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이었을 거다. 통근 버스에 몸을 싣고 사무실에 도착할 때까지만이라도 조금만 더 자고 싶어 눈을 감았다. 그러다 문득 라디오에서 나오는 뉴스가 정신이 또렷이 돌아왔다. 6월에 있을 지방직 공무원 시험 접수 때문에 실업률이 역대 최고를 찍었다는 뉴스였다. 언젠가 나도 그중에 한 명이었던 시절. 그때의 기억과 지금의 나 그리고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공무원 시험에 몰리는 현실까지. 왠지 모를 씁쓸함에 그날 아침이 그렇게 상쾌하지만은 않았다.
23살. 5월의 어느 봄날이었다. 대학교 4학년 1학기가 끝나갈 무렵, 봄이 온 학교 정원에선 졸업 앨범 사진을 찍는 어여쁜 청춘들이 가득했다. 잠깐 멈춰서 그들을 바라보다 한숨을 쉬곤 고시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졸업반이 었던 나에게도 졸업 사진을 찍으라는 학과 사무실의 공지가 있었다. 찍으면 그만인 것이었지만 그 소식에 나는 하루 종일 고민에 빠졌다. 하필이면 졸업 사진 찍는 날이 지방직 9급 공무원 시험 일주일을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이었다.
21살부터 시작된 공시생 생활. 고등학생 때 수능을 준비하던 수험생 마냥 새벽 5시에 일어나 엄마가 차려주시는 따뜻한 밥을 든든히 먹고, 캠퍼스 안에 있는 고시실로 향했다. (당시 행정학과였던 나는 과에서 공무원 시험 등을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었고 고시실은 독서실 공간 비슷한 곳이다.) 캠퍼스의 하루가 시작되기 전까지 동영상 강의를 들었고, 9시부터는 학과 수업에 매진했다. 공강 시간이면 다시 고시실로 돌아와 자투리 시간을 버리지 않고 시험공부에 투자했다. 오후 5시나 되어 캠퍼스의 일과가 끝나면 학식에서 대충 저녁을 때우곤 밤이 늦도록 고시실에 남아 공무원 시험 수험서를 넘겼고, 11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몸을 싣었다.
해가 뜨기 전에 집을 나서고, 달을 보며 집으로 돌아갔다. 친구들은 농활이며 봉사활동이며 교환학생이며 영어공부며 자격증 공부며 인턴이며 저마다의 커리어를 쌓고 있는데, 그런 것들이 전혀 필요 없는 시험을 준비하는 나를 보며, 이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나는 취업시장에 나가서 그들과 경쟁할 수 없겠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국가직 7급, 9급, 지방직 7급, 9급, 군무원까지 일 년에 칠 수 있는 모든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지만 결과는 평균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남들은 한 문제 차이로 아깝게 떨어진다고 했는데, 나는 아무리 해도 평균 근처에 가지 못했다. 그렇게 2년 하고도 6개월의 시간이 흘러 나는 대학교 4학년 졸업반이 되었고, 그해 마지막 시험이었던 지방직 9급 시험을 앞두게 되었다. 마음이 참 복잡했다.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간 아빠 덕에 생활비는 끊겼고, 그 덕에 엄마는 식당에 나가서 그릇을 닦으며 생활비를 벌고 있었고, 그나마 학비는 열심히 공부한 덕에 장학금으로 해결하는 상황이었지만, 내가 하루라도 빨리 취직을 하지 않으면 엄마와 내가 당장 살아가는데 문제가 되는 그런 상황이었다.
이런 형편에서 휴학은 더욱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었지만 계속되는 시험 낙방에 자신감은 바닥을 쳤고, 이번 시험에서 실패하면 휴학을 하고, 공무원 시험을 접고 일반 회사 취직으로 방향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나는 차마 졸업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예쁜 옷을 입고 어쩌면 캠퍼스 생활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일지도 모를 순간을 담는 친구들의 모습과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비참한 내 모습을 바라보며, 그래도 내 인생에 이 순간을 추억하며 그땐 그랬지라고 이야기할 날이 올 것이라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시험. 지방직 9급 시험을 쳤고, 그 해 여름 최종 합격 문자를 받고 엄마와 부둥켜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2년 6개월의 수험생활이 끝나고, 23살. 학교 졸업 전 나의 공직 생활이 시작되었다.
