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조금 더 일찍 시작하는 사람으로 )
나는 약속이든 일이든 정해진 시간에 꼭 맞춰서 끝내는 버릇이 있다.
약속이 오후 2시면, 오후 2시에 딱 도착하고,
일을 25일까지 마쳐야 하면 25일 4시까지 마무리한다.
항상 ‘조금 늦게 ' 시작하는 버릇이 있다.
어쩌다 미루는 습관이 생겼을까?
분명 어릴 때는 먼 곳이든 가까운 곳이든 약속에 늦은 적이 없었다.
항상 먼저 도착해서 친구들을 기다리고,
학교과제나 일도 먼저 끝내고 다른 친구들을 도와주곤 했었다.
가끔은 타고난 성향이려니 생각하다가도,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그 습관이 제일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마감 전에 맞췄잖아.”
“나는 촉박할 때 더 잘하잖아.”
이런 말들이 어쩌면 나의 게으름을 더 오래 지속하게 만든 건 아닐까?...
가끔은 시간이 임박해서 움직이는 내 모습에서
이상한 열정이 느껴지기도 했다.
몰입해 있는 내 모습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고,
그때 살아있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었다.
특히 약속 시간.
조금만 서두르면 15분 일찍 도착할 수도 있는데,
굳이 정각에 맞춰 나가려고 괜히 늦장을 부린다.
거울 앞에서 시간을 끌고,
'지금 나가면 너무 일찍 도착하겠지?' 하며
괜히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그러다, 길이 막히면 초조해지고,
약간 늦을까 봐 가슴이 쿵쾅거리기도 한다.
스스로 스트레스를 만드는 걸 알면서도, 또 그걸 반복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내가 싫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그렇게 마지막에 몰아치는 삶이,
결국 내 감정을 지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조금만 더 여유롭게 움직였더라면,...
그랬다면 내 하루는 덜 복잡하고 더 가벼웠을 것이다.
무엇보다, 미루는 습관은
늘 나를 스스로 실망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다짐을 해 본다.
“이번엔 제때 해보자.”
“여유롭게 도착해서 커피 한 잔 마시자.”
하지만 몸은 자꾸만 딴청을 부리고,
결국 또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맞추며 한숨을 쉰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이 습관을 진짜 고쳐보기로 했다.
매일 해야 할 일을 시간대 별로 적어서 체크하며,
단 한 가지 목표를 세웠다.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예상보다 10분 일찍 도착하기'.
'마감 하루 전 완료하기'.
그 후의 여유로운 성취감을
조용히 느껴보고 싶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것을 다 해내지 않아도 괜찮다.
그저 ‘조금 더 일찍 움직이는 나’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지금, 조용히 조금씩 방향을 틀어가는 중이다.
어쩌면 나는,
단순히 게으른 게 아니라,
너무 많은 생각과 조심스러움 속에서
자꾸 멈칫했던 건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하고 싶고, 잘하고 싶은 욕심이 많았던 것 같다.
조금 더 준비되면 시작하려다
결국 시작하지 못한 순간들이 쌓여
그게 ‘미루는 습관’이 되었던 것 같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지만,
어느 순간 마음속에 ‘이젠 좀 달라지고 싶다’는 바람이 또렷해졌을 때는
그 바람을 믿어보기로 했다.
사실, 나는 이미 조금씩 변하고 있다.
전에 같았으면 또 미뤘을 일들을
요즘은 ‘지금 해야지!' 하고 바로 행동을 한다.
그리고, 여유로운 출발이 주는 편안함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나의 속도를 나 스스로 조절해 가는 연습,
나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움직이는 습관,
그 안에서 새로운 나와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변화는 큰 결심보다,
그 결심을 계속 기억해 내려는
하루하루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배우고 있다.
생각이 많아도, 준비가 덜 되어도
그냥 조금 먼저 한 발 내디뎌보는 용기가
지금의 나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루는 그 시간 속에서
끝없이 머물며 나를 자책하기 바빴지만,
이제는 그 생각마저도
조금은 부드럽게 흘려보낼 줄 아는
여유로운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조급함 대신 여유를 배우고,
비난대신 이해를 배우고,
지금보다 더 가볍게 부드럽게
흐르는 법을 알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