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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Jul 05. 2022

에밀 졸라의 <집구석들>에서 만난 19세기 파리건축보존

문학과 미술, 그리고 문화유산과의 관계

파리를 가장 가깝게 느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답은 당연히 비행기를 타고 파리로 직접 날아가는 것이다. 혹시 상황이 여의치 않을 경우에는?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수많은 영화, 다큐멘터리가 있다. 그것도 너무 거창하면 유튜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파리 브이로그가 있다. 우리는 바야흐로 앉아서 클릭 한 번에 전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그런 시대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영상 말고 좀 더 클래식한 방법이 있다. 영상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부터 인류가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도록 오랜 친구가 되어주었던 바로 책책책(사실은 다른 답이 또 있지만 이 글의 후속 편에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불문학과임에도 에밀 졸라(Émile Zola)의 작품과는 별 인연이 없었다. 문학 수업에서 배운 적도 없었고, 알고 있는 에밀 졸라의 작품이라고 <목로주점>과 <나나>, 그리고 <나는 고발한다...!> 정도... (물론 읽어본 적도 없다) 에밀 졸라와의 가장 가까운 인연이라고 한다면 에밀 졸라의 이름을 딴 길과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지하철 근처에 살았다는 것?? 그런 중에 처음으로 읽어 본 에밀 졸라의 책은 아름다운 표지에 이끌려 보게 된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Au Bonheur des Dames)>이었다. 이 책에 대해서는 후속 편에서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어쨌든 기억하기로는 에밀 졸라의 유일한 해피엔딩이라고 했던 것 같다.


요새 여기저기서 '세계관'이라는 단어를 자주 보게 된다. 제일 유명한 건 아마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에밀 졸라가 19세기 말 발간한 총 20권짜리 이야기 '루공-마카르 총서(Les Rougon-Macqaurt)'가 어쩌면 이런 세계관의 원조격이 아니었을까? 앞서 말한 <목로주점>과 <나나> 역시 '루공-마카르 총서' 중 하나이다. 'Histoire Naturelle et sociale d'une famille sous le Second Empire(제2제정 시대의 한 가정의 자연 및 사회사)'라는 부제에서 볼 수 있듯이 에밀 졸라는 소설 속에서 제2제정 시대 Plassans 출신인 5대에 걸친 가족의 유전적 결함, 인간에 대한 환경의 영향을 연구했다. 뿐만 아니라 파리의 도시 계획, 백화점의 탄생, 철도의 발전, 현대 노동조합의 출현 등 파리와 유럽의 근대화를 대표하는 사건들을 자세히 그려내어 그 하나로도 역사적 사료가 되어 준다.




에밀 졸라와 별 인연이 없던 내가 최근 그의 소설을 읽게 되었다. 카유보트 또는 피사로의 그림을 상기시키는 파리의 겨울과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집구석들'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 특이한 제목, 그리고 책 설명이 파리를 그리워하는 나의 눈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 부부의 맏아들인 야심만만한 청년 옥따브가 빠리로 상경해 사업과 여인을 수단으로 성공을 꿈꾸며 벌어지는 일을 담은 『집구석들』은, 그의 부모에 대한 언급이나 가정적 배경이 축소되어 있으므로 ‘루공 마까르’ 제10권이라는 부담감은 떨쳐도 좋을 것이다.

한편 『집구석들』은 졸라가 과학 실험을 하듯 소설을 써야 한다는 ‘실험소설론’을 주장하며 치밀한 관찰과 수많은 자료에 의거해 쓴 대표적 작품 중 하나다. 그때까지 문학작품의 소재로 금기시돼오던 빈민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파헤침으로써 당시 문단에 큰 충격을 불러일으키고 거센 비판의 표적이 됐다. 부르주아의 위선적 삶을 제2제정 시대의 가정들을 통해 신랄하게 드러낸 이 작품을 통해, 빠리의 한 모퉁이 슈아죌 거리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삶을 묘사한 자연주의 소설기법의 정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집구석들 표지

책 소개와 표지 출처 : https://digital.kyobobook.co.kr/digital/ebook/ebookDetail.ink?barcode=4808936464875



