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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전 열한시 Oct 18. 2024

우리는 고추장에 진심이었다.

내 어린 시절 살림에 진심인 친정엄마는 고추를 말려 일일이 고추를 행주로 몇 번씩 닦아 방앗간에 가져가 고춧가루를 빻아오셨다.

많은 주부들이 아파트 주차장에 고추를 널던 그런 시절이었다. 비라도 쏟아지는 날이면 온 가족이 출동해 후다닥 고추를 거둬들이고 거실 가득 늘어놓고는 난방을 켜고 선풍기를 돌렸다. 집안을 가득 채우던 그 매콤한 냄새가 나는 아직도 코끝에 남아있는 듯 생생하다.

내 결혼 후 얼마까지도 엄마는 건고추를 구입해 닦고 빻는 번거로운 과정을 해내셨다.

엄마는 베란다가 좁은 새 아파트로 이사 오시기 전까지 장독을 가지고 계셨다.

연식이 오래된 넓은 남향 아파트 베란다에는 해가 잘 들었다. 엄마는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 온 후에도 된장, 고추장을 손수 담그셨는데 엄마가 손수 만드시는 간장, 된장, 고추장은 그 맛이 참으로 깊었다.

결혼 후 꽤 오랜 시간 나는 엄마의 고춧가루, 엄마의 장, 엄마의 김장김치에 기대어 살림을 꾸려갔다.

그냥 그게 참 당연한 듯 그랬다.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얼마나 번거로운 일인지, 얼마나 깊은 사랑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육아와 내 살림을 챙기느라 바빴다. 엄마는 언제나 내게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너무 오랜 버팀목이라 그 존재조차 잊고 지냈던…… 하지만 엄마는 그 자리에 멈춰 계셔주지 않았다.

엄마는 한 해 한 해 약해지셨다.

그러다 엄마는 살림을 줄여 새집으로 이사를 가셨고 작아진 베란다와 줄어든 태양은 더 이상 장 만들기를 허락하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고춧가루와 장류들을 모두 사 먹게 되었고 엄마의 가벼운 살림을 위해 김장 독립까지 해냈다.


먹거리에 진심인 엄마는 백화점에 가면 가장 비싼 된장과 고추장을 사서 내게 택배로 보내셨다.

비싼 장류는 그만큼 성분이 좋았다. 그렇게 골라 보내야 엄마는 안심이 되시는 듯했다. 엄마의 음식에 길들여진 내 입맛에 마트 고추장과 된장은 정말 흉내만 낸 제품에 지나지 않았다.


엄마는 고춧가루도 오랜 탐색으로 가장 안심되는 브랜드를 알아내셨다.

만들지는 않으셨지만 엄마의 살림진심은 여전하셨고

그 진심은 내게도 고스란히 유전 아니 학습되었다.

내가 살림을 이야기하고 좋은 먹거리를 소개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런 엄마 덕분이다.

나는 이제 엄마에게 좋은 먹거리를 먼저 알아내고 권하는 그런 딸이 되었다.


번거롭고 힘든 살림을 기꺼이 해내는 주부는 이제 많지 않다. 나는 그 답을 드디어 올해 찾게 되었는데 그건 다름 아닌 키트였다. 많은 주부들이 밀키트를 알지만 장을 만드는 키트는 모른다.

준비된 재료로 섞기만 하면 20분 만에 고추장을 만들 수 있다. 각각의 재료의 유통기한이 명확했고 눈으로 확인하며 만드니 안심되었다. 무엇보다 완제품 대비 저렴한 가격은 주부에게 너무나 반가운 일이다. 이제 엄마는 딸의 고추장을 걱정하지 않으신다.

시중에 파는 대형 브랜드 고추장에는 고춧가루가 들어있지 않은 제품이 많다는 것을 아는 주부라면 이것이 얼마나 마음 놓이는 일인지 알 것이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음식을 만드는 부엌이 깨끗해야 하듯 식품을 만드는 생산공장은 깨끗해야 한다. 믿을 수 있는 성분이어야 한다. 맛있어야 한다. 가격은 적절해야 한다.

진심은 언제나 통한다.


살림은 여전히 내게 살리는 일이다. 고추장을 만들며 가족의 건강을 살리고 사라져 가는 장 만드는 오랜 전통을 살려낸다.

여름 끝자락에 만나는 가장 신선한 햇고춧가루로 고추장을 만들어 다음 계절들을 준비한다. 참 든든하고 마음 놓이는 일이다

가을의 낭만이 고스란히 내 부엌에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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