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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평화 Dec 31. 2015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다. 열사흘

" 하나, 둘, 셋.. 하나!! "


 노련한 경찰 아저씨의 구령에 따라 건장한 남자 6명이 버스 꽁무니를 밀고 있다. 처음에는 계속 밀기만 하다가, 요령이 생겨서인지 버스가 약간이나마 앞뒤로 진동하는 리듬에 맞춰 힘을 조절하고 있다. 마치 그네를 뒤에서 밀어줄 때 타고 있는 아이가 뒤에서 최고높이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내려가는 순간에 등을 밀어주면 그네를 더 높이 띄워줄 수 있는 원리로, 20여분이 지나자 버스가 포크레인이 눈을 옆으로 밀어놓은 도로 면으로 드디어 이동하였다.



 버스 지붕에서 갑자기 쏟아진 눈 무더기에 머리 어깨가 하얗게 된 체크무늬 양복 아저씨는 더운 김을 모락모락 피우며 힘을 쓰다가 버스가 움직이자 내 옆을 떠나 자기 키보다 높아진 눈 더미 옆으로 가더니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마약을 한다면 바로 저 얼굴표정이 되리라..


 "죄송하지만 자리 좀 ......"

 속초로 가는 한계령에서 눈사태로 버스가 고립된 지 3시간쯤, 춘천을 출발한지는 6시간쯤, 20대 후반의 청년이 버스 뒷자리에 앉아있는 내게 와서 미안해 하며 말했다. 이미 내 앞자리의 여자분에게는 제일 앞자리로 가달라고 부탁한 뒤였다. 버스는 정지한 상태였지만 버스 옆의 눈의 무게로 자동문이 열리지 않자, 버스에서 유일한 제일 뒷좌석의 조그만 창문으로 볼일을 보러 온 것이다.   



'남자라서 좋다' 라며 돌아갈 때 경찰들과 포크레인이 도착하였다.

  버스회사의 상황 판단 미숙에 연신 블루토스로 고함을 지르던 기사 아저씨, 남편에게 울듯이 전화하던 아주머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지금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던 대학생, 태연하게 코까지 얕게 골며 잠을 자던 여학생 마저 도, 지금은 포크레인의 삽질 하나하나에 온 눈이 가있었다. 문이 열리는 위대한 삽질이었다.



  "이 만두 좀 드세요..”

 홍천 버스 터미널 뒤쪽의 설렁탕 집에서 설렁탕 한 그릇을 다 먹어 갈 때쯤 주인 아주머니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만두 2개를 주신다.

 속초 도착 하자 마자 바로 춘천 가는 차를 타려 했지만 결행되어서, 고성, 원통, 인제에서 각각 버스를 갈아타고 홍천에 도착했을 때 배도 채우고 핸드폰도 충전하려고 설렁탕 집에 앉았다. 늦은 저녁시간이지만 사람이 별로 없는데, 가위로 무김치와 김장김치를 뚝뚝 썰어가며 뜨거운 설렁탕을 순식간에 비우자, 주인 아주머니가 보기에는 아주 맛있게 먹는 것으로 보였나 보다.


 [살고 있다]

지금 홍천에서 춘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며, 네 음절이 마음에 계속 내리고 있다.

 자연 속에 살고 있고,  사람 사이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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