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새로움에 짜릿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니
2024년 8월, 뜨거운 여름의 도쿄 섬머소닉. 작년에 처음으로 후지 록 페스티벌에 다녀온 후, 해외 록 페스티벌을 하나씩 다녀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일본이 가장 접근성이 좋다 보니, 우선 가장 유명한 섬머소닉을 다녀오기로 했다.
그동안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지 않은 지 오래됐다. 특히 록 음악은 이제 대세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해서 더 이상 새로운 밴드가 없다고 여겼고, 그래서 흥미를 잃은 지 조금 오래되었다. 공연을 많이 다녀도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밴드들만 보러 가곤 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가장 좋아하던 취미에 대한 열정이 오랜 기간 지속되다가 나이가 들며 자연스레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 같았다.
이번 섬머소닉은 나에게 음악은 어떤 형태로든 지속되며, 훌륭한 아티스트들은 여전히 많고 좋은 밴드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줬다. 오랜만에 록스타들을 만나며 찌릿한 기분을 느꼈다.
섬머소닉(Summer Sonic) 일본에서 매년 여름에 열리는 세계적인 음악 페스티벌로, 도쿄와 오사카에서 동시에 개최된다. 2000년에 처음 시작되어 록, 팝, 힙합, EDM 등 전 세계의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참여한다.
매년 록 페스티벌에서 드는 의문점:
나는 왜 또 여기에 있는가? 10년 넘게 매년 같은 생각을 한다. 올해도 그랬다. 이제는 더 이상 체력도 없고 날이 갈수록 참을성도 부족해져 너무 힘들다. 나는 왜 또 이 복잡한 곳에 와서 땀을 뻘뻘 흘리며 정신이 혼미해지는가?
2024년 섬머소닉은 태풍이 도쿄로 북상하면서 비행기가 무더기로 결항되고 아티스트들의 공연도 취소될 우려가 많았다. 다행히도 태풍이 비껴가고 토요일부터는 날씨가 매우 쨍쨍했는데, 그만큼 무시무시하게 뜨겁기도 했다.
그렇게 더위와 사투를 벌이며, 레드불과 포카리로 버티며 2만 보를 걸어 다니느라 정신도 오락가락했지만, 어느새 그 모든 힘듦을 잊게 만드는 아티스트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 오고, 그날은 평생 잊지 못할 최고의 하루가 된다. 매년 "내년엔 힘들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서도 다시 오는 것을 보면, 사람은 몸이 힘들었던 고통은 금방 잊어버리는 것 같다. 일상에서 느끼기 어려운 감격스럽고 벅찬 순간이다.
섬머소닉의 특징
규모만큼 전 세계에서 방문하는 관객 수가 어마어마하다. 주 경기장만큼 큰 메인 스테이지 외에도 5개의 스테이지가 더 있어서, 스테이지 간 거리가 상당했다. 스테이지를 이동하는 데 20분씩 걸리고 동선이 복잡했다. 하지만 그만큼 중간에 잠시 앉아서 쉴 수 있는 자리가 많아 더운 와중에도 버틸 수 있었다.
가격대가 꽤 비싼 편인데, 그만큼 운영에 대한 준비가 잘 되어 있다고 본다. 1만 보는 기본, 조금만 움직여도 2만 보 달성은 가능하다.
푸드존의 규모도 매우 크고 중간중간 잘 위치해 있으나, 워낙 관객 수가 많다 보니 줄이 상당히 길다. 원하는 것을 먹기보단 줄이 짧아서 먹는 느낌에 가깝다. 좀 더 여유롭게 식사하고 싶다면 조금 더 걸어서 근처 쇼핑몰에서 먹는 것도 괜찮다.
가장 좋았던 공연: Måneskin
이번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인 Måneskin! 요즘 정말 핫하다고들 하던데, 명성만큼 최고의 공연이었다.
Måneskin은 이탈리아의 록 밴드로, 2021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Zitti e buoni"라는 곡으로 우승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에너제틱한 퍼포먼스와 화려한 스타일, 그리고 록과 펑크, 팝을 섞은 독특한 음악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다. 강렬한 보컬과 중독성 있는 기타 리프, 반항적인 정신이 돋보이는 라이브 공연은 매우 호평받고 있다. 베이시스트 빅토리아는 정말 멋있었고, 무대 난입 퍼포먼스도 정말 인상 깊고 재미있었다.
하이도(hyde)
오랜만에 록스타의 저력을 느낀 공연이었다. 50대의 나이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에너지가 넘쳤고, 워낙 오랜 찐 팬들이 많은 아티스트인 만큼 관객들 분위기도 뜨거웠다. (나도 숨도 못 쉴 만큼 뜨거웠다. 너무 좋았지만 위기였음) 바이크 퍼포먼스 덕에 매우 가까이서 그를 볼 수 있어서 눈과 귀가 즐거운 공연이었다.
밴드메이드(BAND-MAID)
귀여운 메이드 복장을 하고 최고의 실력을 보여준 밴드. 2013년에 결성된 일본의 하드록 밴드로, 멤버들이 메이드 복장을 입고 무대에 서며, 이와 대조적으로 매우 강렬하고 테크니컬 한 록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특징이다. 어떻게 이렇게 잘할 수가 있을까?
Bring Me the Horizon
이 밴드의 음악도 좋았는데, 중간에 베이비메탈이 게스트로 나와서 함께 한 노래와 퍼포먼스가 최고였다. 귀엽고 예쁜 비주얼에 실력과 파워풀함, 반전 매력까지 겸비하다니! 다 같이 헤드뱅잉 할 때 내 눈에서 하트가 나왔다. 너무 좋았다.
섬머소닉에서 만난 한국인들
셔틀을 타고 무대 이동 중에 뒤에 앉으신 한국인 분들께서 시원한 쿨링 시트를 나눠주셨다. 우연히 핸드폰에 내가 노션을 사용하는 것을 보시고 같은 IT 업계인 것을 알게 되셨다고! 짧은 대화였지만 너무 감사했다. 이 글을 못 보실 가능성이 높지만, 새로 시작하시는 일도 잘되시길 응원합니다.
그 외에도 같은 한국인이라서, 또 같은 페스티벌 팬이라는 동질감 덕분에 배려해 주시는 분들을 많이 만나서 마음이 따뜻해진 섬머소닉이었다.
헤드라이너 공연이 마무리될 때 터지는 폭죽. 항상 많은 사람들과 환호를 지르며 폭죽을 보면 비현실적인 세계에 있는 것 같아 벅찬 마음에 눈물이 날 것만 같다.
평소 스스로가 쉼에 대한 통제가 되지 않는다면, 이런 환경에 강제로 나를 잠시 머무르게 하는 것도 나에게는 잠시 뇌를 쉴 수 있게 하는 하나의 수단이 되는 것 같다. 나를 쉬게 해 준 섬머소닉에 감사하며, 우리 내년에 또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