힌디어를 배우겠다고 말했을 때 주변 반응은 반반이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영어 하나도 어려운 제게는 꿈같은 일이군요. 힌디어라고요? 굳이 그럴 것까지 있나요. 여기서 평생 살 것도 아니라면 지금 배워 어느 세월에.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앞서 그럴듯한 명분 세우기를 좋아한다. 언어를 배우는 일도 마찬가지다. 힌디어를 배우겠노라 결심할 때에도 스스로를 납득시킬 만한 명분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발동했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인도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사용하는 언어니까 이곳에 사는 동안 큰 도움이 되겠지. 현지 사람들과 쉽게 친해질 수도 있을 거야. 어쩌면 이웃집에 초대받아 진짜 인도의 삶을 엿볼 수도 있을 테고. 먼 지방으로 여행이라도 간다고 생각해 봐. 영어가 안 통하는 릭샤 왈라와 어떻게 값을 흥정할 수 있겠어. 아니, 그렇게 멀리 갈 것도 없어. 당장 붙박이 옷장 문짝이라도 어긋나 보라지. 아파트 관리실에서 보내주는 목수 할아버지와 어떻게 소통할래.'
어째 꼽으면 꼽을수록 구구절절 절박해지는 모양새가 측은하기도 하도 추레하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결론은 하나다. 배우면 도움이 되니까. 일단 배워두면 이곳저곳 써먹을 일이 무궁무진하고, 눈 뜨고 코 베이는 일상에서 바보같이 속는 일이 아주 조금은 줄어들고, 어리바리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얼굴만 붉힐 일도 없을 것이다. 이래저래 힌디어 덕 좀 보겠다는 속셈으로 다섯 권의 책을 싸들고 인도로 건너왔다.
삶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한가하게 책장이나 들춰볼 만큼 몸이 편하지도 않았고 인도 사람들과 대단한 친분을 쌓고 싶을 만큼 우호적인 관계만 경험한 것도 아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지금 힌디어를 배우는 게 과연 잘하는 짓인가 의심이 들고, 백날 익혀봐야 여전히 제87932호 외국인 호갱일 뿐인데 속도 없이 뭐가 좋다고 배우고 앉아 있나 싶어 의욕이 사그라들기도 했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긴다는 속담처럼 인도에서 된통 당하는 사건이 생길 때마다 덩달아 힌디어까지 얄미워져 마음이 오락가락 변덕을 부렸다. 이제 소통하는 데 크게 불편하지 않을 정도는 되었으니 이 이상 애쓸 필요가 없다는 새로운 명분도 나를 유혹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힌디어를 놓지 않은 까닭은 그렇게 눈을 흘기다가도 슬그머니 다시 앉아 뭐라도 읽게 만드는 마법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고작 다섯 권이었던 책이 열 권, 스무 권으로 불어나기까지 수많은 날이 지나갔다. 좋은 날도 있었고 궂은 날도 있었다. 머리가 팽팽 돌아가는 날도 있었고 흐리멍덩 안개가 끼는 날도 있었다. 이런 날 저런 날 거쳐 꾸역꾸역 오늘이 왔고 그 모든 날에 힌디어가 있었다.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어 인이 박였다.
너무 멀리 와 버렸다. 힌디어를 몰랐던 시절로는 아무래도 돌아갈 수가 없다. 돌아가기에는 이미 헤아릴 수 없는 시간과 마음을 내어주어 여기서 멈출 수 없겠다는 직감이 든다. 그렇다면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어디 한번 끝까지 가 볼 작정이다. 다만 아직 그럴싸한 명분은 찾지 못했다. 전공도 아닌 힌디어를 이렇게까지 열심히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면 당분간 뒤통수나 긁적이며 웃고 말아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