슈아죌 거리. 자주는 가지는 않았어도 눈 감고도 지도에서 집어낼 수 있을 그곳. 자연주의 소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장르이지만 낯설지 않은 그 거리에서 일어난 19세기 이야기가 너무 보고 싶어 설레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자연주의 문학의 특징이라고 하면 앞서 말한 찰스 다윈의 진화론에 영향을 받은, 유전과 사회적 환경이 결정하는 인간의 성격과 공상적인 낭만주의에 반대하는 과학적이고 사실적인 묘사 등이라고 할 수 있는데 졸라의 <집구석들> 또한 그 특징을 잘 담고 있었다. 그중에서 두 가지 포인트를 짚어보고자 한다.



첫 번째. 주인공의 거처. 배경이 되는 집은 슈아죌 거리에 있는 오스만 양식의 파리 아파트먼트이다. 파리의 도시 풍경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바로 그 건물들. 오스만 아파트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었지만(물론 내부는 리모델링을 다 했어도) 사실 뭐니 뭐니 해도 살기에는 현대식 건물이 최고였기 때문에 무려 1970년!!에 지어진, 파리의 스카이라인을 위협하는 최첨단 건물!!에 살았던 내가 이런 오스만 양식을 체험해본 적이 있다. 새 집에 입주하기 전 일정이 비어서 친구네 집, 바로 그 유명한 하녀 방에서 며칠 머물렀던 것이다. 하녀 방은 파리 아파트의 마지막 꼭대기 층에 위치한 집(이라고 하기에 민망한 방..)으로, 고개를 들어 아름다운 오스만 건물의 지붕을 쳐다보면 로맨틱한 창문이 하나씩 튀어나와 있는 걸 볼 수 있다. 바로 그곳이 하녀 방이다. <집구석들>에도 이런 하녀 방이 나오는데, 당시에는 진짜 하녀들이 살던 곳이었다. 복도에 있는 화장실을 공용으로 사용했다는 묘사가 있었고, 2세기가 지난 21세기에도 하녀 방 거주자들은 복도에 있는 화장실을 공용으로 사용했다. 그때는 샤워부스도 나눠 써야 했다는데 그래도 지금은 방 안에 샤워부스가 있다. 문이 있으면 양반이고 내가 있던 방은 샤워 커튼이 쳐져 있었다..


친구의 방 월세는 약 500유로대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심각한 주택난인 파리에서 사실 500유로대의 방을 구하기는 정말 힘들다. 아마 몇 년이 지난 지금은 더 오르지 않았을까? 현재 환율로 500유로라 해도 약 67만 원, 8m2에서 20m2(면적에 따라 더 비싸지지만) 남짓한 그곳이 이 가격이라니(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가격도 엄청 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임대가 아닌 구매를 하려면 그 금액은 무려 1억이 넘는다는 사실. <에밀리 인 파리>를 보지 않았지만 파리에 도착한 에밀리가 하녀 방에 입주했다고 하는데... 하녀 방이라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하녀 방 바로 밑층으로, 하녀 방에는 절대 그런 낭만이 없다. 아, 가끔은 남편과 하녀 방에서 복작거리던 그 며칠이 그립긴 하다. 그래도 절대! 다시는!! 두 명이서 원룸에서 살지 못하겠지만..



밖에서 보는 창문은 로맨틱하지만 삶은 현실이다.. 출처: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Les_chambres_de_bonnes.jpg

참고로 주인공이 파리에 상경해 지인 집에서 머무는데 그 집은 4층으로 일 년에 2,500프랑이다. 1901년 프랑-2021년 유로로 변환해보니 인플레를 감안해서 약 10,142유로로 연세가 약 1,373만 원?? 1800년대에도 파리 집세는 무지하게 비쌌구나...



두 번째, 주인공이 신세를 지는 지인의 직업은 건축가이다. 이와 관련한 몇 가지 재미있는 고증들이 보였다.


