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주도해서 주로 하는 요리는 파스타, 짜장밥, 닭볶음탕. 세 가지 정도.
이 중에서 꼭 남편만이 하는 요리는 ‘짜장밥’이다. 아이에게 한두 개의 음식은 아버지의 음식으로 기억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마도 짜장밥이 우리 아이들에게 그렇게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이전에 나는 짜장가루를 사다가 카레처럼 해왔는데 몇 해 전 남편이 춘장으로 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후 그때부터 쭉 짜장은 남편이 해왔다. 나는 춘장으로 하는 짜장이 매우 어려운 요리인줄 알았다. 지켜보니 생각보다 쉽다.
사실 나는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에 늘 머뭇거리는 타입이다. 그래서 늘 새로운 요리는 남편의 생각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마음만 먹으면 검색을 하고 유튜브를 보면서 누구나 요리를 할 수 있다. 마음이 없을 뿐 실력이 없는 사람은 없다. 실력은 반복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
주방 문턱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자주 드나드는 사람이 요리를 잘한다. 엄마니까 요리를 잘하는 건 결코 아니다.
남편의 짜장은 해를 거듭할수록 그 맛이 점점 좋아져서 이제 어떤 중국집을 가도 짜장은 남편이 만든 것이 맛있다. 마지막에 청양고추를 넣는 것이 포인트
과하게 달지 않고 담백하고 건강하면서 질리지 않는 맛이다.
춘장은 잘 볶아야 특유의 향이 날아가는데 스텐팬에 예열 없이 기름을 두르고 처음부터 넣고 약불에 볶아야 들러붙지 않는다.
살면서 맛의 기억은 참 오래간다.
내게 아버지의 요리는 손칼국수다. 반죽을 손수 밀어 만들어 주신 칼국수가 아버지의 맛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칼국수만 봐도 아빠가 떠오른다. 언젠가부터 힘에 부치셔서 칼국수를 더 이상 밀지 않게 되셨지만 그 맛만은 여전히 내게 또렷하게 남아있다.
국수 반죽을 밀던 아버지의 모습과 칼칼한 양념장을 얹어먹던 되직하게 풀어져 뻑뻑했던 국물의 맛
분명 아주 굉장한 맛은 아니었다. 소박하고 소박한 맛이라 어린 내게는 기다리는 맛까지는 아니었던듯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 아버지가 해주신 칼국수의 맛이 애틋하게 깊어진다. 칼국수가 보이면 어쩐지 먹고 싶어 진다.
맛의 기억은 때론 과장된다. 맛은 그날의 분위기와 한 그릇을 담아내던 그 사람의 손길까지 맛으로 기억되는 듯하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만들어준 음식은 단순하지 않다.
그 음식은 언젠가 그리움이 되고 그리운 사람이 되고, 그리운 시절이 된다.
우리 아이들에게 남편이 해 준 음식의 맛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아, 언젠가 문득 어딘가에서 아버지의 짜장밥을 떠올리며 한없이 따스해졌으면 좋겠다.
때론 서운했던 기억까지 덮어진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