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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감한 망고 Apr 01. 2024

계속 해외에서 사셔야겠네

한국 촌놈의 인도 상륙 757일 차(2024.04.01)

어느 날인가는 그리 친하지 않은 H와 몇 마디를 나누다가 의도치 않게 그에게 큰 웃음을 안겼다. 인도살이 3년 차가 되었지만 아직 단 한 번도 한국에 간 적이 없다는 내 말에 이렇게 웃긴 사람은 처음이라는 듯 볼이 찢어지게 웃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기가 무안해 나도 같이 허허허 하고 웃다 보니 사실 꽤 재밌을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라 하면 대개는 한숨부터 푸욱 푸욱 쉬면서 앞으로 여기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마부터 짚는 것이 흔하디 흔한 레퍼토리 아니던가. 이 사람이 지금 그런 무시무시한 나라에서 꽉 채워 2년이 넘도록 한 번을 고국 땅을 안 밟았다고 하니 재미가 있을 수밖에.

아니, 한국 안 가고 싶어요? 한국 음식 먹고 싶지 않나? H는 웃을 만큼 웃은 뒤 눈을 크게 뜨고 나를 희귀 생물 관찰하듯 구석구석 쳐다봤다. 나는 마치 그 질문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기계적인 매너리즘으로 답을 시작했다. 인도에 사는 게 재밌어요. 가 보고 싶은 곳도 많고, 음식도 맛있고.

다 웃은 줄 알았던 H가 다시금 콸콸 폭포수처럼 웃음을 쏟아 낸다. 이 양반 대단한 양반이네. 완전 해외 체질인가 봐요. 계속 해외에서 사셔야겠네. 그리고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이런 타입은 한국에 돌아가면 심심해서 못 산다고. 해외를 돌던 사람들은 계속 해외만 돌더라고.


가끔씩 내가 인도를 선택한 것이 하늘이 맺어준 인연은 아니었을까 등골이 쭈뼛거린다. 오기 전부터 어서 가고 싶어 두근거렸던 나라였고, 오고 나서는 눈물 콧물 쏟으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나라가 되었다.

하루 걸러 하루씩 펼쳐지는 기상천외한 이벤트 속에서 어느덧 3년 차가 되었다. 여전히 사방에서 인도 살이를 한탄하는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나는 끈질긴 칭얼거림에 귀를 닫은 채 묵묵히 나만의 삶을 살고 있다.


올해는 조금 더 깊숙이 인도에 녹아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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