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asmine May 22. 2022

음악은 문화유산이 될 수 있을까?

음악과 건축 유산의 진정성에 대하여


몇 번 얘기한 것처럼 의외로 많은 음악 전공자들이 프랑스로 유학을 떠난다. 그 덕분에 프랑스에서 음대 출신 선후배를 많이 만나 교류할 수 있었다. 평소라면 마주치기 힘들었을 낯선 분야의 전문가와의 만남은 그 자체로 새로운 자극을 주었고 특히 예술가로 살아가는 친구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음악 전공자만이 알 수 있는 파리의 숨겨진 보물 같은 공연을 접하기도 했다. '예술'을 업으로 살아가는 일은 분명 힘들고 고된 길이었다. 하지만 알면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다. 예술가로서의 본능이기도 했고, 또 사명이기도 했다. 파리국립고등음악원(CNSMDP)을 필두로 여러 콩세르바투아(Conservatoire)에 다니며 열심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음악 전공자 친구들이 그것을 몸소 보여주었다.



파리국립고등음악원. 친구가 오라고 할 때 가볼걸, 이제는 가고 싶어도 못 가네.. 출처 : wikipedia


음대 후배들 덕분에 파리에서 공연을 보러 다니면서, 두 가지 질문이 늘 머릿속에 맴돌았다. 우리는 공연장에서 연주가가 연주하는 음악을 듣고 감동을 받는다. 하지만 그곳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결국 작곡가의 창작물이고 연주자는 음악을 연주하는 기술자에 불과하지 않을까? 사실 '예술가'라는 직업 안에는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사람과 표현하는 사람 모두 포함되는데 예술=창작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힌 무지한 나는 어떻게 보면 음악가 안에서 급을 나눈 것이다.. 이런 생각을 무려 조성진 공연 중에 했다는 사실;


두 번째 질문은 '고전 음악이란 무엇인가'였다. 현대에 만들어진 음악은 고전 음악, 즉 클래식이 될 수 없을까? 현대에 만들어진 음악도 클래식의 작곡법을 따르면 시간이 지나 클래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프랑스 파리국립고등음악원의 écriture라는 특별한 전공 때문에 갖게 된 의문이었다. 프랑스만의 특별한 전공인 이것을 위해 프랑스를 선택한 친구의 말을 기억하기로는,  écriture의 특별한 점은 클래식 작곡가들의 방식으로 작곡을 하는 법을 배운다고 하였다. 수많은 클래식 공연에서 연주되는 곡은 소위 말하는 클래식 작곡가라고 일컬어지는 서양 작곡가의 것에 한정되어 있는데, 이렇게 클래식 스타일로 작곡한 현대 음악도 과연 클래식으로 분류될 수 있을까?  (물론 현대 클래식 작곡가의 음악도 공연되지만,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클래식 공연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이상하게도 공연만 보면 나를 괴롭히던(?) 이 의문들이 방에 풀리게 된 순간이 있었다. 역시 후배의 초대로 어느 공연을 보던 중이었다. 내 나름대로 얻은 답을 설명하려면 먼저 이 개념을 소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문화유산 보존복원을 전공하는 내가 가장 관심 있는 키워드는 바로 '진정성(authenticité)'이다. 영어로는 authenticity라고 하는 이 단어는 단어 그대로 '진품', '진짜'라는 뜻에서 시작하여 여러 개념으로 발전되었고 현재는 문화유산의 가치를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유네스코에서 세계유산을 등재할 때 평가하는 기준 중 하나이지만 주관적이고 유동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이 개념을 정의하고 규정하는 것이 문화유산 보존복원에 필수라고 생각되어 진정성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실마리는 2020년 5월 벨기에 몽스에서 열린 '문화유산&진정성(Patrimoine&Authenticité)'이라는 콘퍼런스 보고서에서 읽은 재밌는 글에서 시작되었다. 건축 유산의 진정성을 설명하면서 음악(곧 performance instrumentale)과의 진정성을 비교한 내용이었다. 벨기에 건축가인 필자의 말에 따르면, 음악에서의 진정성은 작품이 작곡된 시대 스타일의 기악 연주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고음악을 해석하는 데 있어 그 시대의 정신에 젖어들어야 하고, 가능한 한 오래된 악기를 사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러한 논리를 건축유산 분야에 적용할 수 있을까? 바흐와 모차르트의 음악은 유럽 유산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심지어 유럽 연합 국가에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가 사용되었다. 반면 유로화의 지폐에는 구체적 작품을 언급하지 않고 의례적인 건축물, 다리, 건물 등의 모습으로 선택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5유로짜리 지폐를 보면 로마 시대 수로교가 그려져 있는데 프랑스 남부에 있는 퐁뒤가르를 닮았다. 이것을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유럽연합의 유럽가. 환희의 송가