연수원에도 그리고 내가 일하게 된 구청에서도 나에겐 최연소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녔다. 학교에서는 학과 건물 앞에 내 이름 석자가 박힌 커다란 현수막까지 걸어주었고, 엄마에겐 자랑스러운 딸이 되었다. 합격 초창기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것 마냥 기세 등등했지만, 앞으로 공직에서 만들어갈 나의 시간들이 기대되고 승진 욕에 불타올랐지만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 모든 것이 나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툭하면 터지는 공무원 관련 뉴스 기사에 수없이 달리는 댓글들을 보면서 나는 기사와 관련된 잘못을 한건 없지만 그 집단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죄인이 되는 기분이었고, 누군가에게 나의 직업을 말하는 것이 극도로 꺼려지기도 했다. 입사 초반에는 자기 계발에 불타올랐지만 이내 그 모든 것이 쓸모없다는 것을 알고는 하루하루 도태되어가는 내가 스스로도 보기 싫었고, 너무나도 폐쇄적이고 정치와 소문이 판치는 조직문화 속에서 특히나 정년이 보장된 만큼 평생을 보고 일할 사람들과 함께 나이 먹어간다는 것은 굉장한 눈치와 처세술을 요구하는 끔찍한 것이었다. 그리고 일을 하면서도 가끔씩 '이러니 욕을 먹지, 이게 탁상 행정이지'라는 순간을 여러 번 마주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그 일을 해야만 할 때는 알 수 없는 괴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9급 땐 동주민센터에서 등초본 인감, 주민등록 업무를 보며 내가 이 짓 하려고 내 청춘을 바쳤냐며 후회를 했고, 큰 기대를 가지고 처음 구청에 입성해서 맡게 된 업무가 하필이면 복지직들도 기피하는 복지 업무를 행정직인 내가 맡게 되어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고강도 민원을 마주하며 하루에도 몇 번씩 사표를 던지고 싶다는 욕구가 솟았지만, 생계형 직장이었기에 그럴 수 없는 현실에 병원에서 타 온 약으로 연명하기도 했다. 8급 땐 단위 업무 한번 못해보고, 서무 회계만 주구 장창하며 동주민센와 구청을 드나들다가 20대 중반이 되었고, 스물아홉에 7급 승진을 하고 내 인생을 돌아보니 조직에서 순식간에 날아가버린 내 20대 청춘이 억울해서 서른에 휴직을 하고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루러 떠나보기도 했고, 이제는 출간을 앞둔 예비 작가이자, 언제 그날이 올지 까마득하지만 다음 승진 순번을 받는 10년 차 공무원이 되었다.
아직도 내가 왜 공무원이 되고 싶어 했는지는 정확히 답을 내리지 못한다. 다만 엄마가 늘 공무원이 되면 안정적으로 산다고 어릴 때부터 나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이야기하셨기에 무의식 중에 그렇게 돼야만 한다고 여겨온 것 같다. 그랬기에 전공도 행정학을 선택했고(지금 생각하면 공무원 시험이랑 아무 관계도 없는 전공)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면서 당장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공시생이 되었고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다. 어찌 보면 딱히 잘하는 것도 없는 내가 밥이라도 벌어먹을 직장이니 감사하기도 하지만, 분명 보람도 있었지만, 후회가 더 많은 지난 시간들. 계속 후회할 바에 과감히 접고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분야로 나가볼까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그것이 절대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공무원 시험공부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 시험에 한번 발을 들인 이상 합격이 아니면 답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취업 시장에서 경쟁할 스펙이 없으니 이 시험 안에서 끝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10년이라는 세월을 지내고 보니, 그냥 그 시험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내 인생은 공무원으로 끝을 봐야 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취업난에 그래도 안정적인 직장이라는 점도 있겠지만 결정적인 것은 그때 없던 경쟁력이 10년을 일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었다. 남들은 퇴사하고 이직을 준비한다고 하지만, 남들은 10년이면 정말 큰 경력이라고 하지만 공무원은 10년을 해도 경력이라 내세울 게 없고, 이력서를 가득 채울 만한 쓸거리가 없다. 물론 행정고시 출신, 국가직 공무원, 지방직 공무원, 직렬별로 하는 일이 정말 정말 다르고, 내가 속한 집단인 지방 행정직 공무원도 지자체마다 구청마다 시스템이 다르기에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하고 내린 결론은 그렇다. 오죽하면 이민 상담을 갔더니, 가뜩이나 외국에서 한국 경력 인정이 어려운데, 지방 말단 공무원 경력이 전부라면 그냥 한인 식당 가서 김밥이나 말아라는 말을 들었을까.
그래도 하나 다행인 것은 10년 차에 접어들고 보니 이제야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왜 해야 하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한다는 것과 가끔 일이 재미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는 점이다. 그리고 내가 과연 앞으로 또 10년을 이 조직에서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선배 공무원들처럼 나도 정년까지 채우고 퇴직을 하게 될지도 궁금한 요즘. 인생에 있어 직업이 가지는 의미가 대단히 크다고 생각하기에, 적성에도 맞아야 하고 내가 보람도 느껴야 하고 직업이 주는 만족감이 중요하기에 철밥통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직업의 소중한 가치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아가는 중이다.
내가 입사하던 당시 16명의 동기가 있었는데 한 명은 두 달 만에 사표를 던졌고 한 명은 3년 차에 국가직으로 전출을 갔고, 세명은 상위 기관인 시청으로 전출을 갔다. 당시 그들은 업무에서 오는 회의감을 견딜 수가 없다며, 말단 조직보다는 그래도 상급기관이 낫겠다 하며 떠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은 조직이 보장하는 안정감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가끔은 진작에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난 그들이 현명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쨌든 이곳에서 나의 시간은 오늘도 흘러가고 있다. 앞으로 이 매거진에는 지방 행정직 말단 공무원의 지난 시간을 연재해보려 한다. 혹시나 나와 같은 길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이 될까 싶어서.
오늘도 이번 주 시험을 위해 청춘을 불태우고 있을 공시생 여러분들. 힘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