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엄마의 옷장
친정집, 엄마의 옷장에서 하운드투스 체크 니트 하나를 찾았다.
무려 제조년월이 1989년 9월
35년이 된 옷이라니, 찐 레트로, 복고풍 옷이다. 유행은 돌고 돌아 얼마 전에도 이런 스타일의 니트를 옷가게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했다.
가끔 친정집 옷장을 뒤지면 이런 보물들이 나온다.
엄마의 안목은 감사하게도 긴 세월을 잘 버텨주었다. 깊이 고민하고 고른 옷은 고민의 깊이만큼 옷장 깊숙이에서 버텨준다. 쉽게 충동적으로 산 옷은 옷장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쉽게 버려졌다.
지난봄에는 금단추가 달린 블랙 니트 재킷 하나를 찾았었다. 소재가 니트라 착용감이 너무 편해 올봄에도 역시나 손이 자주 갔다.
나이가 들수록 아무리 예뻐도 불편하면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엄마는 소재며 착용감, 어느 하나 놓치지 않으셨다.
엄마는 늘 좋은 소재의 옷을 사라고 하셨다. 디자인은 기본형을 사면 유행을 타지 않는다. 단순할수록 질리지 않는 건 모든 물건의 법칙 같다. 젊을 땐 이게 엄마의 잔소리 같았는데 엄마 말이 결국 다 옳았다.
나도 이제는 쉽게 옷을 사지 않는다.
엄마가 40대에 입으셨던 옷을 딸이 엄마 나이가 되어 다시금 입는다. 진정 클래식이 아닌가 싶다.
새 옷을 좋아했던 나는 엄마의 체취가 가득한 이 옷이 이제는 새 옷 보다도 더 반갑다.
새 옷은 설레지만 엄마의 옷은 애틋했다.
엄마가 반찬값을 아껴 산 이 옷을 엄마처럼 오래오래 아끼게 될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버려지는 폐의류는 하루에만 220t이 넘는다고 한다. 공장에서 옷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버려지는 폐섬유만도 39만 t
묻으면 안 썩고, 태우면 유독가스가 발생하고 재활용률 또한 낮은 편이다.
기사에 따르면 매년 패스트패션 산업은 930억 입방미터의 물을 소비하는데 이는 약 500만 명이 마실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환경론자들은 이 산업계가 직류 처리와 염색 과정에서 산업용수 오염의 20%가량을 유발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전 지구 탄소배출량의 10%가 이 분야에서 나온다고 경고했다.
옷을 단순한 기분 전환용이라고 말하기엔 그 무게가 너무 무겁다.
의류 수거함에 자주 들리고 싶지 않다. 가득 찬 옷장에서 겨우겨우 옷을 찾아내고 그 보다 잊힌 옷들이 많은 그런 옷장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기준을 명확하게 가지고 나만의 취향을 담아 신중하게 옷을 고르자.
그럼 시간이 지나서도 기꺼이 응답해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