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두색 BURBERRY 코트

소유의 기억

by 아마르기

90년대에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녔던 세대라면, 떡볶이 단추 코트의 유행을 대부분 기억할 것이다. TV에서 먼저 시작되었는지, 의류회사의 홍보 때문인지, 혹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유행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때는 겨울이면 누구나 떡볶이 코트를 입어야만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우리 집에는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물건들이 몇 가지 있다. 그중의 하나인 호두색 BURBERRY 코트가 내 손에 들리게 된 과정은 이렇다.


석사과정을 하고 있을 때 학빙여(학회를 빙자한 여행)를 뉴욕으로 간 적이 있었다. 출국 전, 엄마와 면세점 쇼핑을 했다. 엄마는 BURBERRY 매장 구석진 옷걸이에 걸려 있던 이 옷이 80만 원에서 50% 할인을 한다면서 기꺼이 사주셨다.


나는 동기들과 함께 출국장에서 한겨울 코트와 주류 등 면세품을 수령했다. 동기들의 표정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 받은 인상은 다들 그 부피에 놀란 눈치였다. 나는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또 한편으로는 비싼 옷을 가진 게 뿌듯했다. 유치한 마음이었다.


당시 우리 가족은 평범한 중산층이었다. 아빠는 월급쟁이 군인이었고, 살림은 늘 빠듯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엄마는 마이너스 통장으로 생활하셨다고 한다.


그런 엄마는 나에게 값비싼 옷을 사주고 싶으셨을까? 시집갈 나이가 된 딸의 가치를 명품으로 높여주고 싶으셨던 걸까? 아니면 그 시대의 엄마들이 흔히 그러했듯, “우리 딸도 이런 옷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마음이었을까.


이 코트의 쓸모는 옷의 재질이나 디자인, 보온에 있지 않았다. 단지, 명품 브랜드라는 이름만이 나에게 크게 각인되어 있다. 나는 이 코트를 입을 때마다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남의 옷을 입은 것 같고, 과하게 뽐내는 공작새가 된 듯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입지도 않을 이 옷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명품 수호라는 유치한 명분도 있겠지만 딸을 위한 그때 엄마가 품었던 마음을 아직 다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주말, 둘째 딸과 쇼핑을 하면서 문득 생각이 났다. 고등학교 졸업사진 촬영을 앞두고, 아이는 미쏘, H&M, 자라 등 중저가는 아니지만 대중적인 의류매장을 신중히 둘러보았다. 주말마다 벌써 네 번째 '아이쇼핑'이었다.


나는 아이에게 백화점 매장에도 가보자고 제안했다. "비싸잖아요."라고 아이가 불쑥 말을 내뱉었다. 그래도 가서 한번 둘러보고 괜찮은 옷이 있으면 사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이는 매장에 들어가서도 옷을 살펴보지 않았다. 그리곤 "어차피 사주지도 않을 거면서..." 하며 돌아섰다.


그날 나는 집에 돌아와 한참을 생각했다. 백화점에서 니트를 살 수 있는 여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와 우리 아이들 마음속에는 '백화점 브랜드의 벽'이 세워져 있다. 그 화려함과 가격에 주눅이 든다. 그곳은 우리에게 중립적인 공간이 아니다.


다시, BURBERRY 떡볶이 코트로 돌아와 생각해 본다. 어쩌면 엄마는 면세점, 백화점, 명품 브랜드들이 상징하던 높은 벽을 허물어주고 싶으셨을지도 모른다. 우리도 가끔은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지만 살아보니, 명품의 벽은 명품을 소유함으로써 허물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갖고자 할수록 그 명품의 가치는 우리를 비웃듯 더 높아만 진다, 마음속에서.


나는 소망이 생겼다. 누군가의 브랜드를 입은 사람이 아니라, 내가 '명품'이 되기를. 그리고 우리 아이도 명품을 소비하는 사람이 아닌, 스스로 명품의 가치를 품은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


자신을 명품처럼 대하는 순간, 세상의 어떤 브랜드도 더 이상 나를 빛나게 하지 못할 것이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