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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smine Aug 07. 2022

파리에 가고 싶을 땐, 이곳에 가보세요 02

19세기의 파리와 21세기의 대한민국, 150년을 뛰어넘는 보편적 진리

1편 보기 : 파리에 가고 싶을 땐, 이곳에 가보세요 01 ↴ ↴ ↴

https://brunch.co.kr/@amantedeparis/42



아무튼 우연찮게 한국의 백화점에서 파리를 마주치고 난 후, 오랜만에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을 꺼내 들었다. 한 번 읽었던 책이나 한 번 봤던 영화나 드라마는 거의 안 보는 타입이지만, 백화점에서 파리를 겪은(?) 기념이었달까 오래간만에 읽고 싶어 졌던 것이다(이제는 원서 말고 번역본으로...!). 처음 읽은 지 벌써 10년이 되어서 그때의 감상은 기억이 잘 안 나지만 - 기억은 안 나도 강렬한 인상이 남았기 때문에 책도 사고 어플도 받았겠지...? - 분명한 점은 지금, 그때와는 또 다른 충격을 받았다는 것.


갓 졸업한 문학도로서 호소하던 인문학, 특히 문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 - 곧 문학 전공자인 내가 귀사에 쓸모 있는 인재인 이유... - 는 내가 몰랐던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하여 삶을 여러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를 통해 다양한 해결책을 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취업을 위해 약간 고군분투하던 그때는 문학의 존재 이유를 생존과 맞춰 어필했어야 했는데, 물론 예전에 고백한 대로 이런 인문학의 의미가 진짜로 마음에 와닿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난생처음으로 인문학의 중요성을 깨닫고 인문학으로 위로받았듯,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으로 진정한 문학의 의미를 드디어 깨달을 수 있었다.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 ↴ ↴

https://brunch.co.kr/@amantedeparis/27




1편에서 말한 대로 세계 최초 백화점인 봉 마르쉐를 설립한 부시코 부부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판매 시스템을 도입했다. 백화점이 생기기 전, 프랑스에서는 소수의 단골들만을 상대로 한 품목을 비싼 값을 불러 흥정을 거쳐 판매하는 가게(부티크 boutique)가 일상적이었다. 정해진 가격이란 없었고 주인이 부르는 가격이 값이었다. 따라서 상인의 덕목은 많이 파는 것이 아닌, '비싸게' 파는 데에 있었다. 또 한 번 가게에 들어가면 빈 손으로 나갈 수가 없는 구조였다. 물건을 사기 위해 한 번 가게에 들어가는 것도 큰 마음을 먹고 들어가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백화점의 등장으로, 이 모든 전통적인 방식이 뒤흔들렸다.


쇼윈도를 스쳐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가격을 알 수 있었고, 각 상점들은 앞다투어 가격을 낮추면서 아주 적은 수익에도 만족했다. 속임수를 쓰거나, 제품 원가의 두 배를 받고 파는 식으로 단기간에 횡재를 노리는 상업 방식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매 아이템마다 일정한 비율로 고르게 이윤을 창출하는 꾸준한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1권, 131쪽, 시공사


아래층의 중앙 갤러리에서, 특별 세일 행사를 하는 정문 입구를 지나면 넥타이, 장갑, 실크를 파는 매장이 차례로 나왔다. 몽시니 갤러리에는 리넨 매장과 면직물 매장이, 미쇼디에르 갤러리에는 바느질 도구와 편물, 나사와 모직물 매장이 포진하고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면, 여성 기성복 매장과 란제리 매장, 숄 매장, 레이스 매장과 그 밖의 새로운 매장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편, 침구류와 카펫, 실내장식용 천들을 파는 매장과 부피가 크고 다루기 힘든 상품들은 3층으로 올려 보냈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2권, 8~9쪽, 시공사


