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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향인 Jul 04. 2024

참 선생님

일상기록

건명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던 그 해에 코로나가 창궐했다. 중학교 입학식은 취소되었고 학교는 언제 나갈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다. 교육부에서는 급히 EBS를 활용한 온라인 수업을 준비하였으나 준비기간이 워낙 촉박하여 여러 부분에서 문제가 계속 발생하였다. 건명이 학교에서도 이와 관련한 가정통신문이 왔는데 그날치 온라인 수업은 그날 하루동안만 들으면 된다는 취지였다. 안그래도 온라인수업 서버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아 접속에 문제가 많이 생긴다는 뉴스를 본 터였다. 나와 건명이는 접속자가 좀 덜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오후 시간부터 온라인수업을 듣기로 하였다. 그래서 수업 첫날 아침, 건명이는 한창 자고 있었는데 웬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건명이 담임 선생님이었다. 언제 얼굴 볼지도 알 수 없는.


"건명이 어머니시죠? 담임인데요. 왜 애가 수업을 안 듣고 있죠?"

속사포같이 쏘아대는 말투에 나는 좀 당황했다. "아 그 저.. 저희는 오후에.." 까지 말하는데 선생님은 내 말을 잘라버린 후 말을 이어갔다.

"학교 수업시간과 똑같이, 수업시간에 맞춰서 수업 들어야 해요. 아직까지 수업을 안 듣고 애가 좀 불성실한가보죠?"


나는 할말을 잃었다. 분명 가통문에는 그날 안으로만 수업 들으면 된다고 되어 있었는데. 그리고 아이 얼굴 한 번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대뜸 "애가 불성실한가보죠?" 라고 부모에게 말하는 그 패기(?)는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나는 당황하기도 했고 화도 나서 전화를 끊은 후 건명이를 두들겨 깨웠다. "일어나. 너 지금 수업 들어야 한대" 영문도 모르는 건명이는 나의 성화에 못이겨 일어나서 눈을 반쯤 감은 채 컴퓨터 앞에 앉아야 했다.


중학교 첫 담임과의 만남(?)이 그러했으니 그 선생님에 대한 첫인상이 좋을 리 없었다. 그렇다고 아이 앞에서 대놓고 담임 흉을 볼 수는 없으니 그에 대한 불만은 남편과만 공유한 상태였다. 그러는 동안에 코로나 상황은 나날이 악화되었고 등교시기는 갈수록 멀어졌다. 급조된 온라인수업 상태는 전반적으로 엉망이었고 질도 그닥 좋지 않았다. 그래도 애들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는지 과목 선생님들이 하나 둘 숙제를 내주기 시작했다. 건명이 담임은 수학선생님이었는데 거의 매 시간마다 숙제를 빠지지 않고 내주는 모양이었다. 건명이는 얼굴도 못 본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를 매번 하는 것을 지겨워했다. 그래도 숙제는 해야 하지 않겠냐며 애를 어르고 달래가며 숙제를 시켰다. 그러다 어느 날 건명이와 온라인수업 홈페이지에 들어간 나는 놀라고 말았다.


수학 외에 다른 과목도 숙제가 나오긴 하지만 업로드된 숙제에 선생님이 코멘트를 달아주는 경우는 없었다. 어떨 때는 숙제 확인을 하긴 하나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건명이 담임선생님은 애들이 올린 숙제마다, 단 한 줄이라도 모두 코멘트를 달아 놓았다. 코멘트를 등록한 시간을 보니 새벽 2시 혹은 2시 반일때도 있었다. 그 새벽시간에 그러고 있다고 월급 더 나오는 것도 아닐 텐데.. 나는 그 선생님의 새로운 면모를 본 것 같았다. 그리고 건명이에게 말했다. 너희 선생님 정말 열정있고 성실한 분이다. 정말로 좋은 분이니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 꼭 빼먹지 말고 다 해서 올리라고. 요즘 이런 분 없다고.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밍기가 그 선생님에게서 수학을 배우게 되었다. 건명이는 그 선생님 숙제 많이 내 주고 엄격하다고 미리부터 밍기를 겁주었고 일찍부터 수학을 포기한 밍기는 울었다. 나는 건명이 때의 일화를 말해주며 생각보다 좋은 분이니 일단 만나보고 생각하자고 달래 주었다.


내 예상대로 선생님은 수학을 포기한 아이한테까지 우격다짐으로 공부를 시키는 사람이 아니었다. 처음 몇 번 문제를 풀게 해 보고는 밍기 실력을 파악했는지 다른 문제 풀지 말고 선생님이 내주는 문제만 풀어오라고 격려해 주는가 하면 밍기가 해간 숙제가 많이 틀렸어도 나무라지 않고 숙제를 해왔다는 사실을 좋게 평가해 주었다. 밍기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전히 숙제는 많이 내 주고, 숙제 안해온 애들은 바닥에 앉아 공부하게 하거나 교실 밖으로 내보내는 모양이었다. 요즘 그런 거 잘못하면 '아동학대' 소리 들을수도 있는 세상인데 어떻게든 아이들이 수학을 놓지 않고 조금이라도 공부하게 하려는 의지가 대단하다 느껴졌다.


나는 밍기가 과목 중 수학숙제가 제일 많다고 투덜댈 때마다 건명이 때의 이야기를 해 주며 정말 좋은 분이니 열심히 하라고 한다. 그래서 밍기는 느리더라도, 틀리더라도 숙제를 꼬박꼬박 해가고 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손발이 잘리다시피 한 요즘,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선생님과 우리 두 아이들이 모두 공부하게 되어 참 감사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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