 문학, 철학, 역사 고전을 읽기 위해 36세에 라틴어를 독학으로 공부했다. 다빈치는 라틴어 공부 덕분에 인문학 고전을 원전으로 읽으며 묻혀 있던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었다.
삶의 긴 여정 중 한 부분인 학문의 지난한 과정은 어쩌면 있어 보이고 싶은 유치함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무언가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왜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 들여다보자. 만약 그 안에 나의 유치함을 발견했다면 그것이 힘든 과정 중 동기부여가 되는 위대한 유치함이 되지 않을까?





책을 읽을 당시 (아니 언제나) 나이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했었다. 사실 이제 와서 보면 정말 어린 나이였는데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석사, 유학 때문에 늘 내가 늦었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래서 더더욱 다빈치의 일화가 위로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드디어 다빈치와 동갑이 된(?) 지금은 오히려 그때만큼의 조급함은 사라진 것 같았다(아예 없을 수는 없지만). 어차피 회사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평균인(요새 번역하고 있는 책에서 나온 개념인데, 완전히 들어맞지는 않겠지만 대충 비슷한 뉘앙스?)에서 벗어나기로 결정한 것이니 사실 나이의 강박에서도 벗어나는 게 맞는 건데 왜 그렇게 나이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어쨌든 3년이 지난 지금은 나이의 압박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고, 오히려 배움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느끼고 여러 경험을 발판 삼아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고 있다.



이밖에도 3년이 지난 지금, 새롭게 포착된 내용이 있었다. 공부를 잘하고 싶었던 한동일 변호사는 경쟁 상대는 국내가 아닌 외국의 학생이라는 것을 일찍 깨닫고 영어와 외국어 공부에 매진했다. 큰 성과가 있었던 건 아니어서 좌절하기도 했지만 이 모든 것들은 훗날 로마에 유학 가서 꽃 피우게 되었다. 3년 전에도 이 내용에 꽂혔었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오늘의 나에게 와닿은 이유는 (이전 글에도 쓴 적이 있지만) 외국어 공부를 좋아하고 유럽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 있었던 그 모든 시간들이, 그때는 내가 한국인으로 이런 걸 좋아하고 배워서 어디다 써먹냐고 좌절하기도 했지만 결국 프랑스에서, 그리고 한국에서 내가 한 일에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는 걸 몸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라틴어 수업' 10장은 <Tantum videmus quantum scimus>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이 문장은 '우리는 아는 만큼, 그만큼 본다'는 뜻이다.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지 않은 이유는, 단순하게도 내용을 다 알아서였다. 주로 추리 소설을 읽었기 때문에 한 번 읽은 책은 추리 소설의 백미인 범인과 반전을 다 알아버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독서 모임을 통해 다시 읽기라는 새로운 즐거움을 맛보았다. 내가 걸어온 시간만큼, 내가 본 세상만큼 같은 내용도 다르게 보이고 전에는 전혀 눈에 띄지 않았던 것들이 눈앞에 딱 펼쳐질 수도 있다. 아마도 이러한 이유로 (나이 듦의 유일한 장점이라고 생각되지만...) 오히려 어제보다 오늘 나이의 압박에서, 그리고 나를 둘러싼 환경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라틴어 맛집은 역시 이탈리아 - 라벤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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