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과 작업

‘아이를 낳으니 어때?’라는 질문에 대하여

by 아마로네


20대에 회사에 입사해서 많은 워킹맘 선배들을 만났다. 그들은 만날때마다 수없이 교육과 학원 고민, 새로운 도우미를 구하는 어려움, 워킹맘이라는 이유만으로 죄인이 되는 학부모의 입장 같은 것들을 토로하다 나를 보고 ‘그래도 아이가 있어서 정말 행복해’라는 말을 재빨리 덧붙였다. 누가봐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 희생당하는 내 삶을 합리화해야 하는 정신승리로밖에 보이지 않아, 나는 결혼하고도 여러 해동안 딩크를 선포하며 살았다.


그러던 내가 어째서? 이 책의 정서경 작가처럼 남편과 함께 고양이를 키우면서였다. (이 얘기를 친한 사람 몇 명에게 했는데 황당해하길래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정서경 작가님이 같은 이야기를 하실 줄이야!) 사랑하는 사람과 작은 생명을 함께 돌보는 남다른 행복에 푹 빠져버린 나머지, 사람아이를 키우는 일은 차원이 다른 행복이지 않을까?하는 궁금증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 결과로 잔잔한 호수같던 내 인생은 롤러코스터같은 극심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버렸다. 아이가 없던 시절에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아찔한 달콤함과, 땅으로 꺼지고 싶게 아득한 절망감이 하루에도 수십번 찾아왔다.


오랫동안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한 만큼 많은 사람들이 ‘아이 낳으니 어때?‘라고 물어보는데, 보통은 질문자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대답하곤 한다. ‘내가 잠시 미쳤던 것 같아’, 혹은 ‘이렇게 귀여울 줄 몰랐어’라고. 가장 고민이 될 때는 갓 결혼한 여자 후배들이 물어볼 때인데, ’아이를 낳아서 참 행복하지만, 낳지 않았어도 행복했을 것 같아‘라고 애매한 대답을 하게 된다. 그 모든 말들이 사실이기도 하고, 아이를 낳아 달라진 나의 일상, 시야, 감정과 가치관을 짧은 말로 설명하기란 너무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서로 다른 작가님들의 다양한 심정이 다 내 마음이어서 스크랩을 하다하다 그만두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은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 아이를 키우는 일과 직업 모두에 제대로 임하지 못하는 것 같아 자괴감이 드는 나, 양육의 여러 방향과 책임감에 분열되는 나. 한편으로는 아이를 키우면서 모든 이들 안의 사랑받고 싶은 자아를 발견하며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나, 이 사회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의 의미에 대해 체감하게 된 나, 삶의 우선순위를 확실히 하고 작은 일들에 흔들리지 않게 된 나도 있다. 그 모든 ’엄마로서의 나‘가 이 책에 있어서 읽는 것만으로도 이해받는 기분, 외롭지 않은 기분이 든다.


작가님들의 글을 읽으면서 내 마음속의 여러 파편들이 활자로 정리되니, 그래도 아이와 함께하는 삶을 선택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정신승리만은 아닌 것 같다. 괜찮은 엄마의 길은 아직 요원하지만, 엄마가 된 덕에 조금 더 괜찮은 내가 되어가고 있고 되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진다는 점은 분명하니까 말이다. 내일부터는 조금 자신있게 후배들의 질문에 답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 책을 채워주신 모든 선배 ‘엄마’이자 ‘작업자‘들이 자신의 삶을 지키고, 또 그 삶을 글로 남겨 주셔서 새삼 감사하다.




“다만 어떤 순간에도 아이들이 있는 것이 행복했다. 아이들이 없던 삶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물론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도 행복했으리라는 것을 안다. 조금 다른 행복이었을 것이다. 조금 덜 고통스럽고 조금 덜 맹렬한 행복.”


“아이의 성취는 내가 축하할 일이고, 아이의 실패는 내가 위로할 일일 뿐이다. 아이의 성취와 실패를 나의 책임으로 내가 통제할 일로 생각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이런 것이다. 아이가 실패했을 때, 상처를 받았을 때, 아이를 품어주고 아이를 지켜주고 아이를 달래줄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없게 된다. 아이와 나 사이를 분리해야만 나는 아이가 의지할 수 있는 타인이 될 수 있다.”


“소위 독박육아의 고통이란 신체적 차원의 고됨이 아니라 이 모든 갈등과 어려움을 혼자 감내해야 한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아이를 돌보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쌓이고 아이라는 낯선 존재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 늘어날 때, 양육의 무게는 조금 가벼워지고 돌봄의 분배는 조금 더 정의로워질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레슨 인 케미스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