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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Apr 16. 2022

근대 건축 덕후가 몰랐던 근대 건축 이야기

<영원한 유산> 속 벽수산장

서양 건축 덕후는 한국의 서양 건축을 상징하는 근대 건축 덕후이기도 하다. 그리고 한국의 서양식 근대 건축을 말할 때는 필연적으로 일제 강점기 시대, 즉 식민지 건축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한국 근대 건축에 대한 덕심은 석사 논문 주제의 한 꼭지를 일제 강점기 시대 근대 건축으로 잡게끔 만들었는데 식민지 시대의 건축도 문화유산적 관점으로 보존했으면 좋겠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선 언젠가 또 글을 쓸 기회가 있겠지만, 어쨌든 근대 건축 중에서도 특히나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사라진 건물에 대한 이야기이다(이 성향은 파리의 사라진 건축에 대해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 번 사라지면 원형은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아마도 이것저것 검색하던 중이었을 것이다. <사라진 근대건축>이라는 신간이 나왔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다. '사라진' '근대건축'이라니. 내가 좋아하는 요소들이 두 개나 들어가 있잖아. 근대건축에 대한 자료가 없어 늘 갈망하던 차에 발견한 보물이었다. 꼭 읽어야 할 책 리스트에 추가해놓은 다음, 아마도 비슷한 도서 추천 알고리즘에 <영원한 유산>이라는 책이 떴던 것 같다. 표지의 서양식 건물이 우선 나의 눈길을 끌었다. '사라진 근대건축'처럼 건축 역사책인 줄 알았는데, 사라진 근대 건축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었다.


<영원한 유산>은 작가의 오래된 앨범 속 사진 한 장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작가와 할머니가 함께 찍힌 사진 속 낯선 건물, 유럽식 뾰족탑과 흰 톱니 모양 테두리를 두른 창문이 인상적인, 크고 아름다운 근대 건축물, 그러나 지금은 사라진 그 건물에 대한 호기심으로부터. 그 건물은 악명 높은 친일파 윤덕영이 지은 것으로 그의 아호를 따 '벽수산장'이라 불렸던 곳이다.


나름 (얼마 되지 않은) (서울의) 서양식 근대 건축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벽수산장'은 처음 보는 건물이었다.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잊히고 사라지는 것이 우주의 순리라고 하지만 이 건물의 운명에는 어딘가 유난한 데가 있었다. 돈의문도 바미안 석불도 흔적 없이 사라졌지만 벽수산장처럼 기억조차 절멸에 이르지는 않았다. 벽수산장의 잊힘에는 금기나 처벌에 가까운 어떤 기운이 있었다.


어쩌면 이런 금기와 처벌 때문에 기억에서 사라진 '벽수산장'을 마주할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낯섦도 잠시, 나는 이 건물에 빠져들었다. 악명 높은 친일파가 지었다는 배경도, 건물을 연모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았다. 높다란 언덕에 자리 잡은 서양식 주택은 인천에서 그리워했던, 지금은 그 부지가 자유공원이 된 존스턴 별장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1950년 경 종로구 일대 벽수산장의 사진. 출처 : 서울 육백년


 

언덕 위의 존스턴 별장. 지금은 자유공원이 되었다. 출처 : 인천개항박물관



높은 언덕 위에 홀로 자리 잡은 서양식 주택. 이에 대한 유난한 그리움은 아마도 어렸을 때 읽었던 팬픽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인천 근대 건축에 관한 글을 쓸 때 말하려고 했는데ㅠ). 내가 좋아했던 아이돌은 1세대 아이돌로 팬픽은 그들이 탄생시킨 문화였다. 탄탄한 내용의 팬픽은 국내 최초로 책으로 정식 출간될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팬픽은 버려진 서양식 선교사 주택을 배경으로, 조선에 선교사가 들어와서 서양식 주택이 지어지던 때와 현재가 교차적으로 일어나는 타임슬립물이었다. 블로그는커녕 워드처럼 정갈하게 나열되지 않은 txt 파일을 눈 빠지게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소설 속에서 배경이 된 선교사 주택이 저렇게 언덕 위에 홀로 서 있었는데, 팬픽을 열심히 읽어서 서양 근대 건축을 좋아하게 된 걸까, 아니면 서양 근대 건축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 팬픽이 유독 기억에 남았던 걸까. 왠지 후자인 것 같다.





이제야 책의 내용으로.. 배경은 1966년, '벽수산장'이 해방 후 유센 산하 한국통일부흥위원단(UN CoUN Commission for the Unification and Rehabilitation of Korea, UNCURK), 즉 언커크 사무실로 쓰였던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한다. 여기에 작가의 상상력이 버무려져 소설 속에 새로운 인물들이 재탄생하였다. 주인공은 언커크 호주 대표 통역으로 일하는 이해동과 '벽수산장'을 지은 윤덕영의 막내딸 윤원섭. 윤원섭은 실제 윤덕영의 자손이 아니라고 한다.