5유로 지폐. 로마 수로교 퐁뒤가르를 닮았지만 어떤 건물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사실 음악과 건축은 매우 다르지만, 모두 '예술' 안에서 하나로 묶이는 경향이 있다. 음악과 건축은 질서와 감정의 창조물이라 자주 연결이 되지만 차이점은 거의 강조되지 않는다. 사실 바흐의 작품은 고악기 또는 다양한 형태로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연주될 수 있다. 하지만 에펠탑이나 베네치아를 보고 싶다면 반드시 물리적으로 파리, 베네치아로 이동해야 한다. 건축은 그 콘텍스트와 분리할 수 없기 때문에. 베네치아는 진정성을 가진 어센틱한 도시로 묘사되지만 유럽에서 가장 인구 감소가 심한 곳 중 하나인 베네치아의 대부분의 건물은 개조되었고 카니발 용품을 파는 가게들은 좁은 골목마다 들어서있다. 이럼에도 베네치아를 여전히 진정성 있는 도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음악의 경우는 다르다. 좋은 음질의 음반은 바흐의 진정한 작품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한다. 필자는 2019년 베를린에서 쇼스타코비치를 연주하는 베를린 필하모니의 공연을 볼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필하모니 건물은 건축가 한스 샤룬(Hans Scharoun)이 지은 것이었다. 그는 같은 공연을 벨기에의 겐트에서 볼 수도 있고 또 음반으로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완벽한 음향을 갖춘 특별한 공간은 레코드를 대체할 수 없다. 그렇다고 모든 공연장이 베를린 필하모닉처럼 유명하거나 잘 갖춰진 것은 아니다. 여기에 진정성은 과연 어디 있을까? 건축가가 베를린 필하모니로 무엇을 실현한 것이었을까? 공연장은 모든 면에서 음악을 중심에 배치한 독특한 곳이었다. 한스 샤룬은 철저하게 공연장을 뜯어고쳤고, 그 콘셉트는 많은 건축가에게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베를린 필하모니는 레퍼런스이자 '어센틱한' 작품이 되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내부. 장방형 공연장에 익숙했던 당시에는 혁명적인 설계라고 한다. 출처 : Philharmonie Berlin




음악 철학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할 수 없지만 이 글은 유형, 그리고 원형에만 매몰되어 있던 유산의 개념을 무형까지 확대함으로써 나의 오래된 질문에 대한 해답이 되어주었다. 앞서 말한 대로 건축은 건축의 콘텍스트와는 떼려야 뗄 수 없다. 건축유산을 보기 위해선 꼭 그 장소로 물리적인 이동을 해야 한다. 이점이 건축유산의 진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 문화유산이자, 또 그 가치는 곧 원형, 즉 original이자 unique한 form이었다.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는 음악의 유산적 특성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생각하는 음악 유산이란 다른 블로그에도 썼듯이 건축 유산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연장(더 확대하면 작곡가의 친필 악보나 작곡가가 사용했던 직접 사용했던 물건들, 작곡가가 태어난 집... 여전히 유형적인 오브제인) 정도. 콘퍼런스의 발제자가 의도한 건 이게 아니었을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문화유산과 진정성의 개념, 특히 원형에 대한 개념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음악 유산에 대해 썼던 글 ↴ ↴ ↴

https://rapha-archives.tistory.com/33?category=962699




그럼 이제 질문의 답으로 돌아가 보겠다. 먼저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내리고 싶다. '음악' 그 자체가 유산이 되자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렸다. 미술이나 건축이나 음악이나 모두 예술사의 한 흐름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즉,... 중세 고딕 > 르네상스 > 바로크 > 로코코 > 고전주의... > 현대처럼 거대한 서양 음악사 속에 존재하는 한 지점이라는 것. 미술의 예를 들어보자.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은 현대 미술 작가에 속하고 그들의 작품은 현대 미술로 분류되고 있다. 한편으로, 서양 미술사의 족적을 남긴 ~주의, ~파의 그림들도 박물관 안에서 여전히 관객들을 만나며 소통하고 있다. 음악도 마찬가지이다. 현대 음악이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클래식 음악도 연주자들에 의해 계속해서 소비되며 관객을 만나고 있다. 미술과 다른 점은 미술은 원작이 존재하지만 음악은 원작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콘퍼런스의 필자 역시 음악의 진정성을 장소와 오래된 악기로 한정하여 최대한 그 시대의 정신을 되살릴 수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여기에서 첫 번째 질문의 답을 내릴 수 있다. 아니, 더 나아가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고 싶다. 보존과 복원이라는 행위를 통해 단 하나의 원형만이 존재하는 문화유산을 후대에 전승한다. 이것이 보존가와 복원가의 역할이다. 또한 문화매개자(Méditateur culturel)는 작품과 관객의 관계 맺음을 구체화시켜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이 고유한 의미를 만들어 내도록 촉진시키는 역할을 한다. (참고 http://webzine.arko.or.kr/load.asp?subPage=10.View&idx=514&searchCate=10)



최대한 작곡가의 의도와 그 시대의 정신을 보존하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악을 재해석하고 복원하며 음악이라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에게 고유한 의미를 전달하는 것, 이것이 내가 새롭게 부여하고 싶은 예술가이자 연주자의 의미이며 책임이다. 이곳에서 건축유산으로 조금만 방향을 비틀어본다. 우리가 문화유산을 차도남 이미지 -어떤 교수님이 말씀하신 표현-에 고정하지 않고 보다 유연하고 열린 마음으로 바라볼 때 그 진정성 역시 다양하게 정립되어 보존과 복원에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라고 하지만 사실은 '원형'에만 함몰되어 다른 가치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물론 문화유산 보존복원 원칙은 원형유지이지만!).

 



P.S.

클래식 음악(클래시컬 음악)은 넓은 의미에서 서양 전통예술 음악을 통칭하고 또 고전주의 시대 음악을 말하는 것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말하고 싶은 클래식 음악은 통용적으로 받아들이는, 고전 시대 음악뿐만 아니라 바로크, 낭만까지 포함하여 공통 관습 시대에 작곡된 서양음악 전반을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에서는 용어의 정의보다는 음악의 유산적 속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후배의 초대로 갔던 공연장에 있던 오르간.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등록된 오르간을 따로 관리할 정도로 프랑스에서 오르간은 매우 중요한 유산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