집에 있을 때는 보통 저녁 먹기 무섭게 잠이 드는 깡빠르동이 예술가다운 쾌활함을 되찾아 국립미술학교 시절의 해묵은 익살과 야한 노래들을 되살려낸 것이다. <집구석들>, 창비, 257쪽


건축가 깡빠르동은 국립미술학교를 다녔다고 했다. 현재 프랑스에서 건축 공부를 하고 건축가가 되려면 국립건축학교(Ecole Nationale Supérieure de l'Architecture)에 진학한다. 하지만 1968년까지 건축은 회화, 조각, 판화와 함께 파리 국립미술학교(Ecole Nationale Supérieure des Beaux-Arts de Paris)에서 가르치던 전공 중 하나였다. 문인이자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André Malaux)가 장관 재직 시절 8개의 건축 교육 단위(Unités pédagogique de l'architecture)를 만들어 건축이 분리되었고, 이 교육 단위는 지금의 국립건축학교가 되었다. 당연히 공대 안에 속해있는 한국의 건축학과와는 달리 예술로서의 건축을 중요시하는 프랑스의 전통이 잘 드러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한 이유인지 프랑스에서는 건축사학과(Histoire de l'architecture) 역시 인문과학의 예술사학과(Histoire de l'art) 안의 한 전공으로 포함되어 있다(물론 건축학교에서도 건축사를 배울 수 있다).



거의 같은 때에 깡빠르동이 신바람 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는 가만히 참고 있을 수가 없는지 몇마디 토막말로 아주 좋은 일이 생겼다고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생로끄 성당 보좌로 있는 모뒤 신부가 공사를 맡겼는데, 간단한 보수공사지만 자기 장래에 엄청난 보탬이 되는 일이라는 것이었다.
<집구석들>, 창비, 24쪽
"그렇소, 내가 에브뢰에서 교구 지정 건축가로 임명되었어요. 물론 돈벌이로 보자면야 형편없지. 통틀어봤자 일년에 겨우 2000프랑이니까. 하지만 할 일도 별로 없고 이따금 한번씩 그쪽에 다녀오기만 하면 되니까 뭐. 게다가 현지에 감독관도 하나 있고. 이봐요, 명함에 '정부 지정 건축가'라고 쓸 수 있다는 건 대단한 거라니까. 그 덕분에 상류사회에서 일거리가 얼마나 많이 들어오는지 당신은 상상도 못할 거요."
<집구석들>, 창비, 18쪽
모뒤 신부였다. 건축가가 거기 없었으므로, 그는 자기가 열과 성을 다해 지휘하는 중인 십자고상 보수작업을 옥따브에게 부득부득 구경시키고 싶어 했다. 그는 옥따브를 성가대석 뒤쪽으로 데리고 가서 먼저 동정 성모 제단을 보여주었다. 벽이 흰 대리석으로 된 그 제단 위에는 그리스도가 탄생한 구유를 중심으로 로꼬꼬 양식의 성 요셉상과 성모 마리아상, 예수상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뒤쪽으로 계속해서 신부는 금으로 만든 일곱개의 등과 금촛대들, 황금빛 스테인드글라스의 황갈색 그림자 속에 번쩍이는 금제단을 갖춘 '영원한 흠숭의 제단'을 가로지르게끔 옥따브를 안내했다. 그러나 거기는 이곳저곳에 판자로 세운 칸막이가 성당 끝 쪽을 막고 있었고, 보일 듯 말 듯 떨리는 침묵 속에 무릎 꿇고 기도문을 웅얼웅얼 외우는 검은 그림자들 위로 곡괭이질 소리며 목수들의 목소리며 공사장의 요란한 소들이 온통 울려 퍼졌다. [...] 판자 저쪽에는 회반죽이 쏟아져 있고, 흰 석회가루가 날아다니고 질퍽한 물 때문에 습기가 찬 채로 성당 한구석이 한데를 향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 무엇보다 압권은 발치에 성모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를 거느린 십자가의 그리스도상이죠. 그것을 석재 꼭대기에 걸고 회색 바탕에 하얀 석상들을 부각시키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아까 말했듯이 둥근 천장에서 들어오는 햇빛이 눈에 안 보이는 광선처럼 환히 비춰주어 석상들은 앞으로 튀어나와 보이고 초자연적인 생명력으로 활기를 띠게 되지요. 다 된 다음에 보시오, 보시라고요!"
[...] "저기 앞에 보이는 중앙 통로의 양쪽 창들을 열어놓는다고 생각해보시오. 그리고 동정 성모 제단에 가 있어보시오. 제단 위로, 영원한 흠숭의 제단을 건너, 저 끝 쪽에 십자고상이 보일 겁니다. 그러면 감실이 있는 저 우묵히 들어간 공간에 스테인드글라스, 전등, 금촛대들로 연출되는 신비스러운 밤 같은 분위기를 배경으로 이 세 중심 형상이 내는, 소박하고 꾸밈없는 극적 효과 말이오. 그 효과가 상상이 되시오? 저항할 도리가 없을 만큼 매혹적일 것 같지 않나요?
<집구석들>, 창비, 272~274쪽


