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행복할 수 없을까?

데자뷔, 어쩌면 우리는 다시 또 사는 것일지도

by 아마르기

30년 전 나는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생각했다. 나는 살아야 할 가치가 없다고. 그 이유는 간명했다. 내가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성적 때문이었다. 내가 세상에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까지 생각했다.


그러던 나는 소위 말하는 '문 닫고 대학 들어가기'에 성공했다. 내가 원했던 그 대학에서 가장 입시 성적이 낮은 학과에 합격했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다 가진 사람 같았다. 내가 원하던 그 대학 간판을 내 손안에 넣었으니.


나는 그 대학의 명예를 많이도 누렸다. 하지만 나는 벌거벗은 왕이었다. 나보다는 그 대학 간판이 더 크고 화려했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안과 밖의 괴리감이 커졌다.


그리고 어느 날 비어 있는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나를 수식하던 것들을 제했을 때 보이는 나의 본질을 오랫동안 탐구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것들'이 나를 설명해 주지만 '그것'이 나는 아님을. 나는 '그것들'이 없어도 되는 사람이지만 '그것'은 나와 세상을 연결하는 고리쯤은 된다는 것을.


30년이 지난 지금 나는, 또 다른 나를 만나고 있다. 나에게서 나온 ''. 첫째 딸 하림(가명)이다. 하림이는 딱 열여덟 살 고등학교 3학년이다. 이 아이는 내가 수능을 봤던 바로 그날, 11월 13일에 수능을 치르게 된다. 기분이 묘하다.


그동안 하림이의 고등학교 생활을 지켜보았다. 그 시절 ‘SKY’가 최고의 목표였다면, 요즘은 의치한약수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하림이 또한 공부 좀 하는 무리에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 길을 꿈꾸며 준비했다. 내신, 생기부, 수능이라는 그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고된 학교 생활이었다.


고1, 고2, 고3.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가 달라졌다. 하림이의 눈에서 나던 반짝거리는 빛이 점점 희미해졌다. 환하게 미소 짓던 얼굴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곧게 세운 당차 보이던 자세도 어느새 구부정하게 변해 있었다. 머리카락 쓸어 높이 묶었던 발랄해 보이던 포니테일도 이제 풀어헤쳐서 얼굴을 가린다. 밝은 계열의 옷들은 옷장 안으로 밀리고 검은 무채색 옷만 골라 입는다.


"왜 사느냐고, 죽고 싶다고."

한 날 아이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30년 전 나와 조우한 기분이었다.


원하는 대학만 가면 소원이 없겠다던 나는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첫째 딸 하림이의 대학입시 여정을 통과하고 있다. 원하는 대학을 포기해야 하는 성적 앞에서 절망한 딸에게 대학이 전부가 아니라는 이 엄마의 말은 사치스럽고 무책임하다.


할 수만 있다면 과거로 돌아가 나의 대학 졸업장을 아이의 것과 바꿔주고 싶을 정도이다. 나에게 대학보다 소중한, 무엇보다 소중한 아이가 애태우며 학교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아리다.


아이는 때때로 신호를 보내왔다.

"힘들다고. 이 과정이 버겁다고."


그럼에도 나는 내가 버티고 달려왔듯이 아이가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랐고 여전히 그 바람을 가지고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포기하거나 다른 길을 택하기에는 두렵기에 하던 대로, 가던 길로 가고 있는 중이다.


아이가 했던 말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아이의 말을 곱씹어보며 그 마음으로 들어가보고 싶다. 엄마가 여기에서 듣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어쩌면 나는 글을 써 내려가면서 '나'를 이해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바라보면 자꾸 과거의 내가 보인다. 왠지 모르게 나의 과거와 지금의 현재가 단단히 연결되어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나는 어떤 아이를 만나게 될까?


이 글의 끝에서 나는 어떤 나를 만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