이제 파리 시민들은 백화점, 이 한 장소에서 전 세계에서 온 모든 제품을 다 살 수가 있었다. ©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고객들은  물건을 사지 않아도 자유롭게 백화점에 출입할 수 있었고, 흥정할 필요 없이 가격표를 보고 자유롭게 쇼핑할 수 있었다. 또한 한 품목을 파는 전문적이고 전통적인 가게는 백화점 한 곳에만 가면 이름 그대로 '백화百貨', 즉 백 가지(수많은) 재화를 다 살 수 있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철도의 개발로 프랑스와 유럽에 카탈로그를 배포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그 덕분에 통신판매를 개시할 수 있었다. 판매의 변화는 고객의 편의에만 효과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백화점은 직원과 이익을 공유하고 직원의 복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통신 판매 부서는 백화점의 3층에 여러 개의 방을 차지하고 있었고, 지방과 외국에서 오는 주문들이 모두 그곳으로 모여들였다. 무레는 매일 아침 우편물을 확인하러 그곳에 들렀다. 그들은 2년 전부터 점점 더 많은 수의 편지를 받았다. 그리하여 처음에는 열 명의 직원으로 시작했던 부서는 이제는 30명이 넘는 인력을 필요로 했다. 직원들은 테이블 양끝에 각각 자리를 잡고 편지를 개봉하는 것과 읽는 것을 나누어 하면서, 분류한 편지들에 각기 번호를 붙여 칸막이가 된 해당 분류함에 넣었다. 그리고 다양한 매장으로 전달된 편지에 따라 매장에서 올려 보낸 주문 상품들을 해당 칸막이에 넣어두었다. 그런 다음에는 다시 확인 절차를 거쳤고, 그곳과 붙어 있는 옆방에서는 한 무리의 일꾼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못질을 하고 끈으로 묶어 포장하는 일을 반복했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1권, 75쪽, 시공사


우편 주문을 분류하는 봉 마르쉐 직원들 ©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카탈로그에는 천 샘플이 붙어 있어 고객이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카탈로그에 천을 붙이는 작업을 하는 직원들 ©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그리하여 이제부터는 모든 제품의 판매에 대해 해당 판매원들에게 일정한 퍼센티지에 해당하는 수당과 그에 따른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했다. 그들이 판매하는 자투리 천이나 작은 물건 하나에도 그 원칙을 예외 없이 적용시키기로 했던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백화점에 대변혁을 일으킴으로써 직원들 사이의 생존을 위한 투쟁을 야기하여 주인들의 배를 불리는 데 일조했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1권, 65쪽, 시공사


그리하여 대량 해고는 비수기에 휴가를 부여하는 시스템으로 대체되었고, 마침내는 강제된 실업 상태에서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주거나 퇴직 시에는 연금을 지불하는 공제조합이 설립되기에 이르렀다. 이 모든 것은 20세기의 거대한 노동조합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었다. [...] 그것은 백화점 직원들로 이루어진 직장 오케스트라를 설립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석달 후, 롬므는 120명의 회원을 이끄는 책임자로 임명됨으로써 평생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그리고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의 음악을 고객들과 전 세계에 소개하기 위한 연주회와 무도회가 백화점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그러자 신문마다 앞다투어 관련 기사를 실었고, 이러한 일련의 개혁에 반감을 품었던 부르동클도 그 엄청난 광고 효과 앞에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 또한 직원들을 위한 오락실을 꾸며 두 개의 당구대와 트릭트 테이블과 장기판을 설치했다. 저녁에는 백화점 내에서 영어와 독일어, 문법, 산술과 지리학 수업을 받을 수 있게 하고, 승마와 펜싱 강좌도 개설했다. 또한 직원들을 위한 도서관을 만들어 1만 여권의 책들을 비치해 놓았다. 직원들이 언제라도 무료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의사를 상주시켰으며 목욕탕, 뷔페식당, 미용실도 갖춰 놓았다. 이제 모든 삶이 그곳에 한데 모여 있었다. 직원들은 이제 백화점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공부, 음식, 잠자리 그리고 옷까지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2권, 208~209쪽, 시공사
고객 편의 시설 중 하나였던 독서실. 만남의 장소이자 쉬는 공간이었다. ©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여성 직원용 식당 ©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남성 직원이 씻는 공간 © 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앉은자리에서 휴대폰으로, 터치 한 방으로 물건을 구매하는 21세기 사람들에게 졸라의 소설 속 내용들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백화점이 세워지고 소설이 쓰인 시대는 19세기 중반에서 후반으로 지금보다 무려 150년 전의 일이다. 오늘날 일어나는 당연한 일들의 대부분은(어쩌면 거의 '모두'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것이 당연하지 않았던 시절 한 사람의 작은 발견, 한 사람의 작은 아이디에서부터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누리는 풍요는 실은 누군가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뜻이다. 비록 그것이 그 사람의 희생이나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지라도.