위의 장면은 건축가 깡빠르동이 성당 보수를 하는 작업 현장이다. '생로끄 성당'이 궁금해서 어디에 있는 어떤 성당인지 찾아보기로 했다. Eglise Saint-Roch de Paris라는 성당은 아는데, 여긴 생 로슈 성당이 아닌가? 슈아죌 거리에서 걸어갈 수 있는 성당을 지도에서 찾아보니 Eglise Saint-Roch de Paris가 맞았다. 알고 보니 생 로끄가 그 Saint-Roch였던 것이다. 생 로슈라면 Saint-Roche가 될 테니...

사실  <집구석들>의 원제목과 성당을 치면 바로 찾을 수 있는데 그전에 나는 구글 지도로 성당을 찾았다. 뤼팡 집도 구글 지도로 찾았었는데, 한때 나는 파리의 내비게이션으로 불렸다


아래는 생로끄 성당의 내부 제단의 모습이다. 졸라가 묘사하던 때랑은 많이 바뀐 것 같지만 모뒤 신부가 말한 것처럼 저항할 도리가 없을 만큼 매혹적인 극적 효과가 나타나는 것 같은지? 건물을 보수한 흔적을 남기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문화재 보존, 복원에 엄격한 프랑스에서는 그 자체로 역사적 사료가 되는 Constat d'état라는 문서로 기록되어 전해진다.


출처 : Zigzag Paris





프랑스는 원래 학사와 석사의 전공이 같아야 석사에 입학할 수가 있다. 하지만 싸데펑의 나라답게 분명 예외가 존재했고, 학사와 진학하고자 하는 석사 전공이 달랐던 나는 그 예외에 들기 위해 자소서에서 '문학과 미술'의 관계를 부각했다. 문인과 교류한 화가들(마네의 그림에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졸라!), 서로의 작품에 반영한 이 교감들, 시인이자 미술비평가였던 보들레르. 문학과 미술이 공유하는 사조들...... 그리고 오늘, 또 하나의 접점을 만나게 되었다. 19세기 건축유산 보존, 복원 현장이 눈앞에 살아났듯 문화재 보존, 복원에서 매우 중요한 원형 고증 자료와 수리 기록 자료로써의 문학 말이다. 물론 '픽션'이라는 특성상 팩트 체크를 해야 하겠지만, 사실 픽션은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탄생한다. <영원한 유산>의 벽수산장처럼.


<영원한 유산>을 읽고 나는 마지막에 이렇게 마무리를 지었다.


적이 남기고 간 재산인 적산을 유산으로 여기는 이유는 서양 건축 덕심 때문일까, 아니면 문화유산적 사명 때문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오늘도 나는 사라진 근대 건축의 흔적을 찾아 나서고 있다.

https://brunch.co.kr/@amantedeparis/35


<집구석들>을 읽은 오늘의 나는 어떨까? 건축유산의 원형을 어떻게 복원해야 하는가, 건축유산의 원형은 어떻게 복원되었는가, 건축 유산에서의 원형을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어떤 시점에서 건축을 복원해야 할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오늘도 나는 사라진 원형의 흔적을 좇아 19세기 파리의 어느 거리를 헤매고 있다.



Edouard Manet, Emile Zola, 1868, Musée de l'Or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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