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전 열한시 Aug 06. 2023

남편의 짜장밥


남편이 주도해서 주로 하는 요리는 파스타, 짜장밥, 닭볶음탕. 세 가지 정도.

이 중에서 꼭 남편만이 하는 요리는 ‘짜장밥’이다. 아이에게 한두 개의 음식은 아버지의 음식으로 기억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마도 짜장밥이 우리 아이들에게 그렇게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이전에 나는 짜장가루를 사다가 카레처럼 해왔는데 몇 해 전 남편이 춘장으로 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후 그때부터 쭉 짜장은 남편이 해왔다. 나는 춘장으로 하는 짜장이 매우 어려운 요리인줄 알았다. 지켜보니 생각보다 쉽다.

사실 나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에 늘 머뭇거리는 타입이다. 그래서 늘 새로운 요리는 남편의 생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검색을 하고 유튜브를 보면서 누구나 요리를 할 수 있다. 마음이 없을 뿐 실력이 없는 사람은 없다. 실력은 반복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주방 문턱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자주 드나드는 사람이 요리를 잘한다. 엄마니까 요리를 잘하는 건 결코 아니다.


남편의 짜장은 해를 거듭할수록 그 맛이 점점 좋아져서 이제 어떤 중국집을 가도 짜장은 남편이 만든 것이 맛있다. 마지막에 청양고추를 넣는 것이 포인트

과하게 달지 않고 담백하고 건강하면서 질리지 않는 맛이다.

춘장은 잘 볶아야 특유의 향이 날아가는데 스텐팬에 예열 없이 기름을 두르고 처음부터 넣고 약불에 볶아야 들러붙지  않는다.

살면서 맛의 기억은 참 오래간다.

내게 아버지의 요리는 손칼국수다. 반죽을 손수 밀어 만들어 주신 칼국수가 아버지의 맛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칼국수만 봐도 아빠가 떠오른다. 언젠가부터 힘에 부치셔서 칼국수를 더 이상 밀지 않게 되셨지만 그 맛만은 여전히 내게 또렷하게 남아있다.

국수 반죽을 밀던 아버지의 모습과 칼칼한 양념장을 얹어먹던 되직하게 풀어져 뻑뻑했던 국물의 맛

분명 아주 굉장한 맛은 아니었다. 소박하고 소박한 맛이라 어린 내게는 기다리는 맛까지는 아니었던듯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 아버지가 해주신 칼국수의 맛이 애틋하게 깊어진다. 칼국수가 보이면 어쩐지 먹고 싶어 진다.

맛의 기억은 때론 과장된다. 맛은 그날의 분위기와  한 그릇을 담아내던 그 사람의 손길까지 맛으로 기억되는 듯하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만들어준 음식은 단순하지 않다.

그 음식은 언젠가 그리움이 되고 그리운 사람이 되고, 그리운 시절이 된다.


우리 아이들에게 남편이 해 준 음식의 맛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아, 언젠가 문득 어딘가에서 아버지의 짜장밥을 떠올리며 한없이 따스해졌으면 좋겠다.

때론 서운했던 기억까지 덮어진다면 좋겠다.


오전 열한시의 인스타그램




매거진의 이전글 유월의 토마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