아무튼 나는 여기에서 나는 문학의 위대함과 소위 말하는 고전의 가치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의의는 단순히 150년 전 백화점의 상업 시스템과 현대의 것이 유사하다는 놀라움에 그치지 않는다. 이 안에 들어있는 건, 즉 졸라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질이었다. 



그리하여 백화점은 앞다투어 경쟁적으로 여성의 마음을 빼앗고자 애썼다. 화려한 쇼윈도로 여성을 현혹시킨 다음, 사시사철 이어지는 바겐세일의 덫으로 그녀를 유혹했다. 그러면서 여성의 육체 속에 새로운 욕망을 주입시켰다. 그 모든 것은 여성이 필연적으로 굴복할 수밖에 없는 거대한 유혹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알뜰한 주부로서 구매를 시작했다가 점차 허영심이 발동하면서 마침내 유혹에 홀딱 넘어가고 마는 식이었다. 백화점은 엄청난 물량의 판매를 통해 호화스러움을 대중화시키고 무시무시한 세력으로 소비를 촉진했다. 그럼으로써 가정을 황폐화시키고, 날로 더 많은 대가를 치르게 하는 유행의 광기에 여성이 적극적으로 동참하게끔 부추겼다. 그들은 여성의 약점 때문에 더욱더 그녀를 사랑하고 친절과 배려를 남발했다. 사랑에 빠진 여왕처럼 그곳에서 군림하는 여성은 그들에게 이용당하면서, 변덕을 부릴 때마다 자신의 피로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1권, 65쪽, 시공사


백화점의 주 타깃이 여성이었기 때문에 소설에서는 여성을 언급했을 뿐이지 이는 여성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욕망을 부추김 당하고 무엇으로든 욕구, 다시 말해 메워지지 않는 공허함을 충족해야 하는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마음을 뺏고자 하는 유혹은 여성과 남성을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 더군다나 이제는 바겐세일의 모양만이 아닌, 우리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무궁무진한 모습으로 변장하여. 1800년대, 공백과 혼돈을 채우기 위해 소비라는 유혹에 빠져 피의 대가를 지불했던 비극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와 한국이라는 물리적 거리에 150년이라는 시간까지 뛰어넘어 다른 듯 닮은 보편적 진리를 보여주는 백화점은 그 어느 곳보다 파리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P.S.

소비를 즐겨하는 편은 아니지만, 친구가 어떤 물건을 사고 싶어 할 때 그 제품을 사도록 만드는 게 좋아서 한때는 소비자학을 공부하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 브랜드화와 소비 생활의 끝판왕인 백화점에 지원했었다. 소비를 좋아하진 않아도 소비로 욕구를 충족하고, 소비로 나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본성이 내 안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이 온전히 채워진 순간부터 '소비의 신전'이자 '현대 상업의 대성당'은 더 이상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어졌다


졸라의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은 2세기를 초월하여 반복되는 인간의 본성을 그리고 있다. 바로 이것이 인문학과 문학의 의미라고 할 수 있는데, '어느 인문학도의 고백'처럼 인문학만으로는 인간이 안고 있는 근본적, 더 나아가 존재론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무엇으로 빈 영혼을 채울 수 있을까? 에밀 졸라가 날카롭게 분석한 현상의 원인을 역발상 해보면, 의외로 쉽게 답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가 창조해낸 것들은 새로운 종교를 일으켰다. 그의 백화점은 흔들리는 믿음으로 인해 신도들이 점차 빠져나간 교회 대신, 비어 있는 그들의 영혼 속으로 파고들었다. 여인들은 공허한 시간을 채우기 위해 그의 백화점을 찾았다. 그리하여 예전에는 예배당에서 보냈던 불안하고 두려운 시간들을 그곳에서 죽여나갔다. 백화점은 불안정한 열정의 유용한 배출구이자, 신과 남편이 지속적으로 싸워야 하는 곳이며, 아름다움의 신이 존재하는 내세에 대한 믿음과 육체에 대한 숭배가 끊임없이 다시 생겨나는 곳이었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2권, 323쪽, 시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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