작가가 8년간 공들여 자료를 찾아 완성한 만큼 사라진 건축물이 눈앞에서 재생되는 생생함이야 건축 덕후를 설레게 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지만, 무엇보다 내 마음에 와닿은 건 언커크 호주 대표로 상징되는 국제정치와 친일파의 자손, 그리고 독립운동가의 자손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각기 다른 일제 강점기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언커크 호주 대표 애커넌은 이렇게 말했다.


[...] 윤자작의 일족이 일본 지배 시절의 행적으로 비난받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지금의 대한민국과 그때의 조선은 다른 세상 아닌가? 나는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의 형편은 그때의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네
<영원한 유산> 97쪽


일제 강점기는 우리에게, 아니 해동에게는 잊히지 않은 치욕적인 역사이지만 우리 중 누군가에겐 영광스러웠던 과거였으며 또 타인에게는 외교적, 정치적 도구일 뿐이었다. 책 소개에서는 이 점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이해동에게는 적산(敵産)이며 윤원섭에게는 유산(遺産)인 저택 벽수산장이 그 모든 것을 굽어보는 가운데, 상반된 정신적 유산을 물려받은 두 인물의 전혀 다른 삶의 행보가 박진감 넘치게 그려진다.





<사라진 근대 건축>의 저자는 네덜란드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 유학 시절 수업 시간에 조선총독부가 '과거 청산'의 이름으로 철거되었던 내용을 발표했다고 한다. 하지만 기존의 오래된 도시 풍경을 유지하고 보존하는 데 익숙한 유럽인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과거 청산'이라는 철거의 명분에 더욱 공감하기 힘들어했던 이유는 유럽인이 피지배국이 아닌 지배국의 시선으로 그 상황을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저자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철거의 배경이 된 '반일감정'의 기원과 정도를 설명하다 보니 '식민역사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근대건축들이 보존될 여지가 없이 대부분 철거되어 사라졌다'라는 리서치 결론이 객관적인 시각에서 인과성이 부족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그로부터 한국사회에 전달할 메시지의 방향을 선명하게 보아 <사라진 근대 건축> 책을 썼다는 것이다.


이 대목을 내가 정확하게 캡처한 이유는 다름 아닌 내 논문 주제가 바로 이런 반일감정 같은 이데올로기와 건축유산의 파괴였기 때문이다. 나 역시도 프랑스에서 이 주제로 수업 시간에 발표도 했고 논문 발표도 했지만, 프랑스인들도 잘 이해하지 못했고 관련하여 여러 질문을 퍼부었다. 하지만 별 고민 없이, (핑계를 대자면) 더군다나 빨리 논문을 써야 했던 내 입장에서는 객관적으로 판단할 시간이 없었다. 여전히 석사 논문은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었는데, 졸업한 지 4년이 지나 우연히 읽은 책의 한 귀퉁이에서 급하게 마무리했던 석사에 대한 아쉬움 주재원을 끝내 한국에 돌아가는 선배가 명함을 주면서까지 논문이 완성되면 꼭 보내달라고 했음에도 차마 보낼 수 없었던 졸작에 대한 부끄러움을 마주치게 된 것이었다. 물론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문화유산적 관점으로 철거하지 말고 보존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었지만. <사라진 근대 건축>의 작가가 새롭게 찾은 방향처럼.





적이 남기고 간 재산인 적산, 그리고 가족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인 유산, 이 두 상반된 시선에 지배국인 유럽인과 피지배국인 한국의 차이가 오버랩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근대 건축 보존이라는 화두로 다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예전보다는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존폐위기에 놓은 일제 강점기의 건물을 보존해야 할까, 아니면 철거해야 할까. 나에게는 당연히 '유산'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적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적산 가옥'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 이미 여러 개가 있다. 내가 그들을 '유산'으로 여기는 이유는 단지 서양 건축 덕심 때문일까, 아니면 부정적 역사도 역사의 한 장면이기 때문에 보존하여 후대에게 남겨야 한다는 문화유산적 사명 때문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서 오늘도 나는 사라진 근대 건축의 흔적을 찾아 나서고 있다.



P.S. 1

책을 다 읽기도 전에 감상이 날아갈까 봐 글을 썼는데 다 읽고 난 뒤에 여운이 더 크게 남는다. 참고문헌 사냥꾼과도 같은 삶을 살고 있기에 처음에는 소설이라 조금 실망했는데 8년 동안 공들여 조사한 작가의 집념이 고스란히 글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오히려 나처럼 재미없는 산문보다는 흥미진진한 역사 소설이 근대 건축 보존을 sensibiliser 하는 데 더욱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여기서 두 가지를 돌아보게 되었다. 좋게 말하면 신중하지만 융통성이 없는 원형에 대한 집착,  나에게 없어 내가 늘 동경하는 창작력...


P.S. 2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 글로 풀어내지 않으면 아이디어는 금방 날아가버린다. 그랬던 적이 너무 많아서 이번에는 책을 다 읽기도 전에 글을 남기고 싶었다. <영원한 유산>의 작가도 비슷한 말을 했다. 물론 자식을 낳는 것과 같은 소설 창작과 블로그 글쓰기는 달라도 한참 다르지만... 아무튼 나도 이렇게 아름답게 글을 쓰고 싶다..


출처 http://www.yes24.com/Product/Goods